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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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 될까?"

 

[명탐정의 규칙]을 읽는 내내 킥킥거리며 새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추리소설이 맞기는 맞는데 뭐랄까 추리 소설을 비판하는 추리소설이랄까, 그것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와 탐정이 죽이 맞아 낄낄대며 비판한다. 등장인물이 자신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독자에게 혹은 다른 등장인물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이 ‘코믹’ 코드의 작품에서 결코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명탐정의 규칙]에서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이 소설에서 잠깐씩 벗어나 혹은 낄낄거리며 혹은 투덜거리며 자신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천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며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밀실 선언’부터 마지막 ‘명탐정의 최후’까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13개의 단편을 통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형적인 트릭과 안일한 구성의 한심한 추리 소설에 대해 냉소를 던지고 있다. 매 편마다 한가지씩의 트릭을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감과 동시에 트릭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 나이에 밀실, 밀실 하며 떠들어 대는 것도 민망해. 자네에게 맡기지. 어차피 마지막엔 자네가 해결할 것 아닌가.”
“별 수 없지요.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분위기를 띄워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감님이 이렇게 나오면 저도 힘들어져요.”
“그 마음이야 알지. 하지만 요즘 세상에 밀실로 소설의 분위기를 띄우라는 건 한심한 요구야.”
“불평도 많으시네. 고생은 제가 제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힘들어?”
당연하지요. 밀실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건,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에요. 또 미스터리 마니아와 평론가들에게 바보 취급당하겠네.”
덴카이치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봐, 울지 마. 알았어, 알았다니깐. 에이 자네 말대로 하지.”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말투를 바꿨다.
“음, 물론 밀실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생각해 볼 작정이야. 하여간, 뭐랄까. 밀실은 엄청난 수수께끼 덩어리지.”
너무나 쑥스러워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수수께끼 입니다.”
  ……

 

이런 식이다. 결국 참다못한 ‘덴카이치’는 “트릭 따위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 적이에요. 밀실의 비밀? 흥, 너무 진부해서 웃음도 안 나오네.”라며 불평을 터뜨린다.

 

[명탐정의 규칙]이 그저 농담이나 저급한 냉소나 쏟아놓는 코믹 소설이 아닌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웃음’ 뒤에 있는 작가의 이해와 애정에 더해 매 편마다 준비되어 있는 작은 반전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유쾌한 두 주인공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의 공도 빼 놓을 수는 없으겠지만...ㅎㅎ

 

[명탐정의 규칙]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감정은 ‘향수’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 편의 이야기마다 한가지씩의 전형적인 트릭을 소개하는데, 전형적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전통적 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번쯤은 본 듯한 트릭을 만날 때마다 필자가 좋아하는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들, 그 고전 추리 소설. 전통 추리 소설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작가는 ‘흉기 이야기 - 살인의 도구’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명탐정이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장면 따위는 앞으로 점점 줄어들 거예요. 뭐, 어쨌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소설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수사 기법과 환경이 전문화 되면서 명탐정이 활약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탐정의 규칙]에서도 몇 번이나 ‘오가와라’ 형사가 이야기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경찰이 탐정에게 시시콜콜 사건 정황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같은 명탐정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는 것은 현대 소설에서 또한 그들을 만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명탐정의 시대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밀레니엄], [쓰리 세컨즈] 같은 극 사실주의 미스터리를 불과 얼마 전에 신나게 읽은 주제에 고전 ‘명탐정’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기에 다소 민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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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0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발달된 본격 추리 소설에 사용된 트릭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죠.서구의 경우 30~40년대의 본격 추리소설의 황금시기를 보내면서 트릭이 고갈된 측면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이 성행하게 됩니다.일본의 경우도 서구의 수많은 본격추리 소설이 거의 번역되고 일본 작가들역시 본격 추리 소설을 쓰면서 트릭이 고갈되죠.그러한 과정에서 명탐정의 규칙이 나오게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이른바 본격 추리 소설이 도일과 크리스티,퀸및 체스터턴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부웅 떠서 일본의 추리 소설및 현대 영미 사실주의 미스터리로 넘어가 경향이 있습니다.그래선지 미스터리 트릭의 고갈 운운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진 않지요.황금시대의 본격추리소설이 다 번역되고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정말 소원입니다ㅜ.ㅜ

