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햇귀님 덕분에 ‘최종규’라는 작가와 이 책을 알게 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접해보면서 왜 진작 접하지 않았나, 하고 나를 책망했을 만큼 의미 있고 좋은 책이다. 묵혀 뒀다 읽어야지, 나중에 읽어야지, 하는 핑계와 게으름 탓에 늘 가벼움과 흥미위주의 유희에 의미 있는 시간들을 저당 잡힌 꼴이 되기 일쑤이다. 이젠 좀 재깍재깍(?) 바지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추천받은 책, 선물 받은 책, 괜찮은 느낌이 드는 책 등등을 너무 묵혀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는 헌책과 헌책방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헌책의 개념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만날 수 있다. 이는 굳이 헌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에 대한 애정이며, 우리가 암암리에 잘못 규정하고 받들고 있는 책에 대한 오류(?)들을 다잡아주는, 다잡아가자는 노력이 잘 배어 있다. 다시 말해, 책이 갖는 총체적 의미를 하나씩 뜯어봄으로써 우리와 친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기도 한 책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저자가 생각하는 헌책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다음과 같다.

∥헌책이란?∥
*‘누군가가 읽거나 보며 사람 손을 거친 책 가운데 상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책이거나, 다른 손을 거치지 않았지만 새책방에서 더는 팔 수 없는 책이거나, 비매품, 자비출판물 가운데 책에 붙은 값(정가)을 안 따지고 요즘 시세에 맞춰 파는 책’(p54~p55)

*‘어느 곳을 가더라도 다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책’
*‘비싼 찻삯을 치르고 품과 시간을 들이면서도 책 한 권을 찾으러 먼 나들이를 떠날 수 있도록 이끄는 책’
*‘두 손과 얼굴, 옷과 몸에 책때와 책먼지를 잔뜩 묻히면서도 씩 웃으면서 고를 수 있는 책’
*‘세상에 딱 하나뿐인 책’(p56)

*‘어떤 책 하나를 읽고 만지고 다루고 즐긴 사람들 손길과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
*‘우리 문화사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도록 이끄는 책’
*‘옛사람들 발자취를 거슬러올라가면서 살필 수 있는 터전’
*‘어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모습과 느낌을 간직한 자취’(p57)


이렇게 헌책에 대한 저자의 색다른 해석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또 다른 맛인 헌책방 탐방(?)과 맞물려 그 재미를 더한다. 대체로 수도권지역에 있는 책방을 위주로 정리를 해놓았으며, 부분적으로 부산, 청주, 대전 등등의 헌책방도 몇몇 정리가 되어 있다. 각각의 헌책방에서 자신이 만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책방 임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사진, 책방에서 만난 사람들(한홍구, 백창우, 윤구병),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오에 겐자부로, 최민식, 이오덕, 안정효) 등 먼지를 한 움큼씩 머금은 채로도 즐거울 수 있는 알곡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헌책방의 책손으로서 지켜야 할 다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헌책방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으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어서 보다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요즘 해묵은 책들을 다시금 책장에서 꺼내 손질(?)하게 된 것도 저자가 말해준 책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실천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본래 갖고 있던 책뿐만 아니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보다 깨끗한 모습으로 기존의 책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을 선사해준다.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뿐만 아니라 책등이나 책날개, 그 속, 내지 등의 묵은 때와 먼지를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줌으로써 책을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둘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을 아끼고 바로쓰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이를 알리기 위해 집필을 하기도 한다. 격월간 1인 잡지인《우리말과 헌책방》을 통해서도 그를 만날 수 있고,《헌책방에서 보낸 1년》에는 수도권지역을 위주로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는《모든 책은 헌책이다》보다 더 많은 전국의 헌책방을 소개하고 있다. 또 저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검색을 해보니 북로그(‘함께살기’라는 북로그 제목으로)활동을 한 경험도 있음을 찾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저자와 그가 말하는 헌책방,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를 엿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많은 자료와 좋은 정보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도움이 될 만한 게 참 많기 때문이다.

저자만큼 골수까지 헌책방을 탐닉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헌책방을 자주 가는 책손 중 한사람이다. 매번 불규칙하긴 해도 한 달에 적어도 두어 번은 헌책방에 들러 묵은 먼지와 함께 몇 시간씩 그 좁은 곳에 쪼그려 앉아 반가운 책, 생소한 책뿐만 아니라 영화나 잡지 등을 만난다. 덤으로 주인할아버지(책방 임자)와 일상적인 담소도 나누면서 책에 대해, 요즘의 책손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요즘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고른 책을 셈할 때처럼 긴장된 순간도 없었다. 마치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조마조마한 순간이랄까. 좋은 책을 골랐구먼, 나도 자네만할 때 이 책을 본 것 같아, 등등 한마디씩 던지시는 말씀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마냥 기분 좋은 무엇이다.

