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사람들은 그에게 어디서 착상을 얻어 오느냐고 묻곤 했다. ....... 사람들은 어딘가에 아이디어 창고 같은 것이 있고(전설적인 황금의 도시나 상아무덤 같은 곳이 어딘가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그리로 가는 비밀 지도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트는 지도 없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착상이 떠올랐을 때 자기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그는 종종 그러한 착상들이 애초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사물들과 사건들과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기묘한 어떤 상관 관계를 포착하고 감지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째서 이러한 상관 관계 혹은 연결 고리를 포착하고 이것들로 소설을 꾸미고 싶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로서도 답변하기 힘들었다.
"사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사백 개의 타자기를 사백만 년 동안 열심히 두드릴 경우 그 중의 한 마리쯤은 완벽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써낼 수도 있으리라는 속담......"
"이 사람들은 세상에는 좋은 소설 다섯 편만 존재하고 작가들은 주인공들만 바꿔서 그걸 거듭 우려먹고 있다는 걸 모르나 보지?"
모트 자신은 세상에는 최소한 여섯 편의 소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실연, 복수, 오해, 더 높은 권력 추구, 신이냐 악마냐. 그는 앞의 네 가지 유형에만 강박적으로 매달리면서 거듭 우려먹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은 여기에 있을 때조차도 자주 내 곁을 떠났다는 거야. 당신에게는 애인이 따로 있었어. 당신의 일(소설 쓰기)이 당신의 애인이었어. ....... 내가 그걸 얼마나 미워했다구. 그것은 나보다 더 예뻤고 나보다 더 영리했고 나보다 더 재미있었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어?"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실책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체국 같은 데서 일하도록 해요. 우체국 일은 포크너에게 영감을 줬으니까."
-- 스티븐 킹, <소설을 훔친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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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티븐 킹의 책 가운데 가장 처음 접한 것이 바로 이 책 ,<소설을 훔친 남자>([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이란 제목으로 오래 전 고려원에서 두 권짜리로 번역된 책이다)였다.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린 '대중문화 상품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지에 대해서는 미리 흥미를 잃어버리는 얄팍하고 튼튼한 선입관을 가진 탓에(그래서,난 아직, 아마 끝내, <실미도>와 <태극기>를 보지 않을 듯싶다......), 워낙 잘나가는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도 오랫동안 내 책꽂이에서 외면당해 왔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에 난 완전히 매료당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심리의 블랙홀로 몰아넣는 폭풍 같은 집중력과 속도감,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캐릭터, 적확한 비유와 담박한 문체..... 한마디로 무척 재미있고 멋진 작품이었다.
(아, 이제 생각났다, 슬라보이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풀어 가면서 자주 스티븐 킹을 언급하는 바람에 뒤늦게 호기심이 생겨 손에 잡은 책이었다.)
한 권의 소설로 무장해제 당해 버린 난 그 뒤로 스티븐 킹의 '전작주의자'가 됐다. 물론 수집에서만 그렇고, 아직 그렇게 한 권 두 권 모은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책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책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만은 뿌듯하다. 훌쩍 며칠 여행을 떠나갈 때나, 기나긴 장마철 또는 혹한의 겨울밤이 이어지는 나날의 어느쯤엔가 저 책들을 밤참 삼아 읽어 치우리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아오르면서 행복해진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내내 말하고 있다. 지금처럼 명성과 엄청난 부와 성공을 얻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에겐 글쓰기가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그걸 하는 동안 가장 자기 자신에 가까이 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식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소설가의 각오>는 제목에서부터 비장한 결의와 투지 같은 걸로 우리를 바짝 긴장시키지 않는가.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문학에 투항하지 않고서는 백날 천날 가봐야 '가짜'이고 '시정잡배'밖에 안 될 것 같은 참담하고 비루한 자학에 빠져 들게 하는......)
그에 비하면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는 스티븐 킹 역시 '글쓰기 비법'에 대해서는 이렇게 충고한다. 열심히 노력하라.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으으으, 그 길에 비결은 따로 없다는 것...... '글쓰기의 왕도' 같은 건 따로 없다는 걸 다시 확인 받으면서.........
그런데, 마지막에 인용한 대목에서처럼, 포크너가 우체국 직원 생활을 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에서 간혹 그런 표현을 만나곤 한다. "포크너 소설에 나옴직한 인물 같군!"
이번엔 또 윌리엄 포크너의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우체국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야 할까?
(우체국에서 일하는 건 제법 낭만적일 것 같다, 고 생각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일 뿐일까?...... 야마다 에이미 소설에 회사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의 남자 직원과 연애하는 여자 이야기가 있었는데, 뭔가 이와 비스무레한 문학적 영감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