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 바오밥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AI(Amen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는 항공모함 같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인권단체 중 하나인 AI는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위하여 서서히 움직이며 인권의 개선을 위해 항공모함 만큼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우리 나라의 민주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양심수'와 지지자들의 인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그 '양심수(Forgotten Prisoner)'에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박노해씨 같은 독재시대에 저항했던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민주 투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AI는 또다시 항공모함 처럼 목표 지점을 쉽게 수정하지 않음으로서 급변하는 환경에 발빠른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서 보수적이라 비판을 받아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AI는 인권을 억압하던 정치 권력에 맞섰던 양심적인 지식인들, 행동가들의 보호, 의사표현의 자유, 사형제도 폐지등 커다란 정치적인 주제에만 매달려 왔지만(물론 그동안 이뤄왔던 성과를 부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몇년전 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 이제는 빈곤 같은 내실있는 주제에 관심을 보여 왔었다.(물론 국가간 무기 이동 금지같은 문제도 동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여기서 빈곤의 문제에는 가난한 나라의 빈곤은 물론, 미국같은 선진국이나 중국같은 신흥 공업국 들에 나타나는 상대적인 빈곤도 포함한다. p152 <함정으로 부터의 탈출>에 AI가 해왔던 과거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을 약간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 AI의 중심에 이 책의 저자이면서 AI의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이 있다.(그녀의 약력을 읽어 본다면 AI의 중점 정책이 바뀌게 된 과정을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거 같다) 

인권을 말하고자 한다면 억압받는 한 개인의 인권을 조명 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그가 속한 한 국가의 국가 권력과 지배 논리와 상충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지배계층(<- 계층이라고 해두자)과 기득권층에게는 그들의 옳다고 믿는 통치철학에 반하는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고, 혹은 가만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순박한 국민들에게 '불순한' 사상을 주입하는, 다시 말해 체제전복을 노리는 과격한 일단의 무리들 속에 AI를 포함시킬 수도 있다. 과거 AI는 '양심수'에게 촛점을 맞춰 그 나라의 권력집단에 저항했던 '눈엣가시'들을 지원하면서 잽으로 독재 정권의 심기를 건들여 왔다면, 이제 AI는 '빈곤'을 집중 조명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위해 한 국가의 이기주의 지배 계층들, 권력자들, 그리고 세계 권력을 가진 부강한 나라에게 근본적인 문제를 들고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전에 unicef가 발행했던 지도를 본 적이 있다. 세계 지도에 유아사망률에 따라 색으로 칠해 나라를 분류하였고, 절대 빈곤에 있는 나라도 따로 분류하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국민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정권은 존재할 필요가 없겠다' 대다수의 국민을 굶기는 정권, 많은 숫자의 국민이 죽어가는데 지배층만 잘먹고 잘사는 정권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다. 세계인권선언 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그렇다, 빈곤과 인권은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이다. 

빈곤과 인권이라는 근본적으로 파고 드는 문제를 (AI가 영향력이 크다곤 하지만) 한 인권단체가 맡기엔 너무도 구조적인 문제, 너무도 어렵고 다양한 문제 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을 대놓고 주장하며 해결하라고 외치는, 그리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만큼 AI가 자신감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 사람이 열 발자국 나가야 할 때도 있고, 열 사람이 한 발자국 나아가야 할 때도 있다. 인권과 그 뒤에 가장 큰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빈곤의 해결은 열 사람이 한 발자국 나가야 할 문제이지만, 그것을 문제라고 외치는 것은 한 사람이 열 발자국 나가는 일일 것이다. 많은 NGO들과 외쳤고, 이제 AI가 목소리를 높힌다.

이 책은 AI가 빈곤과 인권에 관한 연관성, 역사성을 보여주고, 빈곤의 구조적인 모순과 악순환, 빈곤의 해결없이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정당성을 때로는 예를 들면서 때로는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아이린 칸은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나태함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실패, 내전, 부패한 정권 같은 사회 구조의 문제점에서 찾고 있다. 또한 빈곤을 해결하는 가능한한 해법과 그동안 기득권 층의 반대 논리에 대한 대응 논리를 담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말, AI 사무총장 아이린 칸은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가 서울에 도착해서 처음 공식일정으로 방문했던 곳이 용산참사가 났던 자리였고, 유가족을 위로했고, 강제 퇴거에 대해 언급했다. 다음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회원들과 만남의 자리에서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축하했고, 반면에 상대적인 빈곤층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빈곤의 문제가 인권의 문제와 결코 다르지 않음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한국에 머무르던 공식 일정 동안 대통령과 총리는 바쁘다고 안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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