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밑줄 긋는 남자>라는 제목과는 달리 소설에는 밑줄 긋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고, 어디에 사는지도, 직업도, 심지어는 이름도 모르는 한 남자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도서관의 책들과 연애하는 여주인공의 심정을 영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누구나 꿈꾸지 않을까. 우연히, 운명적으로, 그러나 확실한 필연으로 그 사랑이란 것이 다가오기를 말이다. 드라마를 봐도, 영화를 봐도, 늘 사랑은 그렇게 우연한 필연으로 다가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나만의 '특별한' 인연을 꿈꾸며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우연히 같은 버스, 같은 좌석에 앉게 된 사람이라도, 우연히 부딪힌 그 사람이라도 사실은 지나고 보면,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않고, 직업도, 사는 곳도, 심지어는 이름도 모르면서, 막연하게 '혹시'라는 물음표를 연신 찍어대며 지나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우연뒤에 숨어 있는 평범하고 김이 새도 너무 팍팍 새는 그와의 어처구니없다 싶은 만남을 통해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대부분의 사랑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주변을 휘 둘러보며 그 평범하고 시시한 사랑을 나눌 '그/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랑은 찾아 헤매며, 내것이 되지 않았을 때는 가슴 설레고 핑크빛 상상에 물들어 하늘 끝까지라도 날아올라갈 듯 하지만, 이미 찾고 나면 평범해진다. 사랑이 내 것이 되고 나면 세상은 더 이상 핑크빛이 아니며 그와는 대조적으로 잔인하게도 투명하여, 보이는 대로의 모든 삶을 받아들이고, 게다가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몫까지 함께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사랑은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밑줄 긋는 남자'를 위해 사 놓았던 목욕가운을 시시한 '클로드'에게 입혔던 여주인공처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사 놓은 목욕가운을 입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 때로 그것이 삶을 더 고단하게 한다 하여도 가치가 있는 것이니, 사 놓은 목욕가운을 입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핑크빛사랑이 시시해 지는 것보다 더 재미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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