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푸코가 말했듯 언어는 권력이다.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낸다. 그런 의미에서 표준어를 쓰는 이와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다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격은 높아질 수 있다. 표준어 사용 강요와 언중의 표준어 사용 강박에는 이러한 표준어의 정치경제학이 자리 잡고 있다.

표준어 강요는 공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 나타난다. 교과서에 나오는 말은 모두 표준어다. 경상도에서 쓰는 ‘억수로’나 전라도에서 쓰는 ‘겁나게’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교육을 통해 지방 사람이 쓰는 말이 달라지진 않는다. 한 공동체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지 모르기에 그럴 것이다. 다만 이것은 입말에 한해서다. 글말에 있어서 사투리는 다른 말이 아니라 틀린 말이 된다. 사투리를 쓰는 지방 사람도 글은 표준어에 가깝게 쓴다. 지방 사람에게 발생하는 입말과 글말의 불일치는 한자어로 한국말을 표현하던 중세 한국 현실과 그리 차이가 없다.

혹여나 대학이나 일자리 때문에 상경하게 된다면 표준어가 지닌 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실례로 대부분의 지방 출신 여성이 서울에 올라가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서울말을 따라하려 한다. 표준어가 지닌 지위재적 성격을 부지불식간에 인지하기 때문이다. 우선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자신의 출신지가 쉽게 노출된다. 자신이 쓰는 말로 고향을 간파당하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말을 쓴다는 것만으로 왠지 차별 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표준어를 구사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여 어설픈 서울내기가 되지 않으면 이러한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힘들다.

하지만 서울 사람이 지방에 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울 사람은 지방 언어와 섞이지 않고 자신의 고향 언어를 당당히 구사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가 언어로 표출되는 거다. 자신이 서울이란 중심권 문화 출신이니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사용하는 말로 나타내는 거다. 영화 ‘밀양’에서도 지방에 정착한 서울 출신 사람은 지방에 사는 사람보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표준어 자체가 권력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활용한 구별짓기 사례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영국을 보자. 영국은 한 때 프랑스 왕가의 지배에 있었으며 지배층은 다들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이어져 영국 왕실에서는 영국화된 프랑스어를 종종 사용 한다. 영국보다 역사가 깊고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 대한 선망이 깔려있어서일 게다. 민중과 지배층이 다른 언어는 언어의 권력적 속성을 나타낸다. 국내에서도 ‘고현정의 예전 시댁식구들은 며느리가 알아듣지 못하게 영어로 이야기한다‘라는 루머가 떠돈 적이 있었다. 대중 또한 언어의 권력성을 간파하고 있으며 다른 언어로 인한 차별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표준어 강요 문화의 기저에는 엘리트주의 또한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언중이 사용하는 ‘짜장면’을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자장면이라 한다. 이유는 자장면이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이 자장면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 현실에서 자장면을 강요하는 것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오히려 식자층이 언중을 계도하면 낯선 언어라도 언젠가 다수의 인정을 받을 거란 오만이 느껴진다. 한국어 능력시험이나 수능시험에 나오는 난도 높은 표준어 관련 문제도 언중과 괴리된 표준어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표준어 강요는 사회적 폭력이다. ‘즈려밟고’같은 시어나 방언으로 이루어진 ‘태백산맥’ 혹은 ‘토지’의 문학적 성취는 문화적 다양성이 일궈낸 성과다. 사투리가 다른 말이 아닌 틀린 말이 돼 가고 있는 요즘의 추세는 언중 사이의 분화를 심화시킨다. 수많은 분열로 힘들었던 우리나라였다. 언어로 서로를 나누는 표준어 강요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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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9-06-03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사투리 활성화 대책", 혹은 "사투리 장려 정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표준어 강요 정책에 대한 바밤바 님의 비판이 제 평소 생각과 비슷해서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바밤바 2009-06-05 00:49   좋아요 0 | URL
넹^^ 레폿제출할라고 쓴건데 좋았었다니 감솨~ㅎ

무해한모리군 2009-06-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명풀이를 하고 살라믄 태에서 부터 타고나는 말을 하고 살아야죠..
아마 죽어도 나는 표준어로 욕하지는 못할테니까 ㅎㅎㅎ

바밤바 2009-06-10 00:05   좋아요 0 | URL
저는 표준어로 욕할 수 있어요.. ㅎ 근데 해본적은 없는 듯.
휘모리님 멋져부러~~ 멋져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