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의 내용이 아니라 임하는 자세가 아닐런지. 화려한 수사나 번뜩이는 재치도 상대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지켜지지 않으면 다 헛된 말이 되는 듯하다. 말은 간사하고 마음은 두서없다. 거센 말이 어진 마음을 이기는 현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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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7-0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참 이런 현실이 싫습니다.

바밤바 2009-07-01 19:16   좋아요 0 | URL
그죠? ㅎㅎ
 
[수입] 쇼팽 : 13개의 녹턴
DG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샀던 녹턴 음반이다. 아니 처음 샀던 클래식 음반이다. 내 돈 주고 사진 않았다. 

 고 1때 쯤이었을 거다. 아비는 가망없는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있었다. 몇 주 쉰다고 생각했겠지만 쉬는 날은 나날이 늘었다. 아비의 속은 나날이 핍진해졌으리라. 아비를 위해서라도 난 공부를 잘해야 했다. 공부는 별 어렵지 않았다. 반에서 종종 1등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비의 얼굴은 여전히 그늘졌다. 그러던 하루는 영영사전을 사달라며 아비와 함께 시내로 나섰다. 

 사려했던 영영사전은 다 팔린 후였다. 콜린스코빌드 영영사전이었는데 '영어 세계'라는 잡지에서 추천해 준 유일한 사전이었기에 그것만이 필요했다. 잠시 우울했을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 아비는 다른게 필요 없냐며 손을 잡았다. 그때도 난 음반 수집병이 있었다. 친구 아버지 차를 얻어타며 아낀 차비와 군것질을 하지 않으며 모은 돈으로 매주 시디 하나씩 사곤 했다. 아비를 붙잡고선 자주 가던 음반 할인점을 향했다. 

 가는 길에 뭘 살지 고민 했다. 몇 달 전 아비의 친구 집에서 그 집 아들이 듣던 클래식이 떠올랐다. 그 집 아들내미와 나는 동기간 마냥 친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 형을 난 어릴 때 부터 따랐다. 그 때 같이 들었던 음반을 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곡 제목이 야상곡이었단 것만 떠올랐다. 연주자나 레이블 따윈 알게 아니었다.  

 가게에 가서 야상곡을 달라 그랬다. 가게 주인은 어린 놈이 이런 걸 듣냐며 내심 기특해 하는 눈치였다. 장삿속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비는 이런 음악도 듣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나 보다. 아비답지 않게 아들 자랑을 막 했더랬다. 우리 아들이 감성이 예민해서 그렇다며. 나 또한 맘 고생 심했을 아비의 얼굴에 웃음 하나 띄울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속이 슬거웠다. 

 그 후로 이 야상곡 음반을 계속 들었다. 연주자가 다니엘 바렌보임인지도 모르고 녹턴 전곡 연주가 아닌 발췌 음반인지도 모른 채. 피아노를 전공하던 한 친구는 내가 녹턴을 좋아한다고 하자 어떤 곡을 좋아하냐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냥 녹턴을 좋아한다 했다. 13트랙으로 나뉘어진 음반 전체가 내겐 그냥 녹턴이었다. 자잘이 분화된 녹턴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작품번호 9-2번으로 시작되는 바렌보임의 음반이 내겐 녹턴 그 자체였다.  

 내게 녹턴을 사주셨던 아비는 이제 이 앨범 자켓 표지마냥 저 먼곳으로 갔다. 소주를 좋아하더니 붉은 저녁 놀에 취해 가뭇없이 떠나버렸다. 그래서 녹턴은 가끔 내게 슬픔을 준다. 몇몇 날은 야상곡(夜想曲)이 부상곡(父想曲)이 되기에 그렇다. 특히 바렌보임의 연주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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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6-0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바밤바 2009-06-10 00:03   좋아요 0 | URL
^^;;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를 쇼팽곡조와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것, 작지만 그것도 행복 아니겠습니까?
제게 아버지는 부엌냄새와 칼질 소리로 기억됩니다. 도각도각..
저는 경상도 꼴촌놈인데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우리집 유일의 클래식을 듣는 인간도 되었지요..
제가 피아노를 치면 저희 어머니는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돈들인 표난다고 ㅎㅎㅎ

바밤바 2009-06-10 00:04   좋아요 0 | URL
저도 경상도 출신인데.. 헤헤
휘모리님 마지막 글에서 김애란 단편 소설의 향기가 나네요.. 그 소설 제목이 피아노였던거 같은데..
 