휘오름 2012-05-09 20:15   좋아요 0 | URL
음..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트릭의 고갈이라.. 어찌보면 행복한 일이군요. 그정도로 하나의 장르가 활성화 됐다는 것은 그만큼 팬에게는 즐거운 일일테니 말입니다. 국내 추리소설 시장이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라고 느껴왔지만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같이 소프트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황금시대의 작품들이 출간되어 나오는데로 고민없이 구해 봐도 항상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물론 좀 억지일지도 모르겠지만요..ㅎㅎ
아무튼 저는 이렇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즐겁군요.
 
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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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밀레니엄] 시리즈부터 이 [쓰리 세컨즈]까지, 필자에게는 느닷없이 팝! 하고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스웨덴 미스테리 문단의 기조가 이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된다. [밀레니엄]을 읽기까지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그것도 고작 두 편의 작품만으로 거창하게 문단의 기조를 이야기하기에는 성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밀레니엄]과 [쓰리 세컨즈] 두 미스테리에서 신선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쓰리 세컨즈]를 만나게 된 것은 예스 24의 이벤트를 통해서이다. 영화 [무간도]의 이야기부터 여러 미스테리 문학상 수상 내역 등 작품에 대한 온갖 찬사와 치장의 말들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을 작가라는 문구였다. 신간 소개야 워낙에 칭찬 일색인데다가 조그만 것도 마구 부풀리는 과장이 일반적 이다보니 기본적으로 소개 글은 무시하는 편이지만 [밀레니엄]을 워낙 재미있고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국 4회 연속 이벤트의 맨 꼬다리에서 간신히 당첨되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책은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듯한 음산한 분위기의 교도소 복도를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의 소프트 커버에, 종이 질이나 내부 편집도 괜찮고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일단 이렇게 외관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 한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어떨까?

 

아마 [무간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쓰리 세컨즈]는 경찰 정보원의 이야기 이다. 처음에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다. 스웨덴 이라는 필자에게는 낯선 나라의 생소한 지명과 이름들이 계속 새로 등장 하는데다 이걸 또 시시콜콜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너무 늘어놓는게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페이지를 넘어갈수록 마치 직소 퍼즐처럼 하나씩 하나씩 짜 맞추어져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를 깊고 단단하게 다지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초반의 낯선, 그래서 다소 지루했던 배경에 일단 적응하고 나면 이야기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질수록 기어도 한단씩 올라가듯 점점 속도를 더해가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꽝! 하고 폭발하는 느낌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점을 향해 자석처럼 달라붙어 빨려 들어가는 이 느낌, 이 흥분되는 느낌이 [밀레니엄]에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흡인력, 그리고 폭발력은 이 리얼리티, 극도의 사실성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세밀한 묘사와 설명으로 보여지는 현실감,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그 사실성이 기반이 되어 전체 작품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힘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민간 정보원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경찰의 정의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진한 문제의식 또한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성과 치밀한 구성 그리고 진지한 사회 인식까지, 왜 [쓰리 세컨즈]의 작가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가 ‘스티그 라르손'에 비견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있는 이상 [밀레니엄]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리는 없겠지만 ‘살란데르'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무렇게나 쉽게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만큼 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쓰리 세컨즈]에는 억울한 일이 되리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얘기 하자면 [쓰리 세컨즈]의 캐릭터도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 개성도 있고 역할도 있다.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뻘쭘하게 서있는 캐릭터는 없다. 무엇보다 생동감이 있다. 고집 세고 까칠한 노형사 ‘에베트 그랜스', 필요하다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는 냉혹하고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정보원 ‘피에트 호프만', 노형사의 변덕을 익숙하게 받아주며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유능한 형사 ‘스벤'과 ‘마리안나' 등등……. 누구 하나 꼭두각시처럼 작가의 손끝에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문장부호와 행간을 호흡하고 그 순환계에는 잉크가 흐르는 생명체인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이 작고하여 더 이상 [밀레니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길 없던 필자에게 [쓰리 세컨즈]는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엘러리 퀸'처럼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도 부디 오래오래 살아남아 앞사람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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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조니 뎁' 환상의 콤비가 의기 투합.

