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이가 은사님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나도 은사님께 느꼈던 바를 어떤이는 정갈하게 다정하게 적었다. 어떤이의 글에 비친 은사님은 청년이다. 오늘은 꼭 안부 전화를 먼저 드려야겠다.

지난 여름, 은사님은 여행을 하시던 중 내게 문자를 보냈다. 제자의 안부를 묻는 은사님의 바다가 그 깊은 연륜이 평화로워서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심과 어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공경심보다 어려움이 몇 배는 더 크다. 윗사람과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되도록이면 그분들과 거리를 두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은사님과 먼 곳에 앉아야 편하고, 은사님과 두 번 정도 눈을 마주치는 정도가 편하다. 그 후로 은사님의 문자를 두어번 더 받았다. 나는 먼저 문자하는 것조차 은사님을 방해하게 될까봐 꺼려하고 있었다. 좋은 뜻으로 말하자면 은사님의 시간에 나의 문자가 모난 조약돌이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말씀드려야 할 일은 메일을 보냈고, 간혹 전화를 드려야 할 상황에서는 바른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다보니 은사님과 전화 통화를 끊고 난 후엔 진땀이 나곤 했다. 지난 봄엔 은사님과 홍대앞 술집 노천에서 맥주를 마셨다. 은사님이 농담을 즐기고 (때로는 썰렁한 농담이었는데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 제자들의 기를 세워주셨다. 그건 진짜 애정한다는 뜻이었다.  

문득, 은사님에게 혹은 윗사람들에게 나의 태도가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껏 마음을 열고 있는 사람에게, 두 팔을 벌린 사람에게 긴장하고 있는 태도는 예의 바름이 아니라 과잉 방어로 읽힐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어떤이가 쓴 은사님의 글을 읽는다. 은사님의 글도 읽는다. 거기에는 맑은 가을이 들어있다. 모카 브라운 느낌의 맑은 가을.
 



부디 - 심규선 (with 에피톤프로젝트)

오 부디 다시 한번나를 깨워
오 제발 지친 나를 일으켜줘
다시 나의 손을 잡아줘
이제 잡은 두 손을 다신 놓지마
제발


심규선에게 이런 고음이... 높고 화려한 계단이 있었다니. <선인장><꽃처럼 한철만 사랑해줄껀가요> 에서 들리던 음색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나는 파워 워킹을 하면서도 이 노래만 들었다. 아파트 로비를 통과할 때 오오- 부디-- 다시 한 번 나를 안고-- 오오- 제발- 지친 나를 일으켜줘 우리 사랑했었던 날들... 노랫말이 가슴에 팍 꽂혀 도미노처럼 손에 힘이 풀렸다. 엘리베이터를 놓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뉴욕, 홍대 카페를 탐험한 <카페 탐험가>는 자유롭다. 뉴욕에서 짧은 기간 체류하며 카페를 순례했던 저자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각자의 일을 돌보는 뉴요커들이 왜 카페에 모여드는지는 예측한다. 좁은 공동주택에서 룸메이트와 공간을 나눠 쓰는 불편함이 그 이유다. 소음과 불편함 때문에 그들은 카페에서 자신의 일을 돌본다. 미드 <드롭데드디바> 에서 로펌의 변호사 킴이 해고를 당한 후 노트북을 펼친 곳은 카페다. 킴의 주위에는 킴처럼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작업하는 이들이 비쳤다. 그런 풍경은 우리 동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담소하는 테이블과 일인 테이블이 공존하고 있다. 카페에 노트북 가방을 들고 들어가면 주인들은 '노트북 하기 좋은 자리'로 안내하니까. 소음 속에서 떠나는 나만의 시간은 묘미가 있다. 담소 테이블과 일인 테이블 사이에도 확실한 경계가 있다. 서로에게 방해되지도 방해하지도 않음. 우린 아주 개별적임.  

   
  커피가 단지 기호품 이상이 되면서, 카페에 가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카페에 간다는 건 옛말이 되어버렸다. 아픈 다리를 쉬기 위해 혹은 책을 읽기 위해 그리고 당연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우리는 카페로 간다. 카페는 단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커피를 매개로 하여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공간이며 문화를 누리는 곳이다.

카페는 내가 누리고픈 공간인 동시에, 일상의 남루함이 파고들 여지가 없는 환상의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일상'을 찾아 카페의 문을 여는 것이다.

<카페탐험가>
 
   

 

<생각의 일요일들>은 일과가 끝난 후 침대에 누워 읽었다. 스탠드 불빛과 라디오가 동행했다. <타인에게 말걸기> 라는 소설집을 갖고 있는 은희경은 이제서야 타인들에게, 독자들에게 육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커피,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품이다. 커피콩을 갈다...라는 행위로 작가는 하루를 열고 소설 작업을 시작한다. 어느날의 커피는 노동 후의 마무리로 일단락된다. 최근에 본 장면은 명절이었다. 며느리들은 온갖 일들을 다 끝낸 후 달달한 커피 믹스를 마셨다. 환경을 생각하며 아크릴 수세미와 천연 세제를 사용하지만, 커피를 마실 때만큼은 일회용컵을 사용한다. 그 순간만은 설거지에 대한 해방을 만끽해야 한다는 뜻으로.  

