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결혼 반대야.

혹시라도 당신, 주례 맡을 생각 추호도 하지 마~

 

가령 누군가가 혼기가 넘도록 혼자 살고 있다면 주변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사자도 혼인이란게 마치 반드시 치뤄야만 하는 통과의례인양 안달이다. 그뿐인가, 결혼한 후로 한참 세월이 지나도 태기가 없으면 온갖 좋다는 보약 다 해 먹으면서(혹은 해 먹이면서) 잉태하(시키)려고 애 쓴다. 혼자 살아도 행복을 가꿀 줄 알고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기쁘게 살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혼인해서도 행복하게 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몇년전에, 나이가 계란 한 판 넘겼다고 한숨 쉬던 ㄱ양. 주변에서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까지 청첩장을 보내오니 남몰래 조바심이 들었던가 보다. 그 사실을 나는 눈치 채지 못 하였다. 내 눈엔 그녀가  결혼은 관심도 없어 보였고, 철밥통 직장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워낙 똑똑하고 당차서 결혼 따위 안 해도 얼마든지 행복한 제 삶을 꾸려나갈 빵실한 계획을 갖고 쭉쭉 뻗어나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내게 멋진 총각으로부터 참한 아가씨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엮어주고 싶은, 딱 떠오르는 아가씨가 있었다. 말 그대로 선남선녀.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ㄱ양이 불 같이 화를 내며 반대하였다. 그 아가씨의 단점을 시시콜콜 들추면서 나중에 오히려 내가 낭패 볼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어이 없었다. 남편 제자들 가운데 가장 선배인 자신을 제쳐두고 후배를 먼저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그러는가 혼자 짜맞쳐 보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납득이 안 되었다. 그 일 후에 ㄱ양은 나한테 서먹하게 대했다.

 

사실 ㄱ양한테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본인과 부모님 정도만 아는 비밀을 우연찮게 내가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암으로 자궁을 적출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힘겹게 투병 했을지 또 한참 예민한 시기에 마음의 상채기가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만 하여도 애틋하였다. 여성성을 상징하는 그것을 잃고 마음의 짐이 무거웠을 텐데 꿋꿋하게 잘 이겨내어 강하고 활달하니 대견해 보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는 내 생각은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해서 결혼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기는 가슴으로 낳는 방법도 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밤마다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 들어가는게 못 견디게 괴로울 때 비로소 하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족하다. 그런 내 사고방식을 잘 아는 ㄱ양이이니 그 멋진 총각을 자신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은 이유를 오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작년 느지막한 가을에 ㄱ양 전화가 왔다. 오랫만이라 반가운데 더 반가운 소식까지 전했다. 청혼을 받았다는 것이다. 엄훠~ 증말? 와우! 잘 됐다~축하한다, 이제 날만 잡으면 되겠네, 양가 인사는 했어? 나혼자 신나서 속사포 질문을 퍼붓다가 수화기 저쪽 너머가 심상찮게 조용하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저......제가.....과연....

자격이 될까요.....

 

자격? 

넌 사랑하지 않니?

 

사랑...해요....

 

ㄱ양이 주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지하게 말했다. "사랑은 두려움이 없는거야." 상대방의 어떠한 약점도 꺼려지지 않고 나의 어떠한 부족한 모습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사랑이다. 두 사람이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는 것이 창조주가 설정하신 부부의 신비한 이치이다. 사랑한다면 용기를 내길. 그것이 또한 부부가 되기로 한 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새끼 발가락의 티눈까지 족족 고백할 필요야 없겠지만 부부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데 조금이라도 망서려지는 것이라면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다음 소식이 궁금했지만 ㄱ양은 묵묵부답인 채로 해를 넘겼다. 설 직전에 남편 사무실로 ㄱ양이 대뜸 남자를 대동하고 들어서더란다. 청혼한 그 이인줄 대번에 알겠더라고 남편이 말했다. 셋이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왠지 ㄱ양이 전처럼 편하지가 않아서 남편은 ㄱ양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고 했다. ㄱ양은 (내ㅋ)남편을 평소에 너무나(!) 따라서 정말이지 허물없이 지낸다. '설에 양가 어른들께 인사 갈 것이고~' 따위의 앞으로 진행될 희망찬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굴에서 그늘이 지워지지 않아 남편은, "집사람이 네 소식 많이 궁금해 하던데?"라고 말을 돌렸단다. 

 

표정이 굳어지고 긴장하는 표가 역력했다고. 남편은 아무래도 ㄱ양이 그 사실까진 말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남자는 그 집안의 외아들이고, 고령의 할머니가 증손자 보고 가겠다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는 대목에서 ㄱ양의 반응까지 덧붙이며 남편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 남자를 어지간히 사랑하나봐.

고백하면 행여 놓치기라도 할까봐 말을 못하는 거지.

 

아니, 그러니까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지.

그런 고백에 흔들릴 사랑이라면 말야.

