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는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런 상투적인 이분법이 세상의 모든 감독이나 작가들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님을 전제한다면.......[그런 의미에서 나는 거칠게나마 이런 인물의 댓구를 떠올려 본다. 김기덕은 우리 영화계의 장정일 또는 배수아이다! 그 독특한 문체와 감성을 좋아하고 옹호하는 매니아 그룹과 그를 '기본기'가 안 되어 있는 미성숙한 작가로 생각하는 비판적 수요자층으로 뚜렷이 양분된다는 점에서].
김기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화의 독특하고 강렬한 이미지와 대사 없이 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법과 사회적 루저(loser)를 다루는 그의 고집스런 시선에 매료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흔히 폭력성과 엽기성과 여성 비하적 시선을 지적한다.
 
나는 이제까지 김기덕 영화를 단 세 편 봤다. 초기작 <악어>, 한참 건너뛰어 <나쁜 남자>, 그리고 최근작 <빈 집>. <빈 집>은 김기덕의 열 한 번째 영화라고 한다. 열 한 편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감독의 작품 중 단 세 편만을 띄엄띄엄 본 입장에서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기는 좀 걸리지만, 김기덕에 대한 입장을 말한다면 아마 나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내가 가진 불만이랄까, 아쉬움은 김기덕은 남자의 심리를 아주 독특하고 예리하게 포착해 '자기 식의 붓질로' 그려내는 데 재능이 있는 데 반해[그가 그려낸 남성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아우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여자를' 너무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을' 잘 모른다고 얘기해도 좋을까. 기본적으로 그의 영화는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데, 내용 면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헌데, 그 판타지는 언제나 남성의 입장에서 꿈꾸어지는 판타지이다. 남자의 욕망, 남자의 상처, 남자의 슬픔, 남자의 결핍이 만들어 내는 판타지. 그 남자조차 현실 속의 살아 있는 인물인지는 아리송하지만. 한쪽으로 기우뚱한 남자가 품는 판타지 속에 그려지는 여자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정적이고, 수동적이고, 관용적이다. 나약하고 그림 속 인물처럼 몽롱하게 아름다운 그녀들은 자기 밖에서 불현듯 날라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는다. 맞으면서 그 상처를, 그 멍을 자기 안으로 체화시킨다. 한없이 참고 말없이 응시하면서 구원을 기다린다. 자아가 없는 건지, 자아를 초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여자들이 바라는 구원은 절대로 자기 안에서, 또는 자기 힘으로 찾을 수 없다. 그녀들을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종주먹을 들이대듯 불쑥 그녀의 세계에 침입한 '나쁜 남자'들이다.


 

 

 

 

 

 

 

 

 

 

2. <빈 집> 역시 김기덕 영화의 기본 문법에서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사람들이 비워 놓고 떠난 '빈 집'에 들어가 짧은 정주(定住)를 누린다. 그는 주인 없는 빈 집을 편안하게 맛보고 매만지고 음미한다. 그는 집주인들이 어질러놓은 집을 청소하고, 그들이 벗어놓은 허물 같은 속옷들을 정성스레 손빨래하고, 고장난 물건들을 깨끗이 고쳐 놓는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 사진 앞에서 자신이 그 시간 그 '빈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명 사진을 찍는다.
여자는 감옥 같은 자기 집을 떠나기를 간절히 꿈꾸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는 그 집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빈 집인 줄 알고 여자의 집에 들어온 남자를 여자는 물끄러미, 말없이 지켜본다. 남자가 제 몸 씻는 것을, 손빨래하는 것을, 샤워하고 나와서 몸무게를 달아 보는 것을, 고장난 체중계를 고치는 것을, 남자가 남편의 골프채로 스윙 연습하는 것을....... 그리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 나선다. 집밖으로. 제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었던 닫힌 집의 안에서 '마음대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거리의 집들로.

남자는 감옥에서 끝없이 가벼워져서 자신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수련을 한다. 남자는 새가 되고, 그림자가 되고, 스스로의 시선 속에 숨는 비존재가 된다. 마침내 '보이지 않는',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존재....... 남자가 스스로를 그런 존재로 승화시킬 때까지 여자는 다시 예전의 자기 집에서 기다린다. 기약 없는 벗어남을. 하염없는 사랑을. 그러나 머지않아 구원될 그 날을 단단하게 믿으며. 남자는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빈 집>은 대사가 지워진 영화이다. 화면이 페이드 아웃될 때까지 남자의 말은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여자는 딱 세 번 입을 열어 말하는데, 그 대사의 순서와 의미가 자못 상징적이다. 여자의 대사 : "아악!" -- "사랑해요, 여보" -- "식사하세요". 채 언어가 되지 못하는 비명 지름에서 출발해, 추상적이면서 이중적인 울림을 지닌 '사랑해요'라는 고백을 지나, 손에 잡히는 일상의 삶, 구체적인 자리에서의 발화로 이어지는. 갓 지은 밥 한 그릇 같은 일상의 시간 속으로 꿈처럼 들어온 여자와 남자는 같이 손을 맞잡고 체중계에 올라선다. 체중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 '0'......


3. 몇 가지 질문 또는 한숨으로 남은 것들.......

