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언어 실력은 어머니(부모)가 구사하는 말에 큰 영향을 받는다.
나의 어머니는 경상도 토박이시니 나는 자연스럽게 경상도 탯말을 익혔다.
뭘 모르던 시절-그러니까 교내 방송반이나 음방 디제이 한답시고 마이크 좀 잡고 깝작대던 시절-에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같이 달라붙은 사투리 억양이 마뜩찮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진득하게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중세국어의 흔적)방언학을 전공해보리란 소망까지 가진 적도 있다.
말을 배울 때부터 내 몸에 배여 있던 탯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나온다. 아, '말 배울 때'가 아니구나. 탯말 역사는 내가 갓난쟁이였을 때 옹알이밖에 못하는 아기한테 눈을 맞추며 어르고 달랠 때부터 들은 말이요, 더 일찌기 어머니 뱃속 아기집에 자리잡기 시작할 때부터 내 어머니는 따스한 손길로 배를 쓰다듬으며 귀도 안 생긴 나에게 걸어준 말이니 생명이 시작된 출발점부터 시작되었다. 학교나 책에서 배워서 아는 말이 아닌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말과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표현들을 곱씹어보면 새로운 맛이 난다. 마치 객지 생활하다가 고향집에 와서 먹는 집밥처럼 감칠맛이 돈다. 아무 조미료 없이 그저 된장 마늘 넣고 손으로 무친 푸성귀 나물무침 같은 말. 투박한 말. 구수한 말. 향토의 넋이 깃든 말.
"니 올 때 방구리 가꼬 온네이~발당세이 말이다."
오늘 기억해 낸 낱말 '방구리'와 '발당세이'.
어릴 적에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촌스럽게 들렸다.
"바구니? 반짇고리 말이지?"
이렇게 어머니를 가르치려 드는 것도 모자라, 반짇고리를 턱 갖다 놓으면서는
"그래도 나나 되니까 알아듣고 반짇고리 갖다 주지,
서울서 시집 온 며느리라면 얼마나 고민하겠어?"
하면서 혼자 똑똑은 체 했다. 어머니의 낱말사전엔 분명 '바구니'도 따로 있어서 "뒤란 감자 바구니"라는 말도 쓰셨는데 방구리를 바구니로 오해한 건 순전히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우짠지 풀방구리에 새앙쥐 모냥 들락거린다켔다. 니가 다 뭇제!"
어느 날엔가 말리던 곶감을 몰래 먹다 들켜 혼쭐나면서 '바구니'와 다른 '방구리'의 존재에 대해 퍼뜩 깨닫게 되었다. 방구리를 사전 찾아보면 어엿한 표준말.
방구리
[명사] 물을 긷는 질그릇의 하나. 모양이 동이와 같으나 좀 작다
예문:1)저쪽에서 방구리를 이고 가는 마을 처녀의 모습이 보였다. 초급
2)아이들이 부엌에 들락거렸던 이유는 꿀방구리 속에 담은 꿀을 몰래 먹기 위해서였다. 중급
'방구리' 앞에 접두어를 붙이면 여러 모양으로 활용 된다. 이렇게
'발당세이'로 들리는 소리를 문자로 풀어쓰면, '바느질 당세기'이다. 바느질이 '발'로 축약되는 건 경상도 탯말에 흔히 있는 일이다. 당세기를 사전 찾아보면,
당세기
방언 ‘고리2’의 방언(경남).
고리(2)
[명사] 껍질을 벗기어 버린 고리버들의 가지. 옷담는 고리나 키를 만드는 감으로 쓰임. a wicker trunk 고리나 대오리를 엮어서 상자같이 만든 물건. 옷을 담는 데 쓰임. 고리짝. 고로(拷 木+老)유기.a wicker basket
이 참에 '고리'의 어원이 '고리버들'에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고리버들
형태분석 : [+고리+버들]
[명사][식물] 버드나뭇과에 속한 낙엽 관목. 들이나 냇가의 축축한 땅에서 난다.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어긋나거나 마주나며, 꽃은 단성화(單性花)로 많이 핀다. 가지는 껍질을 벗겨 버들고리나 키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우수리 강 등지에 분포한다. 학명은 Salix purpurea var. japonica이다.
'당세기'가 '당세이'로 변한 것은 꼬치꼬치 일일이 다 발음하기를 심히 번거롭게 여기는 경상도 말의 특징 중 하나로 발음하기 손쉽게 '기'가 '이'로 수월한 소리로 바뀐 것이다. 발음의 경제성이라고 할까.
발당세이 > 바늘질 당세기 > 바느질 고리 > 반짇고리
로 정리하면 되겠다.
재미있는 경상도탯말 오늘 공부 끝.20120209ㅁ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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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 올 때 방구리 가꼬 온네이~발당세이 말이다."
---> 너, 올 때 방구리 가지고 오너라. 반짇고리 말이다.
2) "우짠지 풀방구리에 새앙쥐 모냥 들락거린다켔다. 니가 다 뭇제!"
---> 어쩐지 풀방구리에 생쥐 모양 드나든다 싶었다. 네가 다 먹었지!"
*사전은, 친절한 daum포털싸이트 국어사전과
우리집에 꽂힌 뚱띠한 『밀레니엄 새로나온 국어대사전』(민중서관)을 참조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