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지난 2주간의 더위는 생각만해도 숨이 막혀온다. 아침 저녁으로 그래도 더위가 한풀 꺾인 공기를 마시노라면 벌써 가을이 온 것만 같아서 가슴이 벅차기까지 하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고, 그 더위를 온 피부로 만끽한 것만 같아서 억울해 죽겠다. 

대학1년, 2000년 여름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음악 공부를 하게 된 덕분에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더운 줄 몰랐고, 2년, 2001년 여름에는 나름대로 연애하느라 더워도 덥질 않았다. 아무리 더워도 꼭 붙어다녔다.  2002년 월드컵으로 한창이던 제작년 여름에는 유럽에 돌아다니느라 더워도 마냥 행복했고, 2003년 작년 여름은 졸업연주 준비한답시고 집밖에 나가질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지라 선풍기 하나로도 밖이 그렇게 더운지 모르고 지났다.

그런데

올해 2004년 여름은 하루 종일 덥고, 일주일 내내 덥고, 한달 내내 더웠던 것만 같아서 더 억울하다. 게다가 더운 날도 열심히 밖에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한 것 같아서 슬프다. 팔도 까맣게 탔다. 따로 휴가를 떠났던 것도 아니거늘...

그러니 어제 오늘 쏟아진 빗줄기는 얼마나도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지.. 산성비만 아니라면 나가서 좀 맞아주고도 싶을 정도로 예쁘다.

오늘은 학원에서 아이들과 감상수업을 했다. 그룹별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나는 결국 같은 곡을 5-6번은 듣게 된다. 5분짜리 곡도 가만히 앉아서 듣질 못하고 떠들고, 왔다갔다 하는 녀석들과 함께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듣자니 처음엔 슬슬 열이 받기도 했다. (이미 한 명은 나에게 된통 혼나고 집에 갔다. ㅡㅡ; 죽을라고..)

그런데 이렇~게 앉아서 (우리 학원은 1층이고, 밖이 훤히 보이며, 전망이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빗소리와 함께 <라 캄파넬라>를 들으니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었지만, 곡이 빗소리와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빗소리와 <라 캄파넬라>의 앞부분이 참 절묘하게도 어울렸다. 게다가 마지막에 몰아치는 부분도 오늘의 어두컴컴하면서 약간, 살짝 우울한 분위기와 일치하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창 밖을 보며,  상념에 젖기도 했다. 입으로는 아이들에게, "느낀 점 적어봐"를 되뇌이면서..

컴 실력이 된다면 나도 멋지게 음악을 올리면서 글을 쓰고 싶지만. ^^;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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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08-1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리스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 La campanella(작은 종)

피아노_프랑스 끌리다

 

생각난김에 듣던 중간에 올립니다. 저는 이게 끌리다 여사의 연주가 귀에 제일 잘 들어오더군요.

작년 복학한 후 학교에서 the talented gift라는 제목의 예브게니 키신 다큐멘터리에서 키신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손가락 돌아가는 거 보고 입 쩍 벌렸던 기억이 나네요. 도올의 예술에 대한 정의가 기억나서 말이죠.

"개나소나말이나 할 수 있는 지점에서 감동은 절대로 피어나지 않는다. 죽었다 깨어나도 난 못하겠구나. 이 지점에서 예술의 감동은 피어난다."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거라 음질이 좀 안좋습니다. ^^;;


호밀밭 2004-08-1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가기를 그렇게 기다렸는데 이번 주 여름이 정말 가는 것 같아서 서운하네요.
2004년 여름 저도 어떻게 추억하게 될까 생각해 보았어요. 너무너무 더웠고, 잠깐 바다를 보았고, 그리고 서재에 있었다라고 기억될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 더 올림픽을 했었구나 그렇게 기억될 것 같네요.
빗소리 같은 음악 좋아요. 위에 음악 올려 주신 분 매너님이라고 해야 되나요. 감사드려요. 음악 들려 주셔서요.
그리고 음악 듣고 느낀 점 적기 어렸을 때 해 보았는데 정말 하기 싫었던 생각이 나네요^^. 그냥 머릿속 생각이 글로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호랑녀 2004-08-19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이 권해주신 코간의 바이얼린도 좋았는데요...^^
일산 사신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어느 학원에서는 그렇게 아이들 데리고 음악감상 수업도 하시나요? 주변에 많은 음악학원들이 있는데 음악감상 수업을 하는 곳은 못본 것 같아요.
빗속에서 힘내세요.

Hanna 2004-08-19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nnerist님// 고마워요. ^^ 어제도 말했지만요~(역시 친구를 잘 사귀어야...) 어제 얘기하다가 결국 막차를 놓치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와서 택시타고 갔어요. 우흑! 사실은 교회갔다가 연습한답시고 학원에 온거였는데..^^; 서재의 유혹에 빠져서 놀다가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ㅋㅋ 그래도 이럴 땐, 젊고, 결혼도 안하고 그러니까 늦게 다녀도 되서 재밌잖아요. ^^
호밀밭님// 오늘도 독일문화원갔다가 오는 길에 내내 님 서재 이름 생각해봤는데.. 이것저것 아무리 생각해도 날 듯 날 듯하면서 좋은 이름이 생각이 안나요~ 좀더 기를 모아서..^^;
느낀 점 적는 거... 좀 싫어하긴 하는데.. 그래도 곧잘 하더라구요. 전 많이 안 바래요. 1단어만 쓰라고 하거든요..^^; (국어시간이 아니니깐...)
호랑녀님//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 저도 어제 감상수업하고, 시창/청음, 동요지도.. 한 꺼번에 다 하느라 목이 다 쉬어버렸어요. 힘드니까 대부분의 학원에서는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하잖아요. ^^ 아무튼, 칭찬이시지요? 감사해요~ 그리고 힘내겠습니다. 우쌰!!

호랑녀 2004-08-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한나님... 우리 첨인가요? ㅠㅠ
죄송해요. 제가 늘 들어오는 곳이라서 인사 드렸거니 생각했어요. 황당하셨죠...ㅠㅠ
시창 청음도 하는군요. 와~

Hanna 2004-08-2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당하긴요..^^; 반가웠어요. 늘 들어오신다니! ㅡㅜ 감동적이에요. 아하핫.. 그러셨던 거에요?? 암튼, 고맙습니다아, 저도 조만간 놀러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