* 첫 번째 들어간 '빈 집'에서 남자가 고쳐 놓은 아이의 장난감 권총. 아이는 그 권총을 들고 장난으로 엄마에게 겨눈다. 처음엔 아빠를 향했다가 결국에는 엄마에게! 아마 그 아이의 엄마는 눈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왜 그녀는 눈을 잃어 버려야 했을까. '스위트 홈'의 신화가 깨지도록 '불화'를 일으키는 건 남편과 아내, 두사람 각각 절반씩의 책임이 있는데...... 어째서 남자는 고장난 총을 바로 고쳐 놓고, 그 총에 아이의 엄마는 세상을 보는 눈을 잃어야 했을까.
한편 남자는 감옥에서 자신의 손바닥에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눈을 그려넣는다. 그리고는 그 눈 뒤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연습을 한다. 남자는 오랜 수련 끝에 자신은 명징하게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존재는 그림자가 되어 다른 이의 눈에서 사라지게 하는 경지에 마침내 다다른다.

* 거의 유일하게 대사를 많이 뱉어내는 역할인 여자의 남편은 어찌 그리도 질 낮은 상투성을 보이는지...... 그 대사들은 그를 너무도 우스꽝스러워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하기는 여자와 남자를 뺀 나머지 인물들의 리얼리티는 현저히, 코믹하게 낮은 수준을 보여준다. 빈 집의 주인들, 남자를 취조하는 형사들, 다시 여자가 찾아간 한옥집의 부부........ 김기덕은 주인공만[그것도 남자 주인공만!] 독특하고 강렬하게 잘 그려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작품'이 된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걸까.  

* 남자 역을 맡은 '재희'라는 이 젊고 낯선 배우의 눈빛이 강렬하다. 감독에게는 저런 얼굴을, 저런 눈빛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는 동물적 감각이 있는 모양이다. <2046>이 장쯔이의 매력을 한껏 살려준 영화라면, <빈 집>은 배우 재희를 탄생시킨 영화일 것이다. 요즘 젊은[어린] 남자의 눈에서 저런 표정이, 저런 광선이 나오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 한때 파리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는 김기덕의 미적 감각은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매혹적인 화면을 펼쳐 보여준다. 현실적인 배경 속에 도드라지는 초현실주의적 영상. 그 영상에 푹 잠겨 들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빈 집>을 볼만한 이유가 된다.
이 영화의 음악 선곡 역시 왕가위의 감각을 뛰어넘는 '예술가적 취향'이 듬뿍 배어 있다. 매혹적인 김기덕표 그림과 그림 사이를 흐르며 스며드는 음악이 아주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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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30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의 구분은 분명 이분법적이지만 실상 그렇게 선연히 구분되기도 하는 듯해요. 전 어쩌면 김기덕 감독은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근거를 대라, 고 하신다면 뭐 웅얼웅얼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사회에서 처진 자를 눈여겨보는 걸 보면, 또 그 처절하게 웅크린 사람의 모습만을 유독 골라내 그리 위로하지도 않는 듯한 그의 손길을 뻗치는 걸 보면, 그런 의구심이 자연 들더군요.
그래서 전 여자를 짐짓 모르는 척하는 감독, 이라고 자꾸만 생각이 되어서 나쁜남자도 사마리아도 안 봤어요. 이상하게도 이젠 영화에서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드는 터라 매번 그의 영화는 제게서 뒤로 처지더군요. 그래도 봄여름가을겨울은 썩 괜찮다고 추천해주신 서재지인이 계셔서 그건 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그의 영화를 느린 템포로 세심히 이야기해주신 라일락와인님의 글을 보니 김기덕 감독의 매혹적인 초현실주의적 영상이란 부분에 자꾸 눈이 걸리네요. 아마 님의 글 때문에 빈집은 보게 될 것 같아요. ^^

로드무비 2004-10-30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집'이라는 제목이 참 매력적이지요.
김기덕의 영화는 모두 극장에서 보다가 언젠가부터 보지 않게 되었네요.
그의 불량한 목자가 처음엔 매혹이더니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곤경에 처한 이승연에게 제일 먼저 손을 내밀었던 김기덕 감독.
그것이 과연 그의 휴머니즘일까요? 그렇겠죠?
아무튼 전 그에 대한 흥미를 잃었어요.
라일락와인님의 리뷰는 전문가의 그것을 능가하는군요.
재희라는 배우의 눈빛이 보고 싶네요.하도 매력적으로 묘사해 놓으셔서......

에레혼 2004-10-30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안님, 김기덕은 자기가 보고 있는 세계 말고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님의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어요. '여자'를, 자신이 체득한 것과 다른 지점의 세계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른 척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얘기를, 같은 메시지를 반복 심화시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작가가 평생을 걸고 탐색해 가는 일관된 주제 의식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해 가며 성장해 가는, 깊어지는 과정이 아니라면 또 사회적으로 소통되는 작품으로서는 좀 소모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김기덕에게 비판적이든 애정을 갖고 있든 간에, 그의 작품은 그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와 얘기할 거리를 던져 주니, 이런 감독이 우리에게 있는 건 그 나름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쨌든 그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어요.
이 안님에게도 <빈 집>은 그저 후벼파기만 하는 거칠고 아픈 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번 보시기를.

로드무비님, 님도 저와 같은 대열에 서 계시는군요. 조금 다른 이유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빈 집>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섬>이란 영화를 찾아 봐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더군요. 김기덕이 그리고 있는 '관계'[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지형도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나와 코드가 잘 맞지 않지만, 분명 헛점과 결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만, 그럼에도 그의 시선과 목소리에는 거친 진정성이랄까, 어떤 진한 울림이 담겨 있어요. 그건 한 사람의 작가로서 아무나 지닐 수 없는 큰 미덕이지요.
이미 그에게 흥미를 잃어버린 님과는 달리 저는 뒤늦게, 애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과 이끌림이 생겼어요, 김기덕의 세계에 대해.

재희라는 배우는, 나중에 홍보물에 보니 <학교>라는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신인만이 지닐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과 어딘지 겉도는 듯한 자기 몰두의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어쩌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젊음의 기운에 끌린 것일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