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저녁의 詩
- 김춘수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山과 언덕
온 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김춘수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다.
장정일은 김춘수의 시를 변주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속 버튼을 눌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이제 시인은 우리에게 하나의 전파로, 꽃 같은 한 떨기 별로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빛나고 있으려나
김춘수 시인의 별세 소식에 잠시 그를 생각한다.
최근에 읽었던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밤의 시'를 떠올리며........
나는 얼마 전 이국의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에게 긴 밤기차 여행길에 이 시를 하나 가슴에 품고 가라고 메일에 적어 보내 주었다. 그이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고, 시인은 이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밤의 시(詩)
왜 저것들은 소리가 없는가
집이며 나무며 산(
山)이며 바다며
왜 저것들은
죄(
罪)지은 듯 소리가 없는가
바람이 죽고
물소리가 가고
별이 못 박힌 뒤에는
나뿐이다 어디를 봐도
광대무변(
廣大無邊)한 이 천지간(天地間)에 숨쉬는 것은
나 혼자뿐이다.
나는 목메인 둣
누를 불러볼 수도 없다
부르면 눈물이
작은 호수(
湖水)만큼 쏟아질 것만 같다
―이 시간(
時間)
집과 나무와 산(
山)과 바다와 나는
왜 이렇게도 약(
弱)하고 가난한가
밤이여
나보다도 외로운 눈을 가진 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