또 도망갈까봐 말 못하는 것도 욕심.....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나는 말끝이 흐려졌다. 그렇다. 우린 누구도 사랑에 대해 장담하지 못한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사랑은 참 쉽다. 진정한 사랑은 고통을 뚫고 나오지만 머리가 아프거나 복잡지 않다. 사랑은 좋은 것, 사랑은 선한 것. 어떤 장벽도 두려워하지 않는 진실한 것. 설사 내 방식과 다를지라도 부디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의 방식을 발견하고 진짜배기 사랑을 이루어 가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반대한다. 남편이 이 혼인에 주례를 서는 것은.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나는 이들의 혼인에 대해 온전한 마음으로 축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혼인에 이르기까지 사랑이 여물기까지 그들은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리라 싶다. 20120128ㅌ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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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1-2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인에 앞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또렷하게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두려움이 없더라도
아름다움이 꽃피우는 사랑이 되기는 어려우리라 느껴요.

진주 2012-01-29 21:38   좋아요 0 | URL
된장님 말씀대로라면 그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그림을 그리는지도 모르죠.ㄱ양의 상황을 모르는 서른 중반 그 남자는 이제사 똑똑하고 예쁜 짝을 찾았으니 한시바삐 혼인해서 남들처럼 예쁜 아기 낳아 할머니 품에 안겨 드리며 온 가족이 하하호호 웃음꽃 피우며 사는 그림..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그런 난관도 뛰어넘을만큼 강하다면 혼인하는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알려야 겠지요.

만약 남자가 아기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한다면 혼인은 이루어지기 어렵겠지요. ㄱ양이 두려워하는 부분이죠. 그렇다고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혼인한다면 후폭풍은 더 무섭게 몰아칠 것이며 잃고 싶지 않아 숨기는 것도 진정한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두 사람이 진실된 마음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을 함께 그리면 좋겠네요.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요...

숲노래 2012-01-2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마음 살뜰히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나누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기를...
그분들뿐 아니라 모두들 착하고 맑게 생각을 주고받는 나날이 되기를 빌어요... ㅠ.ㅜ

차트랑 2012-01-3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은 철이 없을 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를 때
그럴 때 하지 않으면 '나 이 결혼 못~해~!!' (개콘버전입니다 ㅠ)

되돌아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리 겁도없이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 했던가?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ㅋ
그러나 그렇게라도 결혼을 하길 잘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요^

그리고...
저 역시, 알려야 할 사실은 꼭~!!! 알리는 것을 권장해드립니다.
나중에 실망하면 안되잖아요 ㅠ.ㅠ

진주 2012-02-01 16:03   좋아요 0 | URL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하잖아요?
옛날의 저는 어차피 하는 후회라면 '하고 보자'쪽이었는데
요즘은 반대예요. 안 하고 그럭저럭 자기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면
하지 않는게 더 좋을 듯 싶어요..
이 생각이 이제사 드니 이것도 철드는 것과 상관있는 문젤까요? ㅋ

프레이야 2012-01-3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대문 사진 뭐에요??
궁금궁금 진주님 뒷모습인거죠? 너무 아름답잖아요. 머릿결하며 머리모양하며
가녀린 등판하며.. 어서 말해봐요 어서.ㅎㅎ

책읽는나무 2012-02-01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요
뒷태가 너무나도 매력적인~~~

라로 2012-0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뀌신 모습 보고 얼렁 달려왔어요!!!
아가씨 같아요!!!
우리가 비슷한 또래라도 알고 있는데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겁니까????ㅎㅎㅎ

진주 2012-02-0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ㅎㅎㅎ
ㅎㄱ님, 나무님, 나비였던 츄츄님!
그게 그리 궁금하셨쎄여? ㅋㅋㅋ아궁 못 살어~
한 때 저도 머리모양만 소녀시대인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전에 있던 그 사진의 머리모양 기억나시죠?
다듬지 않아 맘대로 풀풀 날리는 단발머리ㅋㅋ

저 외진 곳에 조용하게 살다가 갑자기 관심 받으니 너무 쑥스러워
에이~사진 바꿉니다. 이미지 한 번 바꾸기가 힘들지 두번 세번은 쉽네요...이긍...
아..저 사진은 저을때 울 남편 손 아닙니다.
제 손도 더더욱 아니구여. 그냥 아뭐 상관없는 사람들 손입니다.
아..저것도 또 물으실래나? 아예 진주 목거리나 진주 조개 사진 올릴까요? ㅋㅋ

글 하나 올리러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네요~^^;

북극곰 2012-02-02 09: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나가지 마시고, 담에 글 올려주세요.

진주 2012-02-02 13:22   좋아요 0 | URL
사진 때문에 집적거리다보니 시간이 없어서요..ㅎㅎ
오늘 올렸습니다^^

차트랑 2012-02-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이 제대로 드시는 겁니다요 ㅠ.ㅠ

진주 2012-02-02 13:23   좋아요 0 | URL
음악 들으세요~ㅎㅎ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은 다음에 또 시도해볼게요^^

차트랑 2012-02-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듣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