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직설적으로 인문학 고전 독서가 천재를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을 바꾼 전세계 모든 인물들이 인문학 고전을 열심히 읽은 사람들 뿐이고, 현재의 교육시스템 하에선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 평범한 사람들을 만들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취직이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인문학의 홀대가 대세가 되어 가는 시대에, 시대 조류와 꺼꾸로 가는 책이긴 하지만, 내용에 적극 동감한다. 우리 애도 이렇게 키워 볼까 생각할 정도 이다. 엄마들의 정보력을 근본으로 요새 아이들은 사교육과 선행 학습이 매달리는데 항상 결과에 의심이 든다. 기계적으로 교육을 애가 잘 받아 드릴 수 있고, 제대로 잘 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다. 실은 부정적인 의심이다. 어쩌면 나의 (나 역시 근거없는) 의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이 책은 희망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혜가 부족해서,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물질에 먹고 사는 데 지장없는데, 과연 행복한가? 행복을 느낄 줄 아나? 겨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데서 행복을 찾는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내가 발전해서라기 보단 남을 누르고 나서 생기는 기쁨아닌가? 눌린 상대방은 행복하지 않는건 확실해 보인다.

 

이 책은 지식의 풍요보다 지혜를 이야기 한다. 그 지혜는 고전속에서 나오고, 처음에는 단지 읽고, 다음엔 다독을 하고, 그 다음엔 정독을 하고, 그 다음엔 외우고, 그 다음엔 필사를 하고, 중간중간에 사색을 한다는 방법을 사용한다. 2015년 현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인문학 고전을 손에 잡을 시간적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 책을 정독을 하는데 까지 미치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좋은 방법이라고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해보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좋은 책은 여러번 읽으면 넘어가서 잡아 내지 못한 지식들이 더 튀어 나온다. 영화도 마찬가지. 좋은 영화는 수십번 봐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문학 고전은 과학기술 이전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상의 주류의 학문이었고, 수천 수만권의 책이 있었을 텐데, 저자나 책의 이름이 내가 한번 들어 내 기억에 남을 지경이라면, 선택되고 선택되고 살아 남은,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먼저 읽은 후 거르고 거른 후에 살아남았으니, 명저임을 인정해도 틀림 없을 것이다. 또한 수십년전, 수백년전의 이야기가 지금도 통용이 될 정도라면, 그 당시의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에는, 우리에겐 없는 무엇인가 뛰어난 것이 있음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막 갖다 끼워 맞추는 것일 수 있겠지만) 어린이집의 영유아 폭행, 지도층의 갑질, 도덕성의 결여, 이런 거의 모든 문제들이, 지금의 철학이 부재인 세상의 가장 큰 원인이자 문제점은 인문학의 부재에 지 않나 싶다.

 

십 여 년전, 할 일이 없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 손에 닿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면, 책 한권을 정독할 시간이 되었다. 50권을 목표로 읽었지만, 중간에 목적도 없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30권에서 멈췄다. 지금 후회되는 것은, 왜 그때 동양고전을 잡지 않았을까 이다. 서구의 것이 우수하다는 알량한 기존관념에 젖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렸다는 생각에 후회가 된다.

 

어느날, 카페 '꿈꾸는 사진기'의 후배 박성환이 책을 필사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 하느냐 물었다. 내 주변에선 처음 봤기 때문이다. 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반신반의 했다. 이 책은 그 방법이 옳다는 것을 충실히 증거하고 있다. 그 후배는 벌써 이 방법을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p239) 내가 생각하는 인문고전 독서법의 핵심은 천재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백독백습을 비롯한 다른 모든 독서 기법들은 다만 천재들의 마음을 깨닫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쓰는 작가이면서도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본질인 `마음`은 잊어 버리고 부록에 불과한 `독서기법`만 충실하게 나열하려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뻔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도움에 힘입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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