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내 몸이 고단할 이유가 없는데, 이사랍시고 다른 이들의 몸(힘)을 빌려 짐을 꾸리고 풀고 이리저리 짐을 부려놓으라고 나는 말로만 다 때웠을 뿐인데, 그리고 창고 속에 밀어 넣은 크고 작은 상자들과 잡동사니 속에 무엇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아직 모르는 채 '엄두가 안 나'라고 중얼거리고 있을 뿐인데, 어제부터 몸이 한없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폭풍처럼 몰려든다. 그래서 이것저것 치우고 정리하는 중에 자주 졸거나 아예 잠시 하던 일 밀어놓고 잔다. 낮잠도 자고, 밤잠도 잔다.
이사의 여파가 남아 있는, 그리고 아직 내 몸이 길들여지지 않은, 어딘가 낯설고 버성거리는 느낌의 새 집에서 처음으로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조용한 오후를 보낸다. 소파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자리잡고 앉아 DVD를 플레이시킨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낯선 도시에서 일 년의 시간을 보내는 청춘.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낯선 도시. 일 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청춘. 그건 어쩌면 꿈꾸지만 지금 내게 멀리 있는, 누리고 싶으나 누릴 수 없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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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거처를 구하는 파리 출신의 청년 자비에. 하나의 냉장고 안에서 칸칸이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듯이 공동 생활과 혼자만의 영역의 경계선이 아슬아슬하게 지켜지는 가운데, 자비에와 유럽 각국에서 온 그의 룸메이트들은 1년간의 '청춘의 성장통'을 함께 겪는다. 바르셀로나의 구질구질한 뒷골목과 경탄스러운 가우디의 건축 예술이 하나의 화면 속에 녹아 들어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이질스럽고 차별되는 것들의 놀라운 조화의 묘미를 보여준다. 그건 아직 견고한 편견과 닫힌 가치관과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자의식이란 벽돌로 자기 성을 구축하지 않은 미완성의 세계, '계속 길을 걷고 있기에' 흔들리는 청춘들의 잠재력인지 모른다.
1년간의 '낯선 도시 체류'를 마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 자비에는 너무도 낯익은, 그러나 전과는 어딘가 달라진 몽마르뜨르 거리를 걸으며 눈물을 찔끔거린다. 거리를 지나던 관광객 하나가 그런 그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까지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던 자비에는 이제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쇼윈도 안의 한 사물처럼, 거리 풍경의 한 조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의 정체성의 외연이 한층 더 넓어진 것일까. 그의 마지막 독백. “어디에도 내 모습은 없어요. 모두를 합친 게 내 모습이에요. 그저 나는 혼란에 빠진 유럽인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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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처음 유럽이란 대륙으로 여행을 갔을 때 내 머리를 내리치던 충격을 기억한다.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내가 태어나 자란 사회가 내게 가르치고 보여준 길 말고도 세상에는 인생을 '제 방식대로' 즐기며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지를 도처에서 마주치고는, 나는 그때마다 묻곤 했다. 내 인생이 지금처럼 빼도 박도 못하게 완전히 틀 지어지기 전에 이런 '다른 길'들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답은 물론... 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무용한 질문이었을 뿐. 그때 이미 나는 '짧은 여행'은 가능하지만, 미지의 열린 길 위를 계속 걸어가는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이나 '모험적 시도'는 허용되지 않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를 보며 내가 부러워한 건, 이국적 풍경과 그 생활상이 아니라, 청춘 군상의 유쾌하고 귀여운 사랑과 연애 행각이 아니라, 국경 개념이 무너져 버린 유럽 젊은이들의 경계 없는 문화 체험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결정되지 않은 미래, 아직 아무 것으로도 규정되거나 갇혀 버리지 않은 그 불안정함과 흔들림,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계속 걸어가야 하는 노정(路程)의 열려 있음이었다.
인상적인 대목 하나. 자비에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서 만나게 된 의사 부부. 신경과 전문의인 남자는 자비에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며[대뇌피질, 변연계, 해마 등의 용어들 등장] 재미있는 예시를 하나 든다: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고로 기억에 손상을 입게 되면, 한 가지 언어는 살아남고 다른 한 가지 언어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때 살아 남는 것은 역시 모국어. 그 뒤 자비에는 일종의 스트레스로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속에서 그는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잊어버리고 만다. 그에게 남은 것은 현실에서는 더듬거리던 스페인어.
나처럼 한 가지 언어밖에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기억 손상은 크든 작든 곧 언어 손상, 아니 언어 상실과 연결되고 마는 걸까. 단일 언어는 단일한 사고와 단일한 현실밖에 파생시키지 못한다. 내가 가진 유일한 언어, 한 가지 패턴의 삶.......'코리안 아파트먼트'라는 상징.
영화는 끝났지만, 나는 다시 낯선 현실로 돌아오는 데 머뭇거린다. 그때 현관 벨이 울린다. 어제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물건을 전달하러 온 택배회사 직원이다. 포장 상자 안에 든 것은 샤워 커튼과 수건 몇 장[필요한 건 샤워 커튼뿐이었으나 배송비를 물지 않기 위해 장바구니에 수건 몇 장을 채워 넣었다]. 내가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 현실의 자리! 나에겐 모국어 아닌 다른 언어가, 대체 언어가 없다. 정신 차리고 나는 현관 문을 닫는다.
Al Stewart - The News From S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