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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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라.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다. 이 말이 사무치는 근자다. 로쟈님 서재에도 이 말을 남겼기에 이젠 나만의 성어도 아닐 테다. 근래에 이런저런 일에 섭슬리면서 많은 나무람과 조언을 들었다. 아직 덜 여문 ‘말의 기억’이 책 속 고산자와 접하며 가슴에 여울졌다. 말 잘하는 자란 무릇 진실로 필요할 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깊이 생각했다. 고산자의 벗들이 제 안위와 자존심과 앞가림에 바빠 그를 저버릴 때엔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나 또한 손에 꼽히는 지인들을 헤아리며 내 행동준거를 살폈으나 그들의 매정함을 쉬이 탓하진 못할 듯하다. 그런 나약함이 슬펐고 책의 무게를 더 튼실하게 했다.

‘덕불고필유린’에서 중요한 건 ‘덕’이란 말을 해준 이도 있다. 기실 알라딘 서재에 애정을 쏟게끔 글로써 나를 이끌어준 분의 말이기에 꾸준히 고민하고 살폈다. 책 속 고산자는 제 덕으로 언제나 외롭지 않았으나 생의 의지가 잡초처럼 흔들릴 때 햇살처럼 외로웠다. 그의 덕이 모자람이 아니라 덕을 헐겁게 하는 세상의 이치가 그리 했을 터이다. 결국 나는 ‘덕(德)’은 증명할 수 없고 이웃의 정이란 제 마음으로 실재하는 것이기에 ‘린(隣)’이란 말에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아직 공부가 덜 되어 그럴 수도 있으니 이러한 정의내림은 다시 바뀔지 모른다.

박범신의 글을 처음 읽었다. 김훈보다 문장이 더 예스러웠으며 옛말과 토착어의 어울림이 글에 깊이를 더한다. 많은 공부를 했으리란 추측을 하게하는 그 꼼꼼한 설명 또한 글을 한번 더 새기며 읽게 했다. 다만 우산도를 이야기하며 국토에 대한 시대관을 드러낸 장면은 다소 교조주의적이라 적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서사만으로 불충분하다 여겨 설명을 넣는다면 소설로서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고산자가 제 삶에 회의를 느끼며 훌훌 떠나는 장면은 슬펐다. 그 슬픔은 세상의 모짊에 대한 원망 보다는 ‘위버멘쉬’란 단어가 주는 그 닿을 수 없는 깊이가 지나치게 심원했기 때문이다. 고산자 또한 세상의 비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제 과거를 오롯이 부정하고서야 마음을 놓았던 것이다. 니체를 잘 알지 못하나 그가 ‘권력의지’에 집착한건 이런 비루함이 못내 못마땅해서일 테다. 지도를 만들며 자신을 내던졌던 사내의 회한(悔恨) 같은 눈물이 아직 유효한 현실도 마뜩치 않았다. 실로 그랬다.

책은 어제 하루 동안 다 읽었으나 실로 많은 일들이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내 마음을 번잡스럽게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다시금 나는 외로웠다. 공자님의 말이 맞다면 나는 ‘덕’을 제대로 쌓지 못해서일 테다. 부덕함에서 비롯된 외로움이 마음을 해치려 하기에 실로 밤이 깊을 듯하다. 간만에 집에 내려왔는데 남부는 적이 따스하다. 서울엔 눈이 쌓였다며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후배의 문자가 마음을 적잖이 푼푼케 했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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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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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5: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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