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돈을 좋아했다.
학교 다니기 전부터 빈 병을 모아 팔아 그 돈을 은행에 넣었고, 일년에 딱 한번 몫돈이 생기는 설날에는 세뱃돈을 고이고이 모아 역시 은행에 저축했다. 학교 다니면서는 참고서를 물려받아 쓰면 엄마가 새 참고서 값을 은행에 넣어주셨고 그렇게 돈 모으는데 취미를 붙여 초등학교 졸업때는 오백만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굴릴 줄은 몰라서 지금도 오직 월급을 아껴 쓰는 것 외엔 다른 재주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제 미래를 대비하라는 경제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에는 자녀 대학학비로 2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고, 은퇴후 20년을 산다고 치면 6억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2억, 6억...... 내 월급을 생각하면 대체 이 억소리나는 돈을 다 어찌 모을 것이며, 혹시 자녀 교육은 겨우겨우 시킨다 하더라도 자녀의 결혼, 그리고 내 노후는 어찌 되는 것인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허덕거리고 산다해도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니, 이 얼마나 힘 빠지는 소리냔 말이다.
결혼하고 딱 이 년 동안만 그래도 돈을 쓰고 살았다. 그 때 제주도 여행도 아주 럭셔리하게 다녀왔고, 외식도 자주 했으며 뭐든 편하게 쓰고 살았다. 하지만 2년 후 전세 만료가 다가오자 집주인은 월세를 요구했고, 2년간 뛰어오른 집값을 보면서 현실을 깨달았다. 무리를 해서 집을 마련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집 때문에 돈을 모으기는 커녕 늘 쪼달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집만 마련하면 한 고비 넘는 줄 알았는데 이젠 자녀교육비도 마련해야 하고, 노후 생활 자금도 마련해야 한단다. 지겨운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이란 이렇게 내내 늙어죽을 때까지 결국 돈에 매여 살아야 하는 걸까. 늙어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비하고 동시에 미래의 소비를 준비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어렸을 때 돈을 좋아한건, 어디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모이는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미래를 대비하여 돈을 모은다는 건 전혀 재미가 없다. 결국 끝없이 미래를 불안해하며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감만 느끼게 되는거 아닌가. 백날 계획을 세워봤자 수입은 뻔하고, 멍한 머리로 이 힘겨운 자본주의 생활을 잘 버텨낼지 자신이 없어진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마일hk 2006-02-0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동안 로긴하기 귀찮아서. -나 게으름의 결정체- 읽기만 하고 지나갔던 니 블로그에 답글을 좀 달아보련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