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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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아놀드 토인비의 추천에 의해서부터 명성을 익히 들었던 만큼 기대되는 독서였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투키디데스의 원작에 시도했다가 쓰디 쓴 맛을 보고 물러나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도널드 케이건이라는 저자의 명성과 그의 전작인 전쟁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보았기에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번 잡고 나자 쉽게 책을 손에서 떼기가 어려웠다. 내용 자체가 전쟁 관련 사항이라 드라마를 보듯이 긴박하게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인간 하나의 결정이 바로 승패와 연관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야 말로 흥미진진했다. 이는 최근에 나온 연개소문 등 각종 드라마의 흥행세와 견주어볼 만 할 것이다.

 

전쟁의 중간 중간은 외교에 대한 대목이다. 전쟁이 일종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는 클라우제비츠의 통찰의 기초는 바로 여기 그리스에서 잘 나타나는 것 같았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광되고 단합된 모습은 가깝게는 최근에 나온 <300>이라는 영화에서 잘 표현되었고 멀리는 플루타크 영웅전의 여러 영웅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달이 차면 기운다고 할까 이방인의 폭압에 맞서 자유를 찾는다는 신성한 명분은 점점 동맹국들에게 과도한 분담금으로 부과되고 이를 징수하기 위해 강압이 점점 심해지게 된다. 세금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세리와 군인이 함께 가는 모습은 어느 제국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유태인의 저항을 비롯해서 역사의 모든 대목이 한가지로 증언해주는 바다. 어쨌든 신성한 공납금으로 만들어진 파르테논 신전의 위용은 지금도 흔적을 남겨서 찬란한 영광의 시대를 증언하지만 이를 뒷받침 하는 여러 나라들의 신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간다.

후일에도 교황이 로마의 대성당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전유럽에서 재화를 긁어 가다가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듯이 이 때도 불만은 저항을 낳고 결국은 대전쟁을 촉발시킨다.

그 과정은 아테네적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와 스파르타적인 근엄과 용기라는 가치 등이 서로 냉정히 대립되고 이 두 별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대전쟁이 진행되게 된다.

 

나라를 뛰어 넘어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은 교묘한 줄타기로 보인다. 아테네에서 장군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사형선고를 눈치채고 적국 스파르타로 도망가고 거기에서 다시 왕의 부인을 꼬셔내다가 노여움을 사서 도망쳐나오더니 이제는 페르시아로 간다. 가서는 다시 동맹관계를 저울질 하며 자신의 주가만 잔뜩 높여서 고국으로 돌아간다. 한편의 대 로망이 나오는 모습인데 아마 소크라테스하고 친구였던가? 그가 소크라테스를 유혹하는데 (남색이라는 관점에서) 의연히 뿌리쳤다는 토로가 향연에 나오던가 이제 가물거리기는 하다.

 

하여간 인물도 많고 전쟁도 많고 그들이 뿌려 놓은 연설문 또한 땅에 흘린 피만큼 많을 것이다.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마 인간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못하기 때문 일 것이다. 현명함도 어리석음도 같이 꾸준히 이어지는데 이는 오늘도 매한가지다. 그리스의 민회가 보여준 여러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막상 오늘 우리의 정당 구조를 보면 별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선동가 대통령에 몇 년 가지 못하는 정당, 아들 당선되었다고 좋아하는 전임 대통령 그리고 또 하나의 전임 대통령은 왜 내 아들은 고향에서 당선되지 못할까 투덜대고.

 

로마인 이야기의 대단원이 로마제국의 쇠망함을 보이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듯이 이 책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또한 아테네라는 제국 크게는 그리스라는 문명이 왜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아주 잘 설득력 있게 우리 마음속에 일깨워준다.

이 시대가 끝나게 되면서 바로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는 세계는 민회와 자유로운 중장보병 그리고 선출직 지도자에서 대왕과 정복 그리고 지배의 시대로 넘어간다. 플루타크 영웅전의 그리스 영웅들의 시대는 여기서 끝이 나게 된다.

 

후일 몰락한 아테네는 여전히 문화를 남겨 로마의 귀족들이 공부하러 오게 되는 장소가 되고 요리조리 외교술을 발휘하다가 캐사르에게 혼줄이 날 뻔도 했다. 하지만 오랜 조상들에 의해 용서는 받는다.

몰락해도 이름은 남은 그들이라 이제 쓸쓸함 속에서 종장을 보게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왜 그들이 정상에서 바닥까지 단숨에 내려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아마 그 답은 정말 이 책이 잘 만들어주는 것 같다.

 

참고로 성경을 한글로 읽기 어렵다는 분들에게 <리더스 다이제스트> 판을 추천해왔는데 이 책 또한 투키디데스의 저작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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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기는군요.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으면서 역사는 예외였는데, 그리스 로마사는 관심이 많아요. 좋은 책이군요. 보관함에 넣습니다.

사마천 2007-05-1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사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죠. 소크라테스가 병사로 등장하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책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09 08: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마천님 추천하신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흥미진진하네요. 2500년 전 전쟁을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서술되어 저절로 몰입되네요^^ 좋은 책 추천에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sayonara 2007-05-1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영국인인가요? ('서른살 경제학' 리뷰에서 언급하셨던) 엘리트의 부재가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는 마치 19~20c의 영국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 -ㅗ-;

사마천 2007-05-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키디데스의 저작의 위대함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살라미스 해전의 화려한 성과는 많은 평민들이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역할은 수병이었습니다. 낮게는 노잡이까지. 이후 시민권이 대폭 확대되고 아테네는 해상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죠. 반면 전쟁 중간에 보이는 것은 선동에 의한 무모함입니다. 이는 히틀러, 노무현 등 데몬 중심의 정치가들에게 잘 나타나는데 당시 아테네에서도 이게 횡횡했습니다.
스파르타쪽은 어떨까요? 작가가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스파르타의 강점(300에 보이는 용기)과 함께 약점도 곳곳에 드러내줍니다.

perky 2008-08-1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관련 책들을 서치하다가 이글을 읽게 되었어요.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보관함에 일단 넣어둡니다. ^^

사마천 2008-08-1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키디데스의 원작이 여러번 시도하다가 마치기 어려웠는데 반면 이 책은 현대적 해석이 호기심을 잘 충족시켜나가고 있어서 독서를 마치도록 잘 도와주었습니다.

사마천 2016-07-10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가 되시기를 성원드립니다.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 덕분에 저도 다시 이 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심 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