마녀 하나 잘못 건드린 죄로 200년간 생매장당한 바람둥이 뱀파이어를 부활시키다!

 

'위드 블로그'의 [다크 섀도우] 캠페인에 당첨되어 시사회를 다녀왔다. 장소는 영등포 CGV. 몇 년 만에 나가본 영등포인지……. 모두 그대로인 것 같은데 엄청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전히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 붐비는 곳을 싫어하는 필자에게는 그저 악몽일 뿐…….ㅠㅠ. 특히 타임스퀘어 내에 있는 영등포 CGV는 지금까지 다녀본 CGV중에 인구 밀집 최강이 아닐까 싶은…… 줄 서서 입장해 본 것이 얼마만인지, 심지어 팝콘 하나 사려는 데도 부스마다 줄이 늘어서 있어서 포기하고 결국 편의점에서 콜라 하나 사들고 입장. 비교적 공간이 넓긴 했지만 그만큼 사람이 빼꼭히 들어차 있어서 한쪽에서 [다크 섀도우] 코스튬 이벤트를 하고는 있는데 이건 뭐 존재감도 없고……쩝. 시간도 딱 맞춰 가서 사진도 두어 장 밖에 찍지 못했는데 그나마 영 엉망이라 올리기는 포기……ㅠㅠ. 그나저나 시사회 표는 어디서 받는지 그 넓은 플로어를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고, 결국 안내 데스크에 물어 보고 6층으로 이동. 6층에 가서 또 어리버리 다른 사이트 부스에다 물어보고 헤매다가 간신히 득표. 바로 옆에 입장객이 줄 서서 있기에 거기서 보나 했더니 상영관은 4층 4관. 또다시 아래층으로 이동해서 간신히 표 끊고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상영관 입구가 헛갈려서 (아 글쎄 3,4관 입구가 붙어 있드라니까요……ㅡㅡ;) 헤매고, 아~ 정말 오랜만에 시사회기는 했지만 이렇게 헤맬 줄이야. 완전히 서울 촌놈된 기분이었다.

 

좌우지간 어쨌거나 애니웨이, 맨 앞 A열 중앙에 떠억~하니 자리 잡고 - 늦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솔로인걸 아셨는지 맨 앞자리 표를 주셨더군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워낙에 걸리적 거리는거 싫어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할 뿐……^^; - 미리 준비해간 양파링을 씹으며 느긋하게 [다크 섀도우]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필자에게는 [가위손] 이후 처음 만나는 '팀 버튼'과 '조니 뎁'의 콤비. 필자가 '팀 버튼'이라는 감독과 '조니 뎁' 이라는 배우를 처음 만나고 좋아하게 된 것도 이 [가위손]을 통해서 였다. 특히나 동화 같으면서도 컬트 적이고 선명하면서도 몽환적인 '팀 버튼'만의 색으로 채색된 세계는 그의 영화를 만날 때마다 영화의 새로운 면을 만나는 듯,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 왔었다. 이렇게 한결같은 그만의 색깔을 [다크 섀도우] 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줄는지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과연!?

 

영화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유쾌한 느낌이었다. 비록 '코믹 호러'의 코드를 갖고는 있지만 그렇게 포복절도하는 웃음을 선사하지도 기기묘묘한 장면들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선명한 원색의 색채로 채색되어 있지만 왠지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영상처럼 영화는 한껏 과장된 그러나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로 담담하면서 유쾌하게 진행된다. 이렇게 엽기 코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과장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면이 '팀 버튼' 영화의 특징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그냥 보고만 있어도 왠지 실실 웃음이 나올 것만 같은 '조니 뎁' 특유의 무표정. 그 특유의 어눌한 듯한 무표정만으로 온갖 감정을 표현해 내는 연기는 '팀 버튼'과 환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다.

