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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쇼팽 : 13개의 녹턴
DG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처음 샀던 녹턴 음반이다. 아니 처음 샀던 클래식 음반이다. 내 돈 주고 사진 않았다.
고 1때 쯤이었을 거다. 아비는 가망없는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 있었다. 몇 주 쉰다고 생각했겠지만 쉬는 날은 나날이 늘었다. 아비의 속은 나날이 핍진해졌으리라. 아비를 위해서라도 난 공부를 잘해야 했다. 공부는 별 어렵지 않았다. 반에서 종종 1등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아비의 얼굴은 여전히 그늘졌다. 그러던 하루는 영영사전을 사달라며 아비와 함께 시내로 나섰다.
사려했던 영영사전은 다 팔린 후였다. 콜린스코빌드 영영사전이었는데 '영어 세계'라는 잡지에서 추천해 준 유일한 사전이었기에 그것만이 필요했다. 잠시 우울했을 아들의 마음을 헤아린 아비는 다른게 필요 없냐며 손을 잡았다. 그때도 난 음반 수집병이 있었다. 친구 아버지 차를 얻어타며 아낀 차비와 군것질을 하지 않으며 모은 돈으로 매주 시디 하나씩 사곤 했다. 아비를 붙잡고선 자주 가던 음반 할인점을 향했다.
가는 길에 뭘 살지 고민 했다. 몇 달 전 아비의 친구 집에서 그 집 아들이 듣던 클래식이 떠올랐다. 그 집 아들내미와 나는 동기간 마냥 친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그 형을 난 어릴 때 부터 따랐다. 그 때 같이 들었던 음반을 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곡 제목이 야상곡이었단 것만 떠올랐다. 연주자나 레이블 따윈 알게 아니었다.
가게에 가서 야상곡을 달라 그랬다. 가게 주인은 어린 놈이 이런 걸 듣냐며 내심 기특해 하는 눈치였다. 장삿속에 그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비는 이런 음악도 듣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나 보다. 아비답지 않게 아들 자랑을 막 했더랬다. 우리 아들이 감성이 예민해서 그렇다며. 나 또한 맘 고생 심했을 아비의 얼굴에 웃음 하나 띄울 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속이 슬거웠다.
그 후로 이 야상곡 음반을 계속 들었다. 연주자가 다니엘 바렌보임인지도 모르고 녹턴 전곡 연주가 아닌 발췌 음반인지도 모른 채. 피아노를 전공하던 한 친구는 내가 녹턴을 좋아한다고 하자 어떤 곡을 좋아하냐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냥 녹턴을 좋아한다 했다. 13트랙으로 나뉘어진 음반 전체가 내겐 그냥 녹턴이었다. 자잘이 분화된 녹턴은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작품번호 9-2번으로 시작되는 바렌보임의 음반이 내겐 녹턴 그 자체였다.
내게 녹턴을 사주셨던 아비는 이제 이 앨범 자켓 표지마냥 저 먼곳으로 갔다. 소주를 좋아하더니 붉은 저녁 놀에 취해 가뭇없이 떠나버렸다. 그래서 녹턴은 가끔 내게 슬픔을 준다. 몇몇 날은 야상곡(夜想曲)이 부상곡(父想曲)이 되기에 그렇다. 특히 바렌보임의 연주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