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하루 종일 서울을 헤맸다. 갈림길에서 빨리 가는 길이 아닌 에둘러 가는 길을 선택하다 보니 그리됐다. 오판으로 인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덕분에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았던 삼청동과 경복궁을 봤다. 얼마 전 읽은 책 제목처럼 서울은 깊었다. 그 깊이 만큼 계층의 분화도 폭이 커보였다. 외제차나 명품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마음만은 넉넉해 보이는 다소 가난해 보이는 연인도 보았다. 그 중 내 행색이 가장 초라했을 듯했다. 연인이 가득한 삼청동 길거리를 땀에 절은 옷을 입은 남자 셋이 활보하는 느낌이란건 떳떳하면서도 민망했고 뭉쳐 있지만 어색했다. 다 내 잗다란 성정 때문일테다.
오늘은 신촌에서 영화를 본 뒤 홀로 서울역까지 걸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서울의 자질구레한 속살은 묘한 흥분을 줬다. 감추지 못해 드러난 그 속살은 누군가에겐 치부일테고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의 공간일테다. 30여 분을 걸어 도착한 서울역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침통했다. 울음이 그치지 않는 자도 있었다. 분향을 위한 긴 기다림이 있어야지만 망자에 대한 죄스러움을 덜 수 있다 여겼는지 사람들의 입은 굽게 다물어져 있었고 햇살은 형벌처럼 그들 곁을 쬐었다.
나 또한 그들의 일행이 되고자 하는 맘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친구들 중 몇안되는 노무현 비판자였다. 그래서였는지 옳지 못한 그의 죽음이 아쉬웠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애달팠다. 검찰 수사로 핍진했을 그의 속내가 생각나 마음이 멍울지고 각혈하듯 연거푸 한숨이 나왔다. 큰 전광판에 나오는 그의 음성은 망자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켰다. 그의 '서거'는 서울역 광장을 내리 누르며 오늘이 일주일전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켰다.
그에게 보내는 수많은 글귀가 분향소 근처를 가득채웠다. 나 또한 서툰 말이나마 몇마디 남기고팠지만 말은 부질없고 죽음은 실존했다. 분향도 하지 않고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내 발길은 롯데마트로 향했다. 며칠 뒤 지인과 다시 이곳을 오기로 하며. 이 먹먹함이 그때는 좀 덜할지 모를 일이다. 오늘은 한겨레 신문을 봐야겠다. 그나마 그들의 곧음이 있기에 굴곡진 세상에서도 잠시나마 화를 내게 되는 듯하다. 무거운 죽음이 가벼운 세상을 짓누르니 나 또한 숨쉬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