재미난 사실을 하나 덧붙이자면,《모든 책은 헌책이다》 이 책을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구입했다는 것이다. 신기하면서도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나 스스로 만족함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오묘한 만남이었다고 할까. 또 자주 가는 헌책방 주인할아버지께서 내가 들고 간 이 책을 보시면서 알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으시며, ‘참 재미난 책도 다 있네, 한 번 봐도 되겠나?’ 하시며 뒤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알기로는 저자 최종규 씨가 이곳, 내가 자주 가는 이 헌책방에도 들린 적이 있고 앞서 말한 다른 책과 인터넷에 그 정보를 올려둔 걸로 안다. 기억하시는지 어떤지 모를 주인할아버지의 미소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 흐뭇한 그 무엇으로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끝으로, 책 곳곳에 ‘즐김이’라고해서 헌책방 주변의 괜찮은 먹거리, 산책로, 식당 및 포장마차, 술집 등의 정보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 헌책방 찾아가는 길을 저자가 설익은 그림솜씨로나마 직접 그려놓아 그 주변에 사는 책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헌책방 나들이를 통해 ‘책’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기호에 따른, 취미나 직업적인 성향에 따른 책 혹은 책읽기가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알게 모르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함께 삶아가는 ‘책’이란 존재와 그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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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이 헌책방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예요. 너저분하거나 싸구려 책들은 새책방에 많습니다. 눈요깃감으로 만들고 돈벌이 거리로 만든 시류와 흐름을 타는 책들이 새책방에 가득합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달라요. 헌책방 헌책은 맞돈(현금)을 주고 사서 책방 안에 갖춰 놓는 책들입니다. 반품이 없이 파는 헌책방 헌책이기에 엉뚱하거나 안 읽힐 책은 한 권도 안 갖춥니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기에 갖추는 게 헌책방 헌책이에요.(p23~24)

책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이 하나되어 묶여야 나옵니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엮어 내고 지어 내려는 사람 땀과 품과 시간 위에 또 한 가지 더 붙여야 됩니다. 그건 바로 좋은 책을 알아보는 우리들입니다. 알아보고 사서 읽는 우리들이에요. 책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서 읽는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p84)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큰 책방도 가 보고 동네에 있는 작은책방도 가 보세요. 그리고 가끔은 먼 곳에 있는 헌책방으로 마실가듯 가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책을 느껴 보아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어떠한지, 책 한 권이 가진 느낌과 무게가 어떠한지 말이에요. 그러는 가운데 책 한 권이 우리 삶에 어떤한가를 찬찬히 느낄 수 있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서 나 한사람도 튼실하게 가꾸고 내가 몸담은 사회와 나라나 모임도 알뜰히 북돋을 수 있답니다.(p141)

출판 문화와 사회 의식구조 모두에게 헌책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그냥 ‘폐기물’로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고, ‘분리수거로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헌책방을 돌고 돌며 싼값으로 여러 사람들이 즐겨읽을 수 있도록 내놓을 수 있는 ‘사람 손을 타는 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p150)

==>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화의 그늘이랄까, 그것은 철저하게 고급정보를 소수자들이 공유함으로써 빈부의 격차와 계급간의 격차를 발생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며, 끝내는 소수에게 다수가 종속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나 책이라는 정보의 형태는 팍팍한 가계를 꾸려가는 많은 이들에게는 섣불리 쥘 수 없는 정보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빌어, 헌책방이 보다 체계적이고 좋은 발전을 함으로써 계급간의 정보력의 격차를 줄이는데 한몫을 단단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천 원짜리 책이라고 헐하거나 모자란 책은 아닙니다. 다만 값이 천 원밖에 안 할 뿐이에요. 값이 천 원이든 만 원이든 책마다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는 남다릅니다. 헌책방을 다닐 때 천 원짜리 책도 꼼꼼히 살피고 눈여겨본다면, 책마다 다르게 지닌 소중함과 값어치를 느끼고 익히는 가운데 책을 보는 눈길도 새롭게 익힐 수 있다고 봅니다.(p172)

라면값, 콩나물값 오르는 일은 걱정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이요, 농산물값은 늘 제자리걸음이라 등허리가 휘도록 죽을 고생을 하는 농사꾼 걱정도 하지 않는 게 신문사 기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삶이 참 팍팍합니다.
어둡고 어려운 곳에서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 이야기는 묻힙니다. 어쩌면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만나는 낡은 가계부와 편지와 일기장 속에 그런 이야기가 묻혀서 흐르고 흐르지 싶어요.
어렵던 사람들 삶, 힘들던 우리들 삶, 애먹고 가슴 아픈 이야기는 묻힌 채 흐르다가 어느 때엔가 헌책방에서 다시 살아나지 싶어요.(p222~p223)

<흙서점>아주머니는 거의 그냥 얻다시피 하는 그릇이 많아, 흠이 있는 물건은 거저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공짜로 줄 수는 없어 500원, 100원 정도 받고 판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을 남을 생각해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알아 보셨답니다. 바깥에 내놓는 헌 그릇이 한 달에 십만 원어치쯤 팔린다고 하시는데, 그 그릇을 팔아 얻은 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신다고 합니다.(p247~p248)

<고구마>아저씨는 “대학교에 헌책방학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과가 없어도 “문헌정보학과에서 헌책방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현실 감각에 맞는 수업도 하면서 책 문화를 키워 나가야 좋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p284)

==> 요즘 대학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비인기학과와 생산성과 경쟁력 면에서 매력이 없는 학과들을 ‘줄 폐업’시키고 있다. 장영희 교수가 말하는 ‘문학의 수난시대’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나도 얼마 전까지 느꼈었다. 친구 녀석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는데, 녀석의 수업을 자주 숨어(?)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강의내용이긴 했지만, 너무 틀어박힌 듯 한 느낌이 강했다. ‘하이브리드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언제고 도래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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