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생일에 어머니의 집에 모인 삼남매. 어머니는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날거라는 걸 알고 삼남매에게 그동안 수집한 골동품들을 설명한다. 삼남매는 어머니의 소중한 유품인만큼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듯 어머니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하다. 어머니가 살던 집도 처분하라고 했을때 삼남매는 마치 해마다 어머니를 추억하기 위해 들를 것처럼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느날 세상을 떴다. 삼남매는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어머니가 남긴 골동품과 집을 알뜰살뜰하게 등분하여 나눈다.
여름, 이라는 계절을 하나의 정서로 생각해본다. <8월의 길위에 버리다>를 쓴 이토 다카미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동을 유도 한다고 했다. 그동안 움츠렸던 어깨, 구부렸던 등을 활짝 펴고 이제 나도 무언가를 즐기고 느끼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시간이 여름이 아닐까. 여름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휴가 라는 정당한 쉼의 날들이 다가오는데 그때 우린 미뤘던 인연들과 해후하고, 그들과 즐거움을 만끽하려 한다. 여럿이 함께여야 마땅할 것만 같다. 명절의 의무감이나 책임감 없이 자유롭게 훨훨. 영화의 어머니는 그들의 말랑한 정서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는 듯 골동품의 가치를 설명한다. 어머니는 옳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삼남매가 알뜰 살뜰 유품을 나눴다고 해서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정서, 주검이 나설 소관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테니까.
우리 엄마는 4남매를 낳았다. 가을, 겨울, 여름, 봄에 네 아이를 낳았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한 조각은 아픈 엄마다. 아이를 낳은 산달마다 어미는 아프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 맞나보다. 오빠와 나는 저녁을 먹고 약국에서 엄마가 늘 먹던 약을 사오기도 했고, 언니들은 엄마를 대신해 소시지와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밥상을 차리기도 했다. 내가 열살 때, 엄마는 그 해여름에도 아팠다.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엄마는 오빠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만들어 이웃들에게 돌렸다. 수수팥떡을 정답게 나눠먹던 그 여름밤, 엄마는 결국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가족은 음식과 과일을 싸들고 가까운 계곡으로 놀러갔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가다가 문득 우거진 수풀 사이로 엄마의 얼굴을 보았는데, 핏기라고는 없는 얼굴색, 버석하게 마른 건조한 입술에 풀이 죽었다. 아이는 엄마의 건강과 울타리를 느끼며 자란다고 했던 것처럼 엄마가 아프니 계곡에 놀러가도 신나지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가 계곡에서 물장구치고 장난치는 걸 기꺼이 지켜보며 웃곤했다. 엄마가 노란 참외를 깎아 우리들 입에 넣어줬다. 나는 마치 자양강장제라도 먹은 것처럼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엄마가 수박을 썰어 우리들 손에 쥐어졌을 때 엄마가 이제 아프지 않은 것만 같아 안심했다. 그날 아빠가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4남매처럼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수박 한덩이를 든 둘째 아들은 얼마전 일가를 이룬 아내와 아내의 아들과 집으로 향한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딸은 호시탐탐 친정으로 들어와 살 궁리를 한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더이상 환자를 볼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가족에겐 무뚝뚝하지만 젊은 시절엔 마일즈 데이비스의 재즈를 들었던 아버지는 장남이 자신의 대를 이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장남은 바다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고 세상을 떴다. 둘째 아들은 우월한 형과 늘 비교 대상이었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서글픔을 조금씩 터트리고 있다. 그것은 때로 아이같기도 하지만 유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아픔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 깊은 골과 갈등을 갖고 있는 보통의 가족들.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적나라할 정도로 뚜렷한 인간의 내면과 맞닥뜨린다. 연약한 인간의 육체에 그렇게 단단하고 깊은 감정들이 숨어있다는 건 슬프고 복잡하다. 어머니의 아픈 추억이 깃든 노래, 홀로 분노를 삭히며 듣곤하던 노래 '요코하마'가 울려퍼지던 밤, 아버지는 얼마나 찔렸을까. 어머니는 해마다 장남의 기일에 방문하는, 장남이 구한 소년 (이젠 어른이 된 그) 에게 겉으로나마 관대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분노를 갖고 있다. 둘째 아들이 이제 그만 소년을 불러도 되지 않겠냐고, 소년이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하자 어머니는 말한다. 고통스러우라고 부르는거라고. 미워할 대상이 없으면 너무 괴롭지 않겠느냐며 자식을 잃은 부모의 통한을 나지막이 고백한다.
이 대목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자와의 경계선을 드러낸다. 비록 갈등과 골이 패인 가족이지만 그들은 삭히고 감추며 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자, 소년에게는 관대할 수가 없다. 그는 내 아들을 잃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결코 세월이 흘러도 내 가족을 잃게 하였다는 죄목을 벗어날 수는 없다.
잠깐이나마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스물 한살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그땐 정말 무지할만큼 나에 대해서 몰랐던 시절이다. 움츠러들지 말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야무지게 살았어야 했는데.
마코토처럼 타임 리프가 가능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아쉬운 게 아니라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저 자주 돌아보는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며칠전에 지나다 그런 글귀를 보았다.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절망스러운 게 아닌가, 라는 뉘앙스의 글. 그러고보니 나, 요즘 참 최선을 다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OST가 아주 훌륭하다.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비롯한 주제가들은 청량한 젊은날의 여름처럼 맑고 선명하다.