 

[다크 섀도우]의 또 하나 즐거운 볼거리는 매력만점의 여배우들이 아닐까 싶다. 도자기 같은 피부의 요염한 마녀 '안젤리크 보우차드'역의 '에바 그린' (실제로 나중에 피부가 도자기처럼 부서진다…… 으으읔), 당당한 안주인 '엘리자베스 콜린스'역에는 '미쉘 파이퍼', 항상 술에 취해 있는 매력적인 정신과 의사 '줄리아 호프만'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 바람둥이 '바나바스 콜린스'의 마음을 휘어잡아 종국에는 마녀의 저주로 뱀파이어가 되는 원인이 되는 순정녀 '빅토리아 윈터스'역의 '벨라 히스코트', 마지막에 뜬금없이 '늑대인간'으로 등장하는 비뚤어진 하지만 매력적인 10대 소녀 '캐롤린 스토다드'역의 '클로이 모레츠'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다섯 미녀의 매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시간 가는줄 모르게 즐겁다. 무엇보다 필자는 15세의 '클로이 모레츠'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영화 [휴고]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선명한 미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다크 섀도우]에서는 그 선명함에 10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오묘한 분위기와 요염한 매력을 더해 얼마 되지 않는 등장씬마다 자신의 색으로 화면을 물들이며 인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내는 것이다.

 

여느 '팀 버튼'의 영화가 그랬듯 어찌 보면 [다크 섀도우]는 흥행 코드와는 그리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기가 막힌 액션이나 화려한 효과도 없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속도감도 없다. 코믹 호러 코드에 맞지 않게 빵 터지는 웃음도 모자라다. 한마디로 관객을 들썩들썩하게 만드는 자극은 부족하다. 그러나 한결같이 변함없는 자신의 색깔을 가진 '팀 버튼'만의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고 몽환적인 이야기는 온갖 효과가 난무하는 영화 시장에서, 영화 팬들에게 또 다른 영화의 가능성과 세계를 보여주는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가 또 한번 콤비를 이룬 [다크 섀도우]. 흥행에서도 선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실실 웃음이 나오는 '조니 뎁' ㅋㅋ

 

바라만 봐도 즐거운 [다크 섀도우]의 매력적인 여인들

 

10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마력을 한껏 뿜어내는 '클로이 모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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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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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킵(The Keep)]에서 작가는 매우 대담하고 실험적인 구도를 채택하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이름 모를 고성에서 겪는 통신 중독자 ‘대니'가 감옥에서의 지난 일을 회상하는 듯 싶다가 감옥에서 문학 수업을 받는 ‘레이'가 ‘대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고 이 이야기를 수업을 하는 ‘홀리'가 읽고, 고성에서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전개되다가 마치 아마추어가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듯 뜬금없이 중간에 장면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나가기도 하는 등 혼란스럽다. 그러나 계속 읽어 나갈수록 하나 둘 선후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어느새 스며들어온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되면서 작가의 대담한 구도와 전개를 느낄 수 있었다.

 

