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 찍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는데, 사진 찍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찍히는 것도 그다지..특히 여행갈 때는 더욱 그렇다. 유럽여행때 내가 쓴 필름통수는 2통이 채 못되었으니, 여행중 만난 친구들은 나의 사진 외면에 대부분 놀라더라. (돈 아깝다며.. 온김에 찍어야 한다고들 했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는데,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사진을 찍으면, 여행의 맥이 끊기는 것 같아서다.  길을 가다가도, 이야기를 하다가도 사진을 찍기 위해선 멈춰야 한다. 가던 길도 멈춰야 하고, 이야기도 멈춰야 하고, 느낌도 그 순간 멈춘다. 난 그저 흐름을 느끼고 싶을 때가 많다.

그 다음의 이유로는, 사실말이지, 내가 사진을 잘 못 찍는다는 것이다. 푸흡. 내가 가진 카메라로 백날을 이것 저것 찍어보라. 뭐가 멋있겠나. 사진관에 맡기면 아마 잘못 나온 건지 알고 아저씨가 아예 안 찾아주는 것도 있을 꺼다. 대신 유럽이든 어디든 가면, 그 곳에 기념품가게에 있는 엽서는 꼭 산다. 내가 사진을 못 찍을 뿐, 그곳은 아름다우니.^^

게다가 나는 사진의 모델로서 적당하지도 않으니 더더욱 사진을 찍으려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다. 난 눈코입이 큼직하지도, 팔다리가 길지도 않고, 카메라 앞에선 얼굴 경직. 포즈 어색 현상이 나타나 대체로 무안과 뻘쭘으로 가득찬 어색한 표정이 나온다. 싫다. 그렇게 기억되고 남는거.

그러나 이 모든 이유를 능가하는 가장 긍정적인 이유는 그 장소를 가슴에 남겨두고 싶어서다. ^^ 사진을 찍으면, 정지되어 내 앨범에 남고 만족이 되겠지만, 찍지 않으면, 그 곳을 , 그 느낌을, 그 순간을, 그 사람을 가슴에 찍어둘 수 있다. 그리고 그 느낌에 그 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거. 그리고 또 가고 싶어지는 게 소중하다.

오래전 겨울, 하얗게 눈 덮힌 대성리 강가 맞은 편의 앙상한 산 자락을, 김이 모락모락 따듯한 햇빛이 커다란 통유리로 들어오던 그 카페의 전경을, 몇 년 전 유럽의 기차 안에서 바라다보던 넓은 들판을, 시드니의 아름다운 공원과 촉촉하게 밤이슬에 마음까지 설레었던 달링하버에서의 추억을, 답답하고 지루하던 고3 시절 교실 창밖으로 보이던 3월의 단풍나무를, 어설픈 짝사랑에 눈부셨던 잘 생겼던 그 남학생을. ^^

나 만의 앨범에 가슴속에 찍어둘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매너님의 바다사진을 보니,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에 사진을 찍어 보관을 해 두면, 그냥 그 날의 바다가 아니라 나만의 이름할 수 있는 뭔가가 생기는 것 같아서 오늘따라 좋아보인다.  뭐.. 그렇다고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

의미를 담아 내는 어떤 것은, 무엇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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