곧 8월이다. 뜨겁고 오싹한 (공포와는 다른 허무의 결정체로서의 오싹함) 고딕 소녀의 프랭키는 열두 살. 프랭키이면서 F재스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소녀는 오빠의 결혼식을 앞두고 세상과 갈등하고 있다. 프랭키가 바라보는 결혼식은 두 사람이 어떤 멤버가 된다는 뜻이며, 어딘가로 떠나 그들만의 세상을 꾸려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랭키는 어떻게든 결혼식에 가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프랭키와 늘 밥을 먹고 카드 놀이를 하는 배러니스 아줌마와 사촌 동생 존 헨리리는 프랭키를 걱정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가르치기도 하며 꾸짖기도 한다. 그래도 프랭키는 자신의 뜻을 굽힐 수가 없다. 여름의 풍경을 다양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카슨 매컬러스는 <슬픈 카페의 노래> 에서 처럼 허무한 사랑, 허무한 계절, 쓸쓸하고 고독한 정서를 노래한다.
애어른 같은 프랭키, 혹은 F 재스민은 주옥같은 말만 한다. 주옥이, 프랭키가 좋다.
"싫어. 왠지 설명할 순 없지만, 라디오를 다시 켜는 건 싫어. 지난여름을 너무나 생각나게 하거든."
프랭키도 매력적이지만 배러니스 아줌마는 더 매혹적이다.
"때로 나는 차라리 애초부터 루디를 몰랐더라면, 하는 마음이 될 때가 있어. 너무 응석받이가 되거든. 그리고 나중에 너무 외로워져. 저녁에 일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노라면 작고 외로운 모과열매 한 개가 맘속에 들어앉는 것 같아. 그런 감정을 삭이려고 말도 안 되는 인간들하고 어울리게 되지."
배러니스 아줌마는 네 번의 결혼 경험이 있다. 아줌마는 지금 한 남자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그는 자신을 설레게 하지 않으므로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오빠의 결혼식을 상상하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는 열 두살 프랭키에게 배러니스 아줌마는 이렇게 말한다. 프랭키가 필요한 건 애인이라고. 그러나 프랭키는,
"애인 필요없어. 어디다 쓰게?"
"이 바보야 어디에 쓰긴. 영화를 보여달라고도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이제 너 그렇게 거칠고 욕심많고 우악스러운 행동 좀 고쳐야 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고, 말도 상냥하게 하고, 행동도 여우같이 해야지."
배러니스의 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녀는 프랭키가 자신의 드레스에 칭송만을 원하자 '분명 잘못된 것에 대해 좋다고 말하라는 거잖아.' 라며 프랭키를 꾸짖을 줄도 안다.
프랭키 혹은 F 재스민, 배러니스, 존 헨리의 여름 식탁에 초대 받으면 나도 마음껏 미치거나 이상한 사람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올 여름에 그들이 식사하는 방식은 늘 이렇게 진행되었다. 잠시동안 먹고 나서 음식들이 몸 안에서 퍼져 자리잡을 시간을 좀 주고, 조금 뒤에 다시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63쪽.
프랑스 태생의 여자들 이야기다. 코코 샤넬, 제인 버킨, 까미유 끌로델,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베이유, 이자벨 아자니, 세골렌 루아얄, 퐁파두르 부인등... 프랑스 사회, 이 세상을 뜨겁게 산 여자들이다. 그들의 일생을 요약하였으므로 가벼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퐁파두르 부인 이야기를 읽다가 지난 겨울에 읽은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오브제들, 의자, 책상등 가구를 살피며 왕족의 이야기를 실었는데 꽤 흥미로웠다.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그림자처럼, 분신처럼 살았던 여인이었으나 그의 아내가 되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 한다. 하여 그녀는 철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사랑을 얻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흑.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직업은 '레모네이드 소년' 이다. 이 소년은 카페 배달원으로 카페에서 초콜릿을 배달 시켜 마셨던 당시의 여유로운 생활을을 드러내는 표상이다. 가끔 상상한다. 레모네이드 소년이 막 내린 원두 커피, 얼음 동동 띄운 레모네이드 한 잔을 가져오는 일. 세노 갓파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들의 방을 세밀하게 그렸다. 어찌나 정밀한지 그걸 정말 손으로 그렸을까 싶은데 세노 갓파는 사진을 촬영하고 집으로 돌아와 세밀하게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들 중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책상에는 이런 메모가 붙어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평등 욕망'은 여전히 건재한다. 바탕스는 평등으로의 탈출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감히 넘보지 못했던 것들을 바캉스 때엔 '질러도' 된다. 아니 질러야만 한다. 바캉스는 자신이 모든 위계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존재라는 자기 확인의 기회이기 때문에 그 어떤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만끽해야할 그 무엇이다. -강준만, 고독한 한국인 41쪽.
무더운 여름, 침몰한 서울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참 안좋다. 거실 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워 서울 생각, 서울 걱정, 서울의 추억을 헤아리다보면 그 끝엔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모아진다. 그래도 여름이니까, 가 아니라 아픈 생각을 지우려는 얄팍한 술수 때문이다. 난생 처음 조리를 샀다. 크림색 조리를 신고 나풀나풀 바다 구경하러 가고싶다. 거실 마루에 벌러덩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여름날의 평온한 오후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