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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대의 사명은
폴 투르니에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폴 투르니에의 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런데 그분의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은 참으로 방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론들을 알고 있으며 신앙적인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친, 여성학, 사회학, 인문학, 역사 등등등 한가지 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저 멀리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요점으로 끌어오는 방식은 참으로 논리 정연하고도 살짝 어렵다.
영화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지만, 투르니에가 생각하는 여성의 사명은, 일을 하고 안하고, 가사노동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에 구애 받지 말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일을 하던, 현대 사회에서 부족하며 더 나아가 금기시 되기만 했던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면에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여성들은 자기의 삶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결정하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결정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같이 사는 남자(?)는 여자가 그러지 않도록 배려해 주어야 하며 여자가 집안일을 하던, 직업을 가지던 여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자는 결정하는 일에 대해서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임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결정에 따른 삶일 때 그 삶이 그 개인에게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직장이냐 집이냐를 놓고 고민하는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특히 양육문제에 있어서. 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결혼도 걱정되긴 하지만, 아이의 양육에 따른 나의 부담감은 그 무엇보다도 큰 것 같다. 하지만 투르니에는 대락 3세 이상의 아이(젖을 떼고 혼자 걷고 조금씩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나이)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엄마와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양육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집에서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답답함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아직 안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특히 관심이 갔던 부분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무의식 중에 여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같은 Paper를 남자이름으로 주었을 때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는데, 여자 이름으로 주었을 때는 굉장히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는 실험(?)결과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남성만큼 똑똑함과 남성보다 특정부분에 있어서 탁월하며 세심한 일처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가 했으니 이렇지, 분명히 여자가 했을 꺼야, 여자들이 하는 생각이 다 그렇지, 여자들이 쓴 글이 다 이렇지'하고 생각했던 적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여자면서... 참 아이러니아닌가?
그의 책은 쉽지도 않고, 자극적으로 재미있지도 않다. 하지만, 어떤 여성학자보다도 예민하며 어떤 학자들의 글보다도 깊이가 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여성에 관한 주제는 모두 지나치게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