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줬던 시디를 돌려 받았다. 1년 반 정도 남의 품에 있던 시디였다.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연주였다. 헌데 시디 하나는 케이스와 내용물이 달랐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래 시디를 달라 했다. 친구는 자신이 시디 관리를 잘 하지않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했다. 또 취업을 했으니 바쁘다 했다. 시간이 나면 찾아 주겠단 말이다. 순간 화가 났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순 없었다. 어떻게 화 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화를 안내는게 아니라 못낸다. 영화 '이리'에 나오는 윤진서 마냥 화를 내지 못하고선 그냥 웃곤 한다.
그래도 화가 쉬이 풀리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 아이가 나한테 신세진 일인데 감사 인사는커녕 내 물건도 돌려받지 못하다니. 뭔가 말을 해야 할 듯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빨리 시디를 내놓으라 하는 건 왠지 체신머리 없는 짓거리 같다. 문자를 보내서 재촉하는 건 소심한 듯했다. 혼자 열심히 궁구하다 그냥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잤다. 대거리 할 일은 아니었으나 혼자 애끓다 마음에서 놓아버렸다. 역시 난 화를 못내는 듯하다.
나 같은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 터이다. 제 권리 하나 주장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니 필경 속병이 걸려 제 명에 못사리라. 그러고 보면 욕 많이 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은 그럴 듯하다. 메커니즘은 이렇다. 남 눈치 보지 않고 살다보니 욕을 많이 먹는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살다보니 마음앓이 할 일이 적다. 노른자 위를 거리낌 없이 차지하고 이해타산에 밝으니 재물 쌓는 일도 여느 사람보다 수월하다. 돈 많고 몸 튼실하니 일찍 죽는게 오히려 더 어렵다. 이게 장수의 비결인 듯하다. 그러니 그 넘이야 말로 오래 살 듯하다. 나도 내 잇속을 차리며 기대 수명을 조금씩 늘려야겠다. 이젠 화를 좀 내고 살아야 겠다는 옹골찬 다짐은 덤이다. 잭 니콜슨이 나온 '성질 죽이기'란 영화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