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김현주가 나오는 <파란만장 미스김 10억만들기>를 끝으로 드라마를 끊겠노라고 선언을 했었다. 그 당시 나의 드라마 중독은 최고 수준으로 본방과 재방송으로 각종 드라마를 섭렵, 내용과 갈등 관계, 주인공들의 이름과 채널번호 시간대.. 등등 시간되는 대로 틈틈이 정말 잘도 봤었다.
사실 연습을 하고 지쳐 있는데 TV 드라마 만큼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도 없다. 이상하게도 드라마를 보면 지끈지끈 욱씬욱씬하던 머리도 안 아프고, 머릿 속이 비면서 편해 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연습에 대한 보상심리로 쉬는 시간마다 드라마를 열심히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난 TV를 많이 보는 건 바보가 되는 거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제는 그런 바보짓을 그만하겠노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나의 고민은 대단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할 정도였다. ㅡㅡ;
아무튼, 그렇게 요란하게 (나름대로) 선언을 한 후 갑자기 많이 바빠졌고, 피곤해서 드라마는 더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파리의 연인>도 처음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볼 시간이 없어짐과 동시에 안 보기 시작하자 관심도 좀 뜸해졌다) 그런데.. 나에게 TV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준 당사자- 우리 엄마가... 시간을 맞춰가며 앉아서 <파리의 연인>을 보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는 핸드폰 컬러링을 바꿔달라, 재방송은 언제 하느냐, 벨 소리는 없는지, 길 가다가 박신양이 부른 노래를 따라하질 않나.. 여태까지는 모든 드라마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던 우리 김여사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다니... 대체 어떤 드라마길래~ 뻔한 내용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걸까.. 나도 엄마 옆에서 슬슬 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를 본 것은 끝나기 전 약 3주정도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부러웠던 것은, 돈많고 매너좋고 카리스마 넘치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박신양도, 슬픈 눈에 모성본능을 자극하며 오토바이, 드럼 등등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주무장한 이동건도, 그들의 사랑을 받는 씩씩한 캔디, 김정은도 아니었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김정은이 아니라, 한 남자를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한 여자였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태영이 기주를 바라보는 눈빛은 참 애절하고도 아련했던 것 같다. 뭐, 김정은이 연기를 잘 했다 못 했다를 떠나서 , 그저 어떤 상황에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배려해 주는 마음씀, 내가 아픈 것 보다 그 사람이 더 아플까봐 염려해 주는 마음, 다칠까봐, 아플까봐 안타깝게 쳐다보는 그 눈길에서 난 문득,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세상에 저런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가 있을까. 저렇게 사랑할 사람이 있을까.. 등등 물음표가 연이어 생겼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아직도 김정은의 그 눈빛이 생각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사랑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되는 가운데 드라마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