접속되지 않은 상태를 단 일초도 견디지 못하는 통신 중독자 ‘대니'. 그는 어쩌면 이토록 거대한 소통의 세계를 살면서 역설적이게도 유래 없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TV, 라디오, 유선 전화의 시대를 넘어 인터넷, 휴대폰, SNS 까지 개개인이 수많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모든 연결이 끊어진 고성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연결을 갈망하는 ‘대니'와 한 마디 말로 자신의 문이 열린 것을 깨달은 ‘레이' 그리고 그 문을 열어준 ‘홀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전자 기기를 끊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과 대화하는 ‘고성'에서 우리는 진정한 소통과 자유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한 편 두 편 리뷰라는 명목으로 부족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 읽기에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읽으면서 어떤 리뷰를 쓸 것인가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면 메모를 해 두기도 하고, 어떻게 리뷰를 시작하고 어떤 이야기를 중심에 둘 것인지, 등등……. 그러나 가끔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난 후에도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그저 재미가 없다거나 아무런 느낌이 없다거나 하면 오히려 쉽다. 그 ‘없음'을 이야기 하면 되니까. 하지만 아주 드물게 무엇인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무엇인가 받았음에는 분명한데 우윳빛 반투명한 막에 가려져 있는 듯한 ‘모호함', 이럴 때가 난감하다. 답답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제니퍼 이건'의 [킵]은 이렇게 드물게 만나는 감각의 소설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필자가 [킵]을 만난 것은 ‘알라딘'의 광고를 통해서였는데, 정확한 워딩은 생각나지 않지만 광고의 전체적인 느낌은 ‘수수께끼의 고성으로의 초대'같은 느낌이었다. 귀가 얇아서인지 타인의 의견에 쉽게 경도되는 편이라서 서평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소개글도 잘 읽지 않는 편인 필자에게 당연하게도 [킵]의 이야기는 미스테리 혹은 스릴러의 장르로 은연중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새하얀 반투명의 얇은 커튼 뒤에 흐릿한 실루엣으로 서있는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 또한 이러한 미스테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실지로 이야기의 구도는 몽환적인 느낌의 고딕 스릴러의 구도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미스테리 & 스릴러’의 코드로 이야기를 바라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소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을 읽고 접근하는데 있어서 이 ‘장르'의 구분이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논픽션을 픽션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미스테리를 순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순문학을 SF나 환타지의 코드로 읽는다면? 뭔가 굉장히 대범한 상상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어긋난 관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것은 작품을 제대로 즐기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다행히 이야기의 초반에 눈치를 채어(눈치는 빠르다..ㅡㅅ-v) 몇 달간 묵혀두고 다시 읽는 방식으로 어긋난 길을 바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얇은 장막에 가리운 듯한 모호함은 그대로이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무언가를 [킵]으로 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공부가 쌓이고 사고가 열려 스스로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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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의 원리 - 원리로 이해하고 이미지로 기억하는 영어의 원리 시리즈
이정훈 지음 / 길벗이지톡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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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에는 정말 좋은 교재들이 많은 것 같다. 뭐 이렇게 얘기는 하고 있지만 필자는 학생 때부터 워낙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처지라 그동안 영어 교재들이 어떤 변천사를 거쳐 왔는지 전혀 알 수 없기에 조금 민망하기는 하다...;;

 

아무튼, 뚜렷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미드를 자막 없이 시청할 수준을 최종 목표로 늦게나마 시작한 영어 공부인데 아무래도 사고도 유연하지 못하고 암기력도 떨어진 듯 해 여러모로 발전이 더딘 편이다. 뭐 예전에는 머리가 좋았냐고 물어보신다면 묵비권을 행사해야 하겠지만서도…….ㅡㅡ; 우좌지간 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그나마 책은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책읽기를 해온 만큼 친근한 책의 도움을 받아보자 싶어서 이래저래 교재를 찾던 중 때맞침 '위드 블로그'에서 [영어단어의 원리] 캠페인을 하기에 신청하여 당첨이 되었다.

 

공부할 수 있는 교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지만 여타 소설류 등의 서평 이벤트에는 몇 번 당첨되어 본 느낌으로는 '서평 이벤트' 자체가 책의 홍보 목적이 있어서였는지 이벤트로 받아본 책들에서 아주 좋은 느낌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영어단어의 원리]는 구성과 접근방식 면에서 확실히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사진에서와 같이 자주 사용하는 영어단어 하나마다 그 기초 의미를 근간으로 해서 파생 변환되는 의미를 이미지 맵 형태로 보여주고 예문과 연상 퀴즈를 통해 확인시켜 준다. 무엇보다 필자가 좋다고 느낀 것은 공부하고 암기한다는 느낌 없이 그냥 일반 책을 읽듯이 한 챕터 한 챕터 읽어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구성과 접근 방식이다. 이 책의 형님격인 [영어의 원리]도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에 한번 구해봐야겠다.

 

그동안 게으른 생활로 굳어있던 머리가 공부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자마자 확 깨어날 리는 없겠지만 [영어단어의 원리]와 같은 좋은 교재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노력한다면 필자와 같은 사람도 언젠가 미드를 자막 없이 보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한걸음씩 나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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