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 최승자,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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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너 요즘 암만해도 자폐증인 것 같다"는 친구의 염려 덕분에(?) 오랜만에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별반 재밌는 일도 없는데 새로운 술집이나 개발하자는 치기 만만한 제안으로, 한 라인에 나래비로 늘어서 있는 술집을, 문 열고 나와 바로 옆집으로, 또 바로 그 옆집으로, 하는 식으로 옮겨다니며....... 그 중에 한 주점 이름은 '바우와 마카오'였다. 사장이 '김바우' 이고, 주방장이 '마카오'란 이름을 갖고 있단다. 돌아와서 나는 수첩에 그 이름을 써놓았다. 어쩔 작정인지는 모르겠다.

그날 술자리에서 한 동행이 요즘 봄햇살을 보면 그저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햇살이 너무 좋잖아요......" 그리고는 끝이다. 하기는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으랴. 햇살이 너무 좋은 것이다!

일요일 저녁, 너무 좋은 햇살 아래 나서는 건 가슴이 무너질 듯싶어서, 해질 무렵이 돼서야 간신히 집밖으로 나갔다.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기웃거리거나 자연스레 마주치는 세상의 풍경..... 그 정도의 거리, 그 정도의 속도감에서 '보는 풍경'들이 적당하다. 감당할 만큼 아름답고 무심하다.


밤에 책장에서 묵은 시 잡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현대시세계> 1991년 봄호. 이렇게 오래된 잡지를 버리지 않고 놔둔 까닭은 무얼까. 그 낡은 잡지를, 이 밤, 우연히 뽑아들게 한 알 수 없는 引力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쨌든 그 속에서 시 한 편을 만났다. 최승자의 '악순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래, 그런 거였다.
내가 술을 마시면서도, 취기에 조금씩 흐트러지면서도, 수첩에 무언가를 끄적여 놓으면서도, 봄 햇살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미어지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심지어 잠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놓지 않고 있던 것은...... 바로 그 '앙앙댐'과 '외침'이었던 것이다!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가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것과 같은......
문득 삶이 끝날 때까지, 어쨌든 그 삶을 견뎌야 하는 '독 안에 든 쥐'가 두려움과 공허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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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입던 내 옷

그 속에 아직 못 다 잡은

이가 있다


-- 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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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람들은 그에게 어디서 착상을 얻어 오느냐고 묻곤 했다. ....... 사람들은 어딘가에 아이디어 창고 같은 것이 있고(전설적인 황금의 도시나 상아무덤 같은 곳이 어딘가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그리로 가는 비밀 지도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모트는 지도 없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착상이 떠올랐을 때 자기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그는 종종 그러한 착상들이 애초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사물들과 사건들과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기묘한 어떤 상관 관계를 포착하고 감지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런 것을 감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째서 이러한 상관 관계 혹은 연결 고리를 포착하고 이것들로 소설을 꾸미고 싶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로서도 답변하기 힘들었다.

"사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사백 개의 타자기를 사백만 년 동안 열심히 두드릴 경우 그 중의 한 마리쯤은 완벽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써낼 수도 있으리라는 속담......"

"이 사람들은 세상에는 좋은 소설 다섯 편만 존재하고 작가들은 주인공들만 바꿔서 그걸 거듭 우려먹고 있다는 걸 모르나 보지?"

모트 자신은 세상에는 최소한 여섯 편의 소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실연, 복수, 오해, 더 높은 권력 추구, 신이냐 악마냐. 그는 앞의 네 가지 유형에만 강박적으로 매달리면서 거듭 우려먹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은 여기에 있을 때조차도 자주 내 곁을 떠났다는 거야. 당신에게는 애인이 따로 있었어. 당신의 일(소설 쓰기)이 당신의 애인이었어. ....... 내가 그걸 얼마나 미워했다구. 그것은 나보다 더 예뻤고 나보다 더 영리했고 나보다 더 재미있었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어?"

그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실책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체국 같은 데서 일하도록 해요. 우체국 일은 포크너에게 영감을 줬으니까."