 빌려줬던 시디를 돌려 받았다. 1년 반 정도 남의 품에 있던 시디였다.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연주였다. 헌데 시디 하나는 케이스와 내용물이 달랐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래 시디를 달라 했다. 친구는 자신이 시디 관리를 잘 하지않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했다. 또 취업을 했으니 바쁘다 했다. 시간이 나면 찾아 주겠단 말이다. 순간 화가 났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순 없었다. 어떻게 화 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화를 안내는게 아니라 못낸다. 영화 '이리'에 나오는 윤진서 마냥 화를 내지 못하고선 그냥 웃곤 한다. 

 그래도 화가 쉬이 풀리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 아이가 나한테 신세진 일인데 감사 인사는커녕 내 물건도 돌려받지 못하다니. 뭔가 말을 해야 할 듯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빨리 시디를 내놓으라 하는 건 왠지 체신머리 없는 짓거리 같다. 문자를 보내서 재촉하는 건 소심한 듯했다. 혼자 열심히 궁구하다 그냥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잤다. 대거리 할 일은 아니었으나 혼자 애끓다 마음에서 놓아버렸다. 역시 난 화를 못내는 듯하다. 

 나 같은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 터이다. 제 권리 하나 주장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니 필경 속병이 걸려 제 명에 못사리라. 그러고 보면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은 그럴 듯하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살다보니 욕을 많이 먹는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다보니 마음앓이 할 일이 적다. 노른자 위를 거리낌 없이 차지하고 이해타산에 밝으니 재물 쌓는 일도 여느 사람보다 수월하다. 돈 많고 몸 튼실하니 일찍 죽는게 오히려 더 어렵다. 이게 장수의 비결인 듯하다. 그러니 그 넘이야 말로 오래 살 듯하다. 나도 내 잇속을 차리며 기대 수명을 조금씩 늘려야겠다. 이젠 화를 좀 내고 살아야 겠다는 옹골찬 다짐은 덤이다. 잭 니콜슨이 나온 '성질 죽이기'란 영화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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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멋진날 2009-06-07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적 많아요ㅠ 전 CD가 아니가 책들인데요,, 빌려주곤 거의 돌려받지 못한다는,,책 빌려줄 때는 그냥 준다 생각해버린다니까요,,

바밤바 2009-06-09 02:05   좋아요 0 | URL
님도 저처럼 마음이 여리시군요. ㅎ 이제 우리 권리를 찾자구요~ One Fine Day 님!ㅋ

2009-06-0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밤바 2009-06-09 02:06   좋아요 0 | URL
음..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사람풍경이라. 인간관계에 대한 치유에세이 같은 느낌이 드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6-0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나에게 안중요하면 남에게도 안중요할거라고 너무 쉽게 단정하는거 같아요..
화나죠 정말 그런건..
주말 내내 화내면 손해니까 힘내기 ^^

바밤바 2009-06-09 02:06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이 힘내라니까 힘이 나네요~ 에곤실레 그림이죠? 가끔 에곤실레 그림을 보면 쇼팽이 생각난다는..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7:33   좋아요 0 | URL
가끔은 쇼팽의 예민함이 마음에 턱 걸릴때가 있는데요..

하이드 2009-06-0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밍이 중요하죠.
'야, 빌려갈땐 언제고, 이제 와서 못 찾겠다니, 하나 사내라, 어서, 빨리'
웃으면서 얘기하고, 문자로 '농담 아냐 ^^' 라고 확인.

