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참으로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얽혀있는 문제다.

흔히들 생각하는 테크닉과 음악이란 한정적인 의미의 것으로 폭넓은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기술적인 연주와 음악적인 연주를 의미한다. 자극적으로 표현하면, '손가락이 얼마나 잘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와 '음악을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테크닉이 좋으면 빠르고 어려운 passage를 잘 소화해 내서 틀리지 않고 깔끔하게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음악성이 좋으면, 다소 틀리거나 손가락이 좀 꼬여도(!?) 흐름을 잘 살려서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두가지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테크닉은 음악성의 일부분이며, 음악은 테크닉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가 스케일은 고르게 잘 연주하는데, 음악적인 내용을 실어서 표현하기 보다는 그저 악보에 나와있는 음표만을 울려댈 뿐이라면, 그 친구는 음악을 만드는 테크닉이 부족한 셈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테크닉이 없이 음악을 표현하려고 할 경우이다. 완벽한 레가토도 되지 않고, 손모양도 나쁘며, 고른 스케일을 연주할 수 없는데 음악적인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 동안은 음악적으로 친다고 노력할 수 있겠으나 듣는 사람에게는 그 음악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미국인에게 한국적인 발음으로 영어를 하면 전혀 못 알아 듣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사실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제 테크닉을 말할 때는, 육체적인 손놀림만에 국한지어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의미를 확장하여, 고른 소리와 아름다운 소리를 정확하게 낼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음악을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까지를 포함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학부 4학년때, 졸업연주를 준비하면서 근 1년간 발트슈타인을 공부했었다. 나의 음악에 있어서 큰 전환점과 가장 많은 공부를 하게 한 곡이었는데, 난 솔직히 말해서 발트슈타인을 통해서야 겨우 진정한 레가토를 배울 수가 있었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열심히 연습했지만, 여태까지는 아무도 알아듣지는 못하는 발음으로 어색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가토'의 테크닉을 익히자 나는 곧, 발트슈타인 뿐만 아니라 다른 곡에서도 좀더 자연스러운 음악을 표현해 낼 수가 있었다.

레가토기법을 익히는 것은 테크닉임에 분명했지만, 그것을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음악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 있어서의 테크닉이 음악에 앞서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겠다.

좋은 연주자는 아름답고 세련된 음악을 만들 줄 하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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