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불매 운동이 한창일 때다. 진보언론에선 조중동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네이트 베스트 댓글은 이런 것들이었다. ‘경향 기자님들 힘내세요! 진정으로 응원합니다.’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이 대립각을 세울 때마다 이런 댓글이 넘친다. 기실 난 이런 댓글이 불편하다. 응원한다는 글을 쓴 사람은 경향신문을 정기구독이나 할까. 댓글 하나 남겨서 ‘난 좋은사람’이란 자신의 나르시시즘이나 강화하는 게 아닐까. 세상의 부조리에 침묵하는 소시민적 자아가 그러한 댓글이나 추천 한방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나. 난 밥벌이에 치열할테니 경향신문 기자들은 독립 운동하듯 이 땅의 정의를 위해 애써란 말인가.
까칠할 수도 있다. 헌데 지인의 남친이자 울 학교 선배가 경향신문 기자다. 주위 말을 들어본즉 그들은 최저 임금만도 못한 벌이를 하고 있다. 회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광고 수주가 되지 않아 신문을 팔수록 손해란 말도 있다. 인터넷만 보면 세상은 경향과 한겨레가 ‘붓’이란 권