웃으면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해요-
전 화를 참느니, 쫀쫀해지는 걸 택하는 편이라;

바밤바 2009-06-09 02:07   좋아요 0 | URL
진짜 연습이 필요한거 같네요. 하이드님 보기보다 당차신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7:33   좋아요 0 | URL
페이퍼 전체에 당참이 흐르시는거 같은데 ^^;;
 


미셸푸코가 말했듯 언어는 권력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낸다. 그런 의미에서 표준어를 쓰는 이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다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격은 높아질 수 있다. 표준어 사용 강요와 언중의 표준어 사용 강박에는 이러한 표준어의 정치경제학이 자리 잡고 있다.

표준어 강요는 공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나타난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은 모두 표준어다. 경상도에서 쓰는 ‘억수로’나 전라도에서 쓰는 ‘겁나게’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교육을 통해 지방 사람이 쓰는 말이 달라지진 않는다. 한 공동체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지 모르기에 그럴 것이다. 다만 이것은 입말에 한해서다. 글말에 있어서 사투리는 다른 말이 아니라 틀린 말이 된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도 글은 표준어에 가깝게 쓴다. 지방 사람에게 발생하는 입말과 글말의 불일치는 한자어로 한국말을 표현하던 중세 한국 현실과 그리 차이가 없다.

혹여나 대학이나 일자리 때문에 상경하게 된다면 표준어가 지닌 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실례로 대부분의 지방 출신 여성이 서울에 올라가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서울말을 따라하려 한다. 표준어가 지닌 지위재적 성격을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기 때문이다. 우선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자신의 출신지가 쉽게 노출된다. 자신이 쓰는 말로 고향을 간파당하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말을 쓴다는 것만으로 왠지 차별 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표준어를 구사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여 어설픈 서울내기가 되지 않으면 이러한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힘들다.

하지만 서울 사람이 지방에 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울 사람은 지방 언어와 섞이지 않고 자신의 고향 언어를 당당히 구사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가 언어로 표출되는 거다. 자신이 서울이란 중심권 문화 출신이니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사용하는 말로 나타내는 거다. 영화 ‘밀양’에서도 지방에 정착한 서울 출신 사람은 지방에 사는 사람보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표준어 자체가 권력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활용한 구별짓기 사례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영국을 보자. 영국은 한 때 프랑스 왕가의 지배에 있었으며 지배층은 다들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이어져 영국 왕실에서는 영국화된 프랑스어를 종종 사용 한다. 영국보다 역사가 깊고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 대한 선망이 깔려있어서일 게다. 민중과 지배층이 다른 언어는 언어의 권력적 속성을 나타낸다. 국내에서도 ‘고현정의 예전 시댁식구들은 며느리가 알아듣지 못하게 영어로 이야기한다‘라는 루머가 떠돈 적이 있었다. 대중 또한 언어의 권력성을 간파하고 있으며 다른 언어로 인한 차별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표준어 강요 문화의 기저에는 엘리트주의 또한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언중이 사용하는 ‘짜장면’을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자장면이라 한다. 이유는 자장면이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이 자장면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 현실에서 자장면을 강요하는 것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오히려 식자층이 언중을 계도하면 낯선 언어라도 언젠가 다수의 인정을 받을 거란 오만이 느껴진다. 한국어 능력시험이나 수능시험에 나오는 난도 높은 표준어 관련 문제도 언중과 괴리된 표준어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표준어 강요는 사회적 폭력이다. ‘즈려밟고’같은 시어나 방언으로 이루어진 ‘태백산맥’ 혹은 ‘토지’의 문학적 성취는 문화적 다양성이 일궈낸 성과다. 사투리가 다른 말이 아닌 틀린 말이 돼 가고 있는 요즘의 추세는 언중 사이의 분화를 심화시킨다. 수많은 분열로 힘들었던 우리나라였다. 언어로 서로를 나누는 표준어 강요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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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06-03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사투리 활성화 대책", 혹은 "사투리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표준어 강요 정책에 대한 바밤바 님의 비판이 제 평소 생각과 비슷해서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바밤바 2009-06-05 00:49   좋아요 0 | URL
넹^^ 레폿제출할라고 쓴건데 좋았었다니 감솨~ㅎ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명풀이를 하고 살라믄 태에서 부터 타고나는 말을 하고 살아야죠..
아마 죽어도 나는 표준어로 욕하지는 못할테니까 ㅎㅎㅎ