시애틀에서 쓴 작가의 글을 읽다가 <카페 탐험가>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렸다. 시애틀은 흐린 날씨와 높은 강수량 덕분에 커피 소비가 많은 도시라고 한다. 그곳에서 커피 문화, 커피 전문점이 발생한 건 괜한 우연은 아닌 것이다.  

   
 

비가 많이 오는 도시. 
자살률도 가장 높지만 독서율도 최고랍니다.
삶의 양쪽 날을 생각해보게 되는 흐린 날이네요.  

<생각의 일요일들>

 
   

시애틀, 커피...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탕웨이, 현빈의 <만추> 마지막 장면. 여자의 앞에는 유리 머그잔에 가득 채운 커피가 있다. 유리 머그잔은 두툼하고 꽤 크다. 커피는 가득 찼다. 엔딩 크레딧에 그 커피의 존재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했던 건 그 커피의 존재감이 무지 컸기 때문이다. 아직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 에는 긴 기다림이 스며있다. 그가 올 것인지 오지 않을 것인지는 커피만이 알고 있다는 듯이.   

 

 
 좋아해  - 요조, 김진표.
 정말 좋아해 차가운 녹차맛 아이스크림  
 문득 떠나는 하루짜리 짧은 여행
 햇살 좋은 날 무심코 들어선 미술관
 그리고 너의 곁
 어떻게 지낼까 정신없이 살다가도
 거짓말처럼 보고싶고 그래
 너의 곁에선 하루가 참 짧았었는데
 기억하니  

요조의 음색은 가을 초입과 잘 어울린다. 이렇게 귀여운 노래를 부르며 가을로 들어간다. 가끔은 흥얼거린다. 오랜만에 노래 가사를 다 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우연치않게 들른 노래방에서, 아무도 작정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기어들어간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저 잔에 담긴 물처럼 - 박솔

 저 잔에 담긴 물처럼 나 그렇게 내 안에 담겨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저 잔에 담긴 물처럼 나 그렇게 너의 안에 담겨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심규선의 노래처럼 멋진 고음이 있다. 한동안은 조용하고 나긋한, 읊조리는 노래가 참 좋았다. 목청껏 내질러주는 노래, 매미처럼 사력을 다해 부르는 노래, 마음껏 높고 화려한 계단을 올라가는 노래가 귀에 쏙 들어온다. 그래서 박솔의 노래는 깔끔하고 듣고 있으면 동작을 멈추고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가을이 깊어간다는 뜻이다.    

9월 19일 월요일 새벽 5시 55분,우리 동네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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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9-22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플레져님. 플레져님도 심규선을, 부디라고 말하는 그 음성을 들으셨군요!

플레져 2011-09-22 11:18   좋아요 0 | URL
들었어요!
음 이탈이 아닐까,
연극 배우의 진지한 방백처럼 들렸어요- ㅠㅠ

stella.K 2011-09-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나도 윗사람을 어려워하긴 하는데
그분으로선 그게 또 부담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영이 있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안다잖아요.
플레져님은 저를
.
.
.
.
.
.
.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ㅋㅋ

플레져 2011-09-22 11:31   좋아요 0 | URL
오오- 들.켰.구나-ㅎㅎ

서툴러도, 실수해도 어려워하는 기색을 탈피해야겠어요.
또, 부담은 늘어만가고..:)

프레이야 2011-09-22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새벽하늘!!!
가을은 깊어갈 것이고 은사님에 대한 플레져님의 긴장은 조금씩 풀어지길 바래요.
(저도 사람에 대한 긴장을 잘 못 푸는 편이지만 그러다 느낌 받으면 난데없이 풀어져
속 다 보여버리는 헛똑똑이라지요.ㅎㅎ)

플레져 2011-09-22 20:10   좋아요 0 | URL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셔서..내일 다시 해야겠어요 ㅎㅎ 여전히 긴장은 바짝 조인 벨트처럼 풀어지질 않으니 어쩜 좋을까요.

2011-09-22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2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9-22 22:21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ㅎㅎㅎ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플레져님^^

2011-09-22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3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1-09-23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가을이 깊어지는데....여름에 날뛰셔야 할 모기님들이 참 가을까지 부지런하게 극성인 요즘입니다. 더불어 참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첩첩산중이라 그런지 계절이 오던지 말던지한 요즘이네요...ㅋㅋ

플레져 2011-09-23 22:25   좋아요 0 | URL
잘 될거에요 메피님.
걱정 뚝! 하시고 건강 관리 잘 하셔요 ^^

2012-02-01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