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잉크젯 프린터는 여러 장 인쇄하면 중간에 몇 장이 함께 밀려 들어간다. 그래서 양면 인쇄를 하면 꼭 몇 장을 버리게 된다. 자원이 낭비되는 것도 싫지만 종이 중간에 턱 잘려서 인쇄된 것을 보면 속이 꽤 상한다. 그래서 나도 요령이 생겼다. 앞면은 그냥 인쇄되게 맡겨두고 뒷면은 한 장씩 넣어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쇄기 옆에 붙어 앉아서 종이가 인쇄되는 속도에 맞추어 잘 넣어주어야 한다. 성급하게 잘못 넣어주면 앞장에 물려들어가 페이퍼잼이 나고, 너무 늦으면 종이 없다고 양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기 때문이다. 사람이 꼭 프린터의 시종이 된 기분이다. 그것도 성마르고 까다로운 주인을 섬겨야 하는 불쌍한 하인이다. 나쁜 기계는 사람이 시중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