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나서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대학교 친구들 또한 자주 보지 못한다.

서로 바쁘고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생기면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내가 약속을 취소할 때마다 아쉬운 듯, 그러나 마침 잘 됐다는 듯 '밥사' 라고 당연히 말한다. 그리고.. 만나면 꼭 내가 사게 만든다. 만나면 첫 마디가 '야, 너 오늘 나 맛있는거 사조야 되는거 알지~!'

사실, 어렵게 한 약속을 취소하면 미안하고 죄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고 보면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사주기가 싫다. 아예 만나기 싫을 때도 있다. - 나의 소심하고 쪼잔한 성격상 그래서 안 만나는 친구도 있다면 내가 너무 짠순이인걸까..ㅡㅡ; -

다른 한 친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서로가 바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며, 잊어버리고 있었던 약속이 있었다거나, 더 중요하고 공식적인 어떤 모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약속을 취소하는 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 때문에 죄스럽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그 친구와의 약속은 편하고, 즐겁다. 시간이 없어도 꼭 만들어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기에는 내 생활이 너무 꽉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렵사리 시간을 내면, 한 친구를 거의 3개월, 길면 6개월에 한 번씩 만나기도 하는데, 요 며칠전부터 그런 친구들(내 삶에서 참 소중하고 경쾌한 존재들이다!)에게 전화가 와서 여기저기 약속을 만들다 보니,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만나게도 되고, 취소하게도 되고, 어떤 때는 친구가 약속을 바꾸기도 한다.

여러 약속(이라고 해봤자.. 3~4명정도 이지만.. ㅋㅋ)을 만들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정말 편한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난 정말 편하고 서로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서로에게 물론 정중하게, 그러나 부담없이 No 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와 진정으로 배려해 주는 사랑을 나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은 나에게 편하고 부담없이, 그러나 물론 서로의 기분을 배려하며 존중하는 말투로.. (이것은 꼭 말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경한다면 누구든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거절의 뜻을 표할 수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 모두 내가 사랑했지만, 난 쉽게 No 하지 못 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제안과 모든 질문에 Yes 해야 우리 관계가 건강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그건 소모적인 연애 게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비단 연인관계 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거래처 등등 모든 인간 관계에서도 해당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나의 제안에 대해, 때로 No한다 해도 부담없고, 편하게 이해해 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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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8-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맞아요. 가끔은 No가 필요해요. 특히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요. 가끔은 친구를 의무처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인간 관계가 어느 정도는 의무성이 있는 듯도 하지만 가장 나를 이해하고 편안해야 할 친구 사이가 그런 의무감 등으로 더 서먹하게도 느껴져요. 세상은 가끔 내 의견을 강하게 말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솔직하게는 말해야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점점 드네요.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저도 No할 수 있고 남의 No도 편하게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Hanna 2004-08-1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맞아요. 근데 이 글 쓰고 나서 바로 바람맞았어요. ㅡㅡ; 우잉~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도 의무감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이 어떤 때는 조금 슬프기도 하지요? 어릴 때는 그저 고개만 돌리면 옆에 친구가 있었는데요. 훗..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