바밤바 2009-06-10 00:05   좋아요 0 | URL
저는 표준어로 욕할 수 있어요.. ㅎ 근데 해본적은 없는 듯.
휘모리님 멋져부러~~ 멋져부러~~
 

 그제는 하루 종일 서울을 헤맸다. 갈림길에서 빨리 가는 길이 아닌 에둘러 가는 길을 선택하다 보니 그리됐다. 오판으로 인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덕분에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았던 삼청동과 경복궁을 봤다. 얼마 전 읽은 책 제목처럼 서울은 깊었다. 그 깊이 만큼 계층의 분화도 폭이 커보였다. 외제차나 명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마음만은 넉넉해 보이는 다소 가난해 보이는 연인도 보았다. 그 중 내 행색이 가장 초라했을 듯했다. 연인이 가득한 삼청동 길거리를 땀에 절은 옷을 입은 남자 셋이 활보하는 느낌이란건 떳떳하면서도 민망했고 뭉쳐 있지만 어색했다. 다 내 잗다란 성정 때문일테다.   

 오늘은 신촌에서 영화를 본 뒤 홀로 서울역까지 걸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서울의 자질구레한 속살은 묘한 흥분을 줬다. 감추지 못해 드러난 그 속살은 누군가에겐 치부일테고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의 공간일테다. 30여 분을 걸어 도착한 서울역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침통했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 자도 있었다. 분향을 위한 긴 기다림이 있어야지만 망자에 대한 죄스러움을 덜 수 있다 여겼는지 사람들의 입은 굽게 다물어져 있었고 햇살은 형벌처럼 그들 곁을 쬐었다. 

 나 또한 그들의 일행이 되고자 하는 맘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친구들 중 몇안되는 노무현 비판자였다. 그래서였는지 옳지 못한 그의 죽음이 아쉬웠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애달팠다. 검찰 수사로 핍진했을 그의 속내가 생각나 마음이 멍울지고 각혈하듯 연거푸 한숨이 나왔다. 큰 전광판에 나오는 그의 음성은 망자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켰다. 그의 '서거'는 서울역 광장을 내리 누르며 오늘이 일주일전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켰다. 

 그에게 보내는 수많은 글귀가 분향소 근처를 가득채웠다. 나 또한 서툰 말이나마 몇마디 남기고팠지만 말은 부질없고 죽음은 실존했다. 분향도 하지 않고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내 발길은 롯데마트로 향했다. 며칠 뒤 지인과 다시 이곳을 오기로 하며. 이 먹먹함이 그때는 좀 덜할지 모를 일이다. 오늘은 한겨레 신문을 봐야겠다. 그나마 그들의 곧음이 있기에 굴곡진 세상에서도 잠시나마 화를 내게 되는 듯하다. 무거운 죽음이 가벼운 세상을 짓누르니 나 또한 숨쉬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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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5-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서재아이디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정치와는 좀 담을 쌓고 싶은데, 가끔은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때도 많더군요..

아침에 보기에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언뜻 마음이 먹먹해지지만 다시 읽어보니 따스함도 묻어나네요.

여유있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바밤바 2009-05-30 22:01   좋아요 0 | URL
좋은 밤 되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6-0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읽기가 더딘 한주 였습니다.
저는 노무현전대통령에게 미안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대의 어두움에 절로 움츠러들어서였습니다.

건강하시죠?

바밤바 2009-06-02 23:44   좋아요 0 | URL
넵^^~ 휘모리님 힘내셔야죠~ 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