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2006년 11월 10일-
아리송한 뉘앙스 풀이 국어 소비자 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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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유토피아가 펴낸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낱말편1>(이하 국·밥)는 지은이 가운데 한 사람인 김철호씨의 15년 삶이 녹아 들어간 책이다. 대학 졸업 뒤 출판사 편집자와 번역자로 활동해온 그는 책을 편집하거나 번역할 때마다 ‘우리 말의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사전을 찾아봐도 말빛깔의 차이를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으니 답답할 때도 많았다. 결국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뜻의 차이를 터득하면, 그때마다 메모를 해두었다. <국·밥>은 그렇게 오랫동안 쌓아올린 메모를 바탕 삼아 쓴 책이다.

책을 함께 쓴 김경원씨는 김철호씨의 대학 동기다. 인하대 한국학 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있는 그는 일본어·영어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 다 ‘번역 실력은 최종적으로는 한국어 실력으로 판가름난다’는 것을 절감한 경우다. 이 공통 인식 위에서 두 친구는 의기투합했다. 일본어에 능한 김경원씨가 <일본어 연습장>이란 책을 소개한 것이 이 책의 틀을 짜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김철호씨가 질료를 제공하고 김경원씨가 형식을 가져와 집을 지은 셈이다. 두 사람은 먼저 갈래를 만든 뒤 전체 29편을 반으로 나눠 각각 집필하고 토론을 통해 내용을 확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동 저작인 셈이다.

김철호씨는 <국·밥>을 펴낸 출판사 유토피아의 사장이기도 하다. 오랜 편집자 생활을 끝낸 뒤 지난해 초 독립 출판사를 낸 그는 이 책에 앞서 펴낸 다섯 종이 모두 판매 부진을 겪자 출판사를 접을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터진 것이 이 책이다. 지난 8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2만부가 넘게 팔렸다. 한국어 길잡이 책으로는 이례적인 판매 부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 책의 판매를 도왔다. 국내 공중파 방송에서 한국어 관련 퀴즈 꼭지가 여럿 방영되고 있고, <한국방송>에서 지난해부터 신입사원 공채에 ‘한국어 능력시험’을 도입한 것이 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또 기업체 신입사원 선발 기준으로 한국어 구사 능력을 따지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도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책 제목도 괜한 말이 아니다.

책은 언어생활에서 헷갈리기 쉬운 단어들을 쌍으로 골라 생생한 사례문과 함께 그 빛깔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속’과 ‘안’, ‘껍질’과 ‘껍데기’, ‘고르다’와 ‘뽑다’, ‘끝내다’와 ‘마치다’, ‘다시’와 ‘또’ 같은 단어들의 쓰임새가 귀에 쏙 들어오는 문장으로 뚜렷이 드러난다. 가령, ‘데우다’와 ‘덥히다’의 차이를 설명할 때, “데우면 뜨거워지고 덥히면 따뜻해진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순간, 차이는 명료해진다. “새롭다고 다 새것은 아니다”라는 문장도 ‘새’와 ‘새롭다’의 다름을 금방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단출한 크기의 ‘한국어 뉘앙스 사전’이지만 지은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애정의 결기는 사뭇 강단지다. 머리말에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어는 의식의 연장이자 사고의 도구라는 점에서, 언어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일은 곧 자기 의시과 사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언어를 통한 자기성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이다.”

인터넷서점에 서평을 올린 한 독자(아이디 플레져)는 지은이들의 이런 각오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몸을 치장하기 위해 옷을 잘 차려 입듯 나를 치장하기 위해선 내 모국어를 다듬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자신의 신념을 똑바로 정확하게 말하는 캐릭터를 보라. 결국 나를 판단하게 하는 것은 모국어다. (…) 이 책의 장점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려주는 문장들이며 설명들이 어렵지 않다는거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를 찾았으며 한문 보다는 뜻을 풀어 설명하는 한글 위주의 문장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지은이들은 ‘낱말편1’에 이어 내년 초 ‘낱말편2’을 펴낼 예정이며 이어 ‘문장편’도 낼 계획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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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 ch1oe님께서 한겨레 신문에 '플레져'가 나왔다고 말씀해주셔서 얼른 찾아보았다.
묘하게도... 저 기사를 쓴 고명섭 기자는 내가 아는 분이다.
연극 기획을 하던 시절, 한겨레 신문에 보도자료를 들고 가면 자판기 커피 한 잔 나누곤 했던...
내게 저 글을 싣겠노라고 먼저 말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안면이 있는 분이어서 그런가.
아무려면 어떤가 싶다.

