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라디오를 듣는데 문득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이 흘러나왔다. 예술 고등학교나 음악과를 가면 간혹,합창 연주때 모자란 인원을 보충하기 위하여(인 것같다..아무래도) 성악 전공뿐만이 아니라 피아노들도 합창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 학교는 합창이 1,2학년때는 필수 과목으로 절대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들어야만하는 과목이다.

1학년 떼 새로 오신 교수님과 이 노래를 배웠다. 듣기만 했던 노래를 원어로 부르고 4부 합창으로 하니 그 울림과 음악의 기쁨에 싫기만 했던 합창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10년간 이태리에서 공부하시다가 귀국하신지 얼마 안된 분이셨고, 난 그 합창 수업을 참 좋아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한다는 기쁨에, 그 때는 모든 것이 즐거웠지만, 암튼 빡빡한 일정 가운데서 간혹 하기 싫을 때도 있긴 했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 선생님의 농담과 약간의 흥분 잘함(^^;)-오버라 해야할지..?- , 약간의 왕자끼와 까무잡잡한 얼굴에 귀여운(!?) 표정관리 등에 늘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난 테너를 좋아하나부다..ㅡㅡ;)

게다가 선생님의 제자를 반주하고 있던 터라 교수님과는 더욱 자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1년을 수업하시고.. 여러 공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나 싶더니 불현듯, 그 다음 학기부터는 아프신 관계로 학교를 못 나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학교에 도는 소문이, 선생님이 암이라는 소식이었다.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한 학기가 지나갔고, 합창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모든 과목 중에서 가장 하기 싫고 지겨운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며 여름 방학을 맞았다.

여름 방학 끄트머리.. 그 선생님의 제자 (^^ 당시 나에게 "그대있음에"를 목이 터져라 불러줘야만 했던 그 아이) 와 함께 선생님이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대학로로 인사를 갔었다. 군대를 가기 전에 인사를 한다나 뭐라나... 다행히 선생님은 거의 다 나아서 회복을 하고 계신 중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암 투병으로 머리가 거의 빠지셔서 그런지 여름에도 털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아직은 힘든 표정.

선생님과 함께 대학로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 병원에만 계셔서 그런지 얼굴이 무지 하얘졌어요!"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래? 내가 병원에만 있어서 그래!" 하시며 웃으셨다. 그러곤 "정말 내 얼굴이 그렇게 하야니?"하고 다시 물으셨던 기억이 난다.

식사도 아직은 많이 못 하신다고 우리에게 삼겹살을 사주시곤 당신은 안 드셨다. 아직도 병원에 다니며 치료 받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 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학교에 돌아오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학기가 채 시작하기도 전에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암 초기 인 줄 알았는데, 아마 말기셨나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는 다 나았다고 하시고는, 그냥 병원에서 나와서 해야 하는 일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마음이 텅 비는 것 같은 허탈함이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그 어렵게 한 공부. 여태까지 쌓아온 많은 것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그 젊은 나이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소식이었다. 아직도 가끔씩 선생님 생각이 나긴 하는데, 그 때마다 정말 인생의 허무함과 인생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동시에 순간의 중요함.. 하루의 소중함. 이런 것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 날 저녁.. 라디오를 들으며 앞에선 지휘를 하고 나는 노래를 했던 그 당시의 합창 시간으로 잠시 잠겨 들었다.

선생님,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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