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소설가 박태원의

결혼식 방명록에 쓰인 당대 문인들의 친필 축하 메시지를 보았어요.

 

 

 

이상의 친필                                                                         사진 출처: 연합신문

 

 

 

結婚(결혼)() 慢畵(만화)에 틀님업고/

慢畵實演(실연)에 틀님업다/

慢畵實演(만화실연)眞摯味(진지미)/

또다시 慢畵輪廻(윤회)한다.”

 

 

 

 

저, 낯익은 길쭉한 얼굴은 4차원세계, 이상이지요. 그런데 방명록에 ' 李箱이 아닌 以上으로, 만화(漫畵)’만화(慢畵)’라고 의도적 오기를 했다고 해요. 이런 의도적 오타는 그가 자주 써먹던 방법이죠. 절친한 친구가 장가 드는데 결혼은 만화다, 라고 쓰다니 장난꾸러기! 신혼의 단꿈에 젖은 이태원이 방명록 펼쳐보고 좀 놀랐겠죠? 마치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 제목이 주는 충격처럼요. 그런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표현보다는 "결혼은 만화다"라는 표현은 말 자체가 충격이라는 점은 같지만 격은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혼인을 만화에 비유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예요. 만화같은 혼인, 혼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네요.

 

 

 

 

 

정지용의 친필                                                                사진 출처: 연합신문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향수의 정지용이 쓴 축사는 글씨체도 정겨워요.

갓 글자를 배운 아이들이 쓴 글씨처럼 반듯반듯한 모양,

꽃 피였으니 열매 열고 뿌리는 다시 깊히!

이상의 축사에 비하면 모범생 답안 같은 반듯한 내용이지요.

 

 

 

 

 

이태준의 친필과 삽화                                                        사진 출처: 연합신문

 

 

 

 

문장론』과 『문장강화』를 쓴 상허 이태준은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한 표현을 했군요.

1+1=1

결혼에 관하여 명확한 설명이죠. 결혼이란 남자 한 사람과 여자 한 사람이 만나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는 걸 누가 모르겠냐마는, 살아보면 그게 그렇게 만만한 건 절대 아니지요.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이죠. 각기 다른 별에서 온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저렇게 간단히 적으니 참,,,,,,뭐라 더 이상 할말이 없어지네 만드네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 2:24~25)라는 성경 구절도 생각나고요.

저건 무슨 과일일까요? 제 눈엔 복숭아 같아 보이는데....무슨 과일이 되었건 두 사람이 하나가 될 때 과일처럼 탐스럽고 단맛나는 삶을 산다, 제 맘대로 해석해 봅니다.

 

 

 

 

그 외에도 조벽암은

 

 "결혼생활은 이밥(쌀밥) 갓소(같소). 맛은 없어도 일생을 질기는(즐기는) 것이오니"

 

 

라고 방명록에 썼는데 제 마음에 쏙 드네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한 끼만 거르면 허기지는 밥같은 배우자가 되길 원해요.

방명록 대신 축의금 봉투에 "祝 結婚" 만 덩그렇게 써놓고(아예 글귀가 인쇄된 봉투도 있다) 오 만원 넣을까 십 만원 넣을까를 고민하기도 바쁜 오늘 날 우리네 혼인풍습과 사뭇 비교가 되어 옮겨 봅니다. 20120223.ㅁㅂㅊㅁ.

 

 

 

 

 

 

 

 

 

 

 

            소설가 박태원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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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2-2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주신 페이퍼를 보니
옛스러움이 그리워집니다.

한 때 시인 정지용님을
'정 똥글라미 용' 이라고 표현하던 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깊습니다.
시절이 바뀌어
이제는 정지용이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진주 2012-02-25 19:34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지용 원본시집이 걸려 있었어요.
옛날 같았으면 큰일날 일이죠. 불온서적 읽는다고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 갔을라나? ㅎㅎ

숲노래 2012-02-23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나스타시아>라는 책을 읽다 보면
6권째에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섯 살짜리 아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버지한테
"왜 1+1=2라고 하지요?" 하고 물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나를 낳았으니
"1+1=3"이 되고 4나 5도 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진주 2012-02-25 19:36   좋아요 0 | URL
그러면...된장 님 댁은 셈이 어떻게 되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1+1=? ㅎㅎㅎㅎㅎ

LAYLA 2012-02-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멋진 페이퍼네요.감동입니다.

진주 2012-02-25 19:40   좋아요 0 | URL
layla님께서 감동하셨다니 저 페이퍼 만든 보람 있네요.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책읽는나무 2012-02-2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인이어서 멋지게 남길 수 있는 방명록!
그것을 귀히 간직한 또 한 명의 문인!
또 멋지게 읽히는 하나의 페이퍼!
추천안할 수가 없네요.^^

결혼은 만화라는 말이 실로 새삼스럽게 들리네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결론도 어쩜 만화의 한 장면에서 따왔을지도 모르겠고,
이해되어지지 않는 결혼생활들이 만화이기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분명 이해되어지는 열쇠가 될 것도 같구요.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구문이에요.
그래서 이상은 천재였었나봐요.^^
그럼 우린 만화의 주연배우들인가요?ㅋㅋ

진주 2012-02-25 19:41   좋아요 0 | URL
ㅋㅋ그러게요, 이 만화의 주인공은 우리가 되네요~ㅎㅎ
각자 주연역활 잘 해서 집집마다 아름답고도 재밌는 만화 한편씩 만들어 봅시닷!ㅋㅋ

stella.K 2012-02-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가 저 만화가 무슨 차인지 결혼을 안한 저로선 모르겠군요.
가르쳐주시와요, 진주님!ㅋ
이 페이퍼 좋으네요.^^

진주 2012-02-25 19:42   좋아요 0 | URL
사실..살아봐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랍니다ㅋㅋㅋ
혼인은 이것저것 다 알고나선 절대 못하는거라는 것만 확실히 알죠.
철없을 때 모르니까 천지를 구분 못하고 하는거죠^^

水巖 2012-03-02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에 청계천 문화관에서 <청계천에서 만난 사람, 구보 박태원> 이란 전시가 있었는데 본 기억이 나는군요. 옛날 발행했던 책들, 결혼사진도 있고 방명록도 있고 박태원선생 서가도 있었고 마침 가던 날 박태원 선생 둘째 아드님도 만나 사진도 찍어주고 했었는데 구보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이었던것 같군요.

진주 2012-02-25 19:44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수암님께서 서울'특별시'가 주는 다양한 문화를 맘껏 누리며 사시는군요^^
부러워요. 부지런히 좋은 구경 다니시고 우리한테 이야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