잠깐, 알은척이라도 해볼까 싶었는데... 그냥 있을란다.
오래전 일이기도 하지만 나를 설명해야하는 일이 번거롭다.

참, 우리 스승님도 한겨레 신문 애독자이신데... 저 글을 보셨을라나?
플레져가 나 인줄 모르실텐데...ㅎㅎ

닉네임을 달고 있는 내가, 내가 아니라 또다른 나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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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11-1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멋지게 쓰셨네요...
책도 확 땡기고요...

반딧불,, 2006-11-12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요것도^^

세실 2006-11-1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서평을 참 맛나게 쓰셨네요~ 뿌듯 뿌듯 ^*^

이리스 2006-11-1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플레져님 팬이에요.. 잇힝~~

마태우스 2006-11-12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님의 열렬한 팬인 거 아시죠?? 님 리뷰는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LAYLA 2006-11-12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기사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네요 정말...

마늘빵 2006-11-1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핫. 축하드려요.

blowup 2006-11-12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시고 쓰신 거구나.
비밀 댓글 정도는 달아주는 게 더 바른 태도일텐데.
아는 체 하면 어때요?
인사도 하고, 다음부터는 이럴 경우, 본인에게 알려주는 것은 어떠냐고
언질도 주고.


미설 2006-11-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플레져님 오랜만이어요.. 저 리뷰 읽었던 기억 나네요^^

2006-11-12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2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11-1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쓴 지 좀 돼서 그런지... 제가 쓴 것 같지 않아 좋아요 ㅎㅎ

반디님, 요것도, 확~ 지름? ㅎㅎ

세실님, 좋은 것만 툭 떼놓고 보아서 좋아보여요 ㅎㅎ

낡은구두님, 에구에구...^^;;

마태우스님, 예술 댓글 감사해요 ^^*

라일라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죠? ^^

아프락사스님, 에구에구.......... 축하는 과찬이세요. 그저 좋은 일 정도로 해둘게요. 감사합니다.

나무님, 귀찮아서요. 솔직한 심정은 귀찮음...
리뷰 도용도 아니고 닉네임 밝혀줬으니 다행이다 싶으니까... 그냥 넘어갈래요.

미설님, 영우도 알도도 잘 있지요?
그동안 소식 궁금했어요 ^^


클리오 2006-11-1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알라딘이라는 이름은 없어도 플레져 님 맞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반가워했답니다.. ^^

하늘바람 2006-11-13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을 알아서 참 영광이어요

비연 2006-11-1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앙~ 멋져요^^ 플레져님의 글은, 실릴 만하죠. 반짝반짝 빛나는 글들..^^

ceylontea 2006-11-13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멋져요.. 플레져님.. ^^

Mephistopheles 2006-11-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싸인 부탁해요~~ 플레져님~

stella.K 2006-11-1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그때 그 리뷰 나도 인상 깊게 읽어 추천 안 할 수가 없었는데...^^

플로라 2006-11-1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지세요! ^^ 멋진 플레져님, 저도 너무 흐뭇하고 기분좋아요~^^

플레져 2006-11-13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도 한겨레 보시는군요. 저는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기사만 봐서
간혹 놓치는 기사들이 많아요. 종이 신문으로 구독해야지 안 되겠어요.

하늘바람님, 앗... 식은땀이 납니다 ^^;; 저도 하늘바람님 알게 되어 영광이어요.

비연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제목을 인용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제가 에쿠니 팬이잖아요 ^^;;

실론티님, 음음...쑥쓰러움이 하늘을 찔러요 ㅎㅎ

메피스토님, 종이랑 펜을 주세요! ㅋ

스텔라님, 그대가 추천한 책이니 내 얼마나 뿌듯한지요 ^^*

플로라님, 고마워요. 11월엔 플로라님 덕에 좋은 일 많이 생길 것 같아요.

2006-11-21 0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22 0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23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