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서 썼던 샴푸는 카모마일 향이 났었다.
그걸 왜 기억하냐면.. 쓰려고 가져갔던 샴푸가 너무 적어서 다 쓰는 바람에 새로 사러 갔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져갔던 그 샴푸가 떨어진 이후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그 샴푸로 꼭 머리를 감았다.
매일 쓰니 그 향이 꼭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는데, 그 향이 그 곳과 함께 내 머리에 저장되었나부다.
얼마 전... 내가 쓰고 있던 화장품 스킨이 그 익숙한 카모마일 향이란 것을 깨달았다.
알기 전에는 이게 무슨 향이야 그냥 그러고선 얼른 날라가 버리는 스킨 냄새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우연히 화장품 통을 보니, 상표와 함께 Camomile이라고 써있었다.
!
아..? 그렇다고 생각하고 나자 그 스킨을 바르면, 내 콧속으로 그 카모마일 향이 깊숙히 들어왔고, 그만큼 깊숙히, 내 머릿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곳 생각이 났다. 아니, 그 곳에서의 느낌이 났다.
별로 유쾌하진 않지만... 아침마다, 저녁마다... 스킨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계속해서 그 향을 맡을 수록 그 곳의 생각이 나서 싫다. 그런 느낌이 든다. 아픈데... 상처가 나려고 약간 가려운 곳을 긁으면 덧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 가려워서 긁을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결국은 피를 내고야 마는..
그럴 수록 상처가 더 낫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그 스킨은 좋은 거고. 비싸게 주고 샀고, 향도 좋고. 아무리 아파도 그 스킨을 안 쓸 수는 없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쓸꺼다. 그 때쯤 되면 더이상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게 되겠지?
그런 향이 또 있으니, 그 곳에서 즐겨 뿌렸던 향수다.
Miracle.
그런데 그 향수도 질리고 질려서 이젠 케이스만 봐도 토할 때까지 뿌릴 꺼다. 그 향수는 좋은 거고, 비싸게 주고 샀으니까. 그리고 그 향수를 뿌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될 그 날이 곧 올꺼니깐. 생각이 난다고 안 쓸 수는 없다. 그냥 생각하면서 쓰고. 쓰면 가끔 생각나고..
결코 유쾌하진 않지만..
이렇게 오랫 동안 생각이 날 줄 알았더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거다. 그 곳에는..
그러니, 어디든, 누구든, 향과 함께 느끼는 것은 좋지 못하다. 향은 너무나 내 머리와 가까워서 깊숙한 곳에 있는 느낌을 꺼내오기 때문에...
그래서 잘 모르겠다. 좋다고 생각했던 카모마일향을 좋아해야 할지.. 안 좋아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