-- 스티븐 킹, <소설을 훔친 남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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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티븐 킹의 책 가운데 가장 처음 접한 것이 바로 이 책 ,<소설을 훔친 남자>([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이란 제목으로 오래 전 고려원에서 두 권짜리로 번역된 책이다)였다.
너무 많이 알려져 버린 '대중문화 상품들',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지에 대해서는 미리 흥미를 잃어버리는 얄팍하고 튼튼한 선입관을 가진 탓에(그래서,난 아직, 아마 끝내, <실미도>와 <태극기>를 보지 않을 듯싶다......), 워낙 잘나가는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도 오랫동안 내 책꽂이에서 외면당해 왔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에 난 완전히 매료당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심리의 블랙홀로 몰아넣는 폭풍 같은 집중력과 속도감,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캐릭터, 적확한 비유와 담박한 문체..... 한마디로 무척 재미있고 멋진 작품이었다.
(아, 이제 생각났다, 슬라보이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풀어 가면서 자주 스티븐 킹을 언급하는 바람에 뒤늦게 호기심이 생겨 손에 잡은 책이었다.)

한 권의 소설로 무장해제 당해 버린 난 그 뒤로 스티븐 킹의 '전작주의자'가 됐다. 물론 수집에서만 그렇고, 아직 그렇게 한 권 두 권 모은 책들을 다 읽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책장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책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만은 뿌듯하다. 훌쩍 며칠 여행을 떠나갈 때나, 기나긴 장마철 또는 혹한의 겨울밤이 이어지는 나날의 어느쯤엔가 저 책들을 밤참 삼아 읽어 치우리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아오르면서 행복해진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내내 말하고 있다. 지금처럼 명성과 엄청난 부와 성공을 얻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에겐 글쓰기가 재미있고 의미있다고.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그걸 하는 동안 가장 자기 자신에 가까이 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야말로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식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소설가의 각오>는 제목에서부터 비장한 결의와 투지 같은 걸로 우리를 바짝 긴장시키지 않는가.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문학에 투항하지 않고서는 백날 천날 가봐야 '가짜'이고 '시정잡배'밖에 안 될 것 같은 참담하고 비루한 자학에 빠져 들게 하는......)

그에 비하면 한결 부드럽고 여유 있는 스티븐 킹 역시 '글쓰기 비법'에 대해서는 이렇게 충고한다. 열심히 노력하라.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으으으, 그 길에 비결은 따로 없다는 것...... '글쓰기의 왕도' 같은 건 따로 없다는 걸 다시 확인 받으면서.........


그런데, 마지막에 인용한 대목에서처럼, 포크너가 우체국 직원 생활을 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에서 간혹 그런 표현을 만나곤 한다. "포크너 소설에 나옴직한 인물 같군!"
이번엔 또 윌리엄 포크너의 세계로 넘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우체국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야 할까?
(우체국에서 일하는 건 제법 낭만적일 것 같다, 고 생각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일 뿐일까?...... 야마다 에이미 소설에 회사 건너편에 있는 우체국의 남자 직원과 연애하는 여자 이야기가 있었는데, 뭔가 이와 비스무레한 문학적 영감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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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검색할 일이 있을 때 나는 '알라딘'을 이용한다
다른 온라인 서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알라딘에는 다양하고 생생한 독자 서평과 함께 독자들이 자기 기준으로 뽑아놓은 독서 리스트들이 있다.
이 '리스트의 달인'들이 작성한 독서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아주 비슷한 독서 취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기분은 좀 묘한 것이어서,
아주 어릴 때 헤어진 이란성 쌍둥이 자매와 뜻하지 않게 마주친 듯한 놀라움과 반가움과 묘한 상실감(나만의 독자성을 잃어버린 듯한) 같은 걸 맛보게 된다

어쨌든 그러저러한 경로로 따라가다가 발견한 미지의 한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처음엔 이런 말에 끌려서 수첩에 그의 책 목록을 적어놓았다

"영원히 거짓말을 함으로써 연애나 청춘을 결코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이며, 거기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일본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체력 부족에 있다."
<피안 선생의 사랑> 중에서

(이 작품 <피안 선생의 사랑>에 관하여 누군가는 이런 독후감을 남겼다 :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패러디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배꼽 잡아 웃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진지한 텍스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정신적인 인간 관계를 육체적인 인간 관계로, 진지한 관계의 열망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에서 개로 바꾸어 놓았다. 심하다, 마사히코! 연애 박사 선생의 섹스 일기. 킬킬. 심하다, 마사히코!
너무 진지하게 살면 피곤한 일이다. 가끔은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긴장을 푸는 게 좋지. 그 동안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텍스트에 지나치게 열중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우울함에서 벗어났다. 시마다 마사히코 덕에 모처럼 유쾌했다. 웃으면서 살아야지.)


