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글을 세 편 읽었다. 좋게 보면 재기발랄하고 나쁘게 보면 잔망스런 글이다. ‘데우스엑스마키나’가 과도하게 일어나 서사 자체를 흩트리려는 노력이 그리 보였는지 모른다. 그는 말로 드러내지 않았던 상상을 글로 형상화하는 작가다. B급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그의 글을 읽기란 어렵지 않다.
‘핑퐁’은 왕따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글을 읽고 나는 왜 소시적 왕따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 공부를 잘하고 친구가 많아서였을 테다. 헌데 소설 속 과잉 폭력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건 내 주위에도 그런 괴롭힘을 당하는 이가 많았다는 내면의 고백일 테다.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 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적당히 타협하며 약육강식의 세상을 벗어났다. 그때보다 ‘악’이 명확하지 않은 20대 후반에도 이런 고민은 갑작스레 제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최근 몇 편의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해답은 요원하다. 덜 배워서 그렇다기 보단 덜 느껴서 그럴 것이다.
‘카스테라’는 단편 모음집이다. 장편보단 단편이 제 존재증명에 이로운 작가들이 있다. 박민규도 그런 듯하다. 단편집속 군상들은 다양했고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오지랖이 비록 헐겁더라도 자잘한 진정성이 있어 좋았다. 이야기가 수직으로 상승하거나 급전직하하는 부분도 성기지만 유쾌했다. 그는 수다쟁이다.
‘지구영웅전설’은 일견 도식적이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풍자가 너무 적나라해서 유치해보이기도 한다. 발상은 좋았으나 발상을 좀 더 세련되게 보여줄 되새김질이 부족한 듯하다. 작가의 초기작이니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을 한다. 오히려 뒤편에 실린 인터뷰가 더욱 와 닿았다. 마치 조금 산만한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가의 말 맺음을 보는 듯이 조금은 명징하고 기꺼이 이해할 그런 수준이었다.
박민규의 소설처럼 세상은 부조리하면서 이해 못할 일로 가득하다. 올 해 내 삶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루저’의 삶을 핥듯이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박민규의 글이 몇 년 뒤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소설가가 글로써 삶의 나이테를 아로새기듯 내 삶은 부딪힘으로써 삶의 준거를 세워야 한다. 아직 몸이 덜 여물고 세상에 덜 닿아있어 지극히 염려하는 요즘이다. 누군가가 칭찬했듯 몇 년 뒤에도 지금처럼 고운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이 곱다는 건 아직 덜 아팠다는 사실을 드러냄이 아닐까란 생각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