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가본 곳.

나는 유럽여행을 가봤다.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이 경험은 정말이지 신나는 경험이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사건들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로 가득찼던 한 달간의 여행을 잊을 수가 없다. 만약 내 삶을 퀼트로 만든다면 2002년 여름의 유럽여행이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의 천으로 장식될 것이다.

나는 부산에 가봤다. 뭐, 이렇다할 시골이 없는 서울내기. 본적도 종로구 삼청동이다보니 나에겐 지방을 내려갈 일이 거의 없다. 그러던 차, 예저녁에 너싫다며 헤어져버린, 남자친구와 부산에 있는 삼촌집으로 놀러갔었다. 숙모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한 방에 누워자던 부산 여행을 잊을 수 없다. ^^ (우리가 가고나서 삼촌은 숙모의 원성을 톡톡히 샀다는..ㅋㅋ)

나는 호주에 가봤다. 뭐, 내가 좋아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 곳의 뭔가 많이 섞여 있으면서 전혀 조화되지 않아 보이는 산만함과 약간 낮은 하늘, 그리고 싸고 다양한 고기가 즐비한 대형 마트, Wollworth를 기억한다. 그 곳 이민 사회의 힘들고 어려운, 그러나 쾌적하고 여유로운 삶이 떠올라 가슴 한켠에 아픔과, 대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고 싶은 나라는 아니다.

나는 일본에도 가봤다. 이건, 가 봤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여권에는 들어오고 나가고 6번의 스탬프가 찍혀 있으니, 어떻게 유럽이고 호주고 갈때마다 일본 나리타를 경유해서 가게 되었는지... 왠지 모를 자신만만함에 기가사는 유일한 외국의 공항이다. ^^; 일본어 하나 몰라도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나리타.

나는 MBC라디오 방송국에 가봤다. 학부 시절, 친하던 동기 녀석, 지하철 2호선을 타는 사람들이라는 다음 카페를 만들었던 녀석들이 있었는데, 마침 MBC 라디오 어떤 프로그램에서 독특한 인터넷 동호회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시간이 있었나보다. 같이 가보래냐는 질문에 "와!! 좋아좋아!"하며 당장 따라나섰던 곳. 그때도 쌀쌀했는데, 미로같이 느껴졌던 방송국 라디오 박스. 신기했던 녹음 장면들. 그리고 처음으로 당당하게 방송국안으로 들어갔던 그 느낌. 오늘 갑자기 생각이 난다.

2. 내가 안 가본 곳.

나는 나이트클럽에 안 가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던데..다른 사람들 100명 아니라 1000명이 놀란다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서 가보고 싶진않다. 그렇다고 절대로 가기 싫어서 일부러 안 간 건 아니고..^^; 그저 갈 기회도 없고, 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트 클럽에 가면 대략 예상되는 것이 번쩍번쩍한 조명과 시끌시끌한 소리, 그리고 취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싫다.

나는 시집을 안 가봤다. 왠지 모를 두려움 반과 상상할 수 없는 기쁨 반으로, 과연 결혼하고 나면 어떨까 실망할까 더 좋을까, 저녀석이 변할까 안 변할까. 이런저런 자로 재보기도 하고 상상하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 상상이 현실적인 것일까 하는 문제에서는 자신이 없다. 이런저런 억측과 환타지로 가득차 있는 시집가기. 과연 나는 어떤 배를 타게 될까 궁금하다.

나는 옆집에 안 가봤다. 여태까지 아파트며 오피스텔이며 살아도, 어느 집이고, 옆집에 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유야, 현대의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생활때문이겠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참 인심이 박한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알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는 집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옆집 문이 열리면서 까만 양복을 입은 깍두기 같은 아저씨가 나오고 그 뒤를 따라나오는 잠옷차림의 야리야리한 아가씨 "자기~ 잘 다녀와~" 하는데,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실루엣이 범상치 않던데..

나는 콘서트에 안 가봤다. 사실 나는 메탈을 참 좋아한다. Judas Priest_고전적인 그룹에서부터 Heavy한 Metalica,  펑키한 Greenday 등등등. 그런데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반면 한번도 이렇다할 콘서트에 가 본적이 없다. 그렇게 재미있다는 김장훈 콘서트도, 그렇게 멋지다는 이승환 콘서트도. 한번도 안 가봤다. 이 나이 먹도록 왜 그런데도 안 다녀왔나 나도 궁금한데, 사람들 많은 곳과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변명해보지만.. 역시 궁색하다.

그저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러 이 글 저 글 읽어보니 나도 열심히..는 아니지만 끄적끄적 알라딘을 일기삼아 드나들던 작년이 생각나서 오늘 저녁에 학원에 앉아 또 다시 한 번 끄적끄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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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1-29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님보다 가본 곳은 적고 안 가본 곳은 많군요.^^;;

Hanna 2005-11-3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럴까요? ^^; 적어도 시집을 가셨을 거 아녜요!! ㅡㅜ

mannerist 2005-12-0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은 곧 갈 검서. ㅎㅎㅎ 태권소년 잘 있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