점점 이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결국 어제 시마다 마사히코의 책 몇 권을 구했다
그 중의 한 권, <천국이 내려오다>의 책 표지와 작가 후기를 들춰보다 이런 구절들이 눈에 띄었다

책날개에서

시마다 마사히코 / 196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나카노지마 중학교 2학년 때 신의 소리를 듣고 3학년 때에는 소설가가 되기를 결의하였다.......


작가 후기에서

재수없게 이 책을 읽고 만 독자들 중에는, 작가이며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인 시마다 마사히코에게 독약이라도 먹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작품의 뒷얘기를 해볼까요.
내가 이 작품에 착수한 것은 1984년 10월이었습니다. 그 전후에 <나는 모조인간>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가장 평가가 높았고, 나도 회심작이라고 공언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이 성공에 흥분한 나는 이쯤에서 대 실패작을 남겨두리라 생각했습니다. 비평가나 신처럼 위대한 대작가에게 칭찬을 받으며 각각의 진영에 끌려들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또 독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마조히스트라서, 그들의 비판의 칼날에 난도질 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 프로 작가는 작품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잠시나마 유토피아를 즐겼다는 기분이 들도록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유토피아가 속임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유토피아와 현실 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아주 뻔뻔스런 인간이라, 뫼비우스의 띠 정도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른 사람도 있고요.
유명한 사람으로는 랭보, 니체. 그들은 신이나 부처님 따위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원죄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유토피아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모델로 아시와라 마리오(이소설의 주인공)을 조립하였습니다.
타자의 식민지인 자기....... 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려는 작업이야말로 유토피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이 내려오다>는 희망의 책입니다.
...... 여성 독자에게는 2500번의 키스를, 남성 독자에게는 애교 띤 웃음을 100시간 보냅니다. 작가를 원망하는 분은 권두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주세요.
그럼, 멍청한 독자 여러분 안녕.


일단 흥미롭다. 무엇보다 작가 후기의 마지막 인삿말이 발랄하고 귀엽다!
위악적인 그의 포즈와 버릇 없는 발언(독자를 조롱하는 듯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작품에 대해 시니컬한)의 배면 심리에 강한 호기심이 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유쾌하게 그가 보내는 2500번의 키스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사진을 다트로 삼아 창을 던지게 될지는... 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정작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프로필이나 특이한 성향, 독특한 이력 따위에 더 호기심을 갖는 내 취향의 저변에는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 걸까
독자에게는 저마다 '작가에 대한' 채 발현되지 않은 '오빠 부대'의 유아적인 성향이 조금씩은 다 있는 걸까
가령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에서 꼭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하는 것......


한 가지,
내가 이런 '위악적이고 방만한' 스타일에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백히 그런 기질(자질)이 내게 결여돼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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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도를 타고 가다가 이런 글을 하나 발견하고, 잠시 작은 감동에 젖었다

스페인어 용법 사전의 서문(스페인어 사전은, 다른 외국어의 경우도 이런 예가 있겠지만, '단어 정의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사전'과 '용법 사전'으로 크게 나뉜다고 한다. 후자는 낱말의 정의를 더 쉽게 설명하고 예문을 많이 싣는다. 외국인들이 공부하기에는 후자가 훨씬 좋을 듯)이라는데, 이 서문을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썼다
'말의 창고'이자 '언어의 심해'인 사전의 머릿글을 국어학자가 아닌 작가가 쓰도록 하는 사회의 문화적 안목!(이래서 또 스페인은 매력적인 나라이다!)

마르케스가 쓴 이 서문은 사전의 서문으로서의 의례적인 품새보다 말에 관한 '한 편의 글'로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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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내가 다섯 살 때 육군 중령이었던 할아버지는 아라까따를 지나고 있던 서커스로 나를 데려가 동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몸이 뒤틀리고 쓸쓸해 보이던, 무서운 엄마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건 까멜요(낙타)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곁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는 말했다. “그건 드로메다리오(낙타)입니다.” 손주 앞에서 지적을 당한 할아버지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지금 나는 짐작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위엄있는 질문으로 이를 이겨냈다.

“차이가 뭐요?”

“모릅니다.”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드로메다리오입니다.”

할아버지는 유식하지도 않았고 유식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열 네 살 때 수업을 빠져나와서 카리브 해 연안에 셀 수 없이 많았던 시민전쟁 중 하나에 총을 쏘러 갔고, 그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그런 약점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보충하고도 남는 날카롭고 재빠른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커스에 갔던 날 오후에 할아버지는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사무실에는 커튼이 달린 책상, 선풍기, 거대한 책 딱 한 권이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열심히 그 책을 뒤졌고, 설명을 곱씹어 보고 그림을 비교했으며, 그 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드로메다리오와 까멜요의 차이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게 되었다. (역주: 드로메다리오-단봉낙타, 까멜요-쌍봉낙타) 결국 할아버지는 내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이 책은 뭐든지 다 알고, 게다가 절대로 틀리지 않는 유일한 책이란다.”

그것은 국어사전이었다. 언제 어디서 나온 책인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주 낡아 금방이라도 제본이 풀릴 듯했다. 책등에는 어깨에 우주의 천장을 올려 놓고 있는 아틀라스의 거상이 그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그림은 사전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야.” 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첩첩이 쌓인 근 이천 페이지의 책장과 예쁜 그림들을 보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맞는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 나는 미사책의 크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사전은 더 컸다.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전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말이 몇 개나 들어 있을까?” 나는 물었다.

“다 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그 때 나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살 때 나는 마술사 리샤르딘을 그렸다. 우리는 그 전날 밤에 극장에서 그가 자기 부인의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었다. 톱으로 목을 자르는 생생한 모습에서 시작하여 피투성이 머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결국은 머리가 다시 제 자리에 붙은 부인이 박수에 감사하면서 끝났다. 만화는 예전에 발명되어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일요일 신문의 칼라 보충면에서 처음 만화를 보았다. 그 뒤로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대화 없이 그림으로만 된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을 처음 본 날 밤에 말에 대한 큰 호기심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그래서 나는 나이보다 일찍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내 운명에 초석이 된 책과 나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어떤 음악의 거장의 말에 따르면, 매일매일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고, 집에 피아노를 놓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국어사전을 만난 것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절대로 공부할 때 쓰는 것, 부담스럽고 박식한 것이 아니라 평생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특히나 한번은 ‘노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레몬의 색’. 나는 안개에 휘말렸다. 남미에서 레몬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로르까의 <집시 민요집>에서 잊지 못할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혼란은 더욱 커졌다. ‘길 한가운데서 둥근 레몬을 잘라 물속으로 던지면서 갔다, 물이 금으로 변할 때까지’. 세월이 흐르고 한림원 사전이 -아직 레몬을 언급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뜻을 덧대어 수정했다. ‘금의 색깔.’ 스물 몇 살이 되어 유럽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곳에서, 실제로 레몬이 노랗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옛날 사전들과 요즘 사전들을 뒤져 가며 태양 광선의 세 번째 빛깔을 인양해 내는 매혹적인 작업을 마친 참이었다. ‘라로스 사전’과 ‘복스 사전’은 ?1780년에 나온 한림원 사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레몬과 금을 언급하고 있었고, ‘마리아 몰리네르 사전’만이 1976년에 노랑은 레몬 전체가 아니라 그 껍질만의 색임을 정확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리네르 부인도 ‘모범 사전’의 시적 정취를 무시했다. 이 책은 1726년에 한림원에서 초판이 발행되었고, 서정적이고 소박하게 노랑색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 색은 강렬할 때는 금을, 완화되면 금작화를 모방한다.’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사전을 다 합쳐도, 1611년에 세바스띠안 데 꼬바루비아스 경이 쓴 가장 오래된 사전의 발목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책은 노랑색을 정의하기 위해 정확성과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사전보다도 멀리 나아갔다. ‘색깔들 중에 가장 불행한 색, 죽음과 긴 중병의 색깔이기에. 또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색.’

 

이렇게 무분별한 조사를 통해 나는, 무거운 의미를 나르는 이 사전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의 한 차원을 붙들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의 주관적 의미이다. 아무도 이것을 5세 이하의 아이들이나 100세 이하의 작가들만큼 잘 알지 못한다. 맛과 소리와 냄새가 가장 쉬운 예이다. 아주 여러 해 전에 나는 한밤중에 뜰에 묶인 새끼양 때문에 잠을 깼다. 새끼양은 잔인할 정도로 규칙적인 쇠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 동생들 중 하나가 그 탄식이 지닌 균형에 매료되어 어둠 속에서 말했다. “꼭 등대 같아.” 오래된 약초로 끓인 탕약의 맛은 뚜렷이 성 금요일 행렬의 맛이었다. 예전에 쿠바에서 ‘쿠바 리브레’를 대신할 목적으로 만든 탄산음료를 체 게바라가 시음했을 때, 그는 티브이 카메라 앞에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맛입니다.” 나중에 사석에서 한 말은 더욱 명백했다. “똥 맛이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창문 맛 커피, 궤짝 맛 빵, 옷깃 맛 쌀, 재봉틀 맛 국을 먹었던가? 한 친구는 식당에서 셰리주로 요리한 굉장한 콩팥 요리를 맛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자 맛이 나.” 타는 듯한 여름 로마에서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차르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이런 종류의 연상은 좋은 소설가와 그렇지 않은 소설가 사이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모든 구절에서, 대답 하나에 대한 단순한 강조 안에는 작가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읽는 시간과 장소, 누가 그것을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가능한 만큼 글을 쓰기에, 이 우연으로 가득찬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작가가 가진 도구를 잘 다루는 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발명된 유일한 방법인 한 글자 뒤에 다른 글자를 붙인다는 방법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집어넣는가이다.

 

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전은 물론 없지만 아마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정녕 잊을 수 없는 마리아 몰리네르 부인은 이를 염두에 두고서 거의 전례 없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녀는 스페인어 용법 사전을 혼자서, 자기 집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도서관 사서 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진짜 일이라고 생각하던 양말 깁기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그녀는 글을 썼다. 그녀가 정말로 원하던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날아가 버리기 시작하는 단어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신문에서 보이는 단어들이 중요해요. 거기서 살아 있는 언어, 사용되고 있는 말, 현재에 발맞춰 만들어져야 하는 말들이 나오니까요.” 사실, 이 신화적인 사람이 착수한 일은 삶과의 경주이자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는 영원히 계속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말은 학교에서 학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저자들은 말들을 거의 언제나 너무 늦게 채집해서 알파벳 순서에 맞춰 박제로 만들고, 이 순간 종종 말들은 그 말이 생겨났을 때와는 의미가 달라져 있다.

실제로 모든 사전은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효력을 잃기 시작하고, 저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향해 가는 그들의 작업 속에서 말들을 살려내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아 몰리네르는 최소한 이 작업이 용법 사전에 있어서만큼은, 아니면 사무실에 앉아 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이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덜 실망스러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지금 막 내 손 안에 도착한, 아직도 소나무와 신선한 잉크 냄새가 나는 이 사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전의 수명은 수많은 다른 사전들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으리라. 다섯 살 이후의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만들어진, 또한 좋은 작가들이 -운이 좀 좋다면- 100살까지 갖고 놀 사전보다 쓸모있고 고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제때 알려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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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09-0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감탄사를 발해 주시다니요, 저도 어디에선가 옮겨온 글인걸요, 좋은 것을 같이 나누는 건 분명 기쁜 일이네요... 서로, 종종,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urblue 2004-09-0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져갑니다. (__)

에레혼 2004-09-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 방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가져가실 만하다니, 저도 기쁘네요. 유어블루님의 아이콘(사진)이 무척 매혹적이네요.

로드무비 2004-09-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고 블루님 방에서 추천 눌렀어요.
블루님이 야단치셔서 화들짝 놀라서 왔습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에레혼 2004-09-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야단맞고 오셨군요 ^^. 전 이미 님의 방 구경 잘하고 있었는걸요, 인사도 없이, 조용히... 다음에 마실 갈 때는 당당히(?) 초인종 누를게요. 코멘트에 관한 글 읽고 저도 뜨끔했어요. 슬그머니, 말없이, 구경만 하고 잘 다니는 타입이거든요, 제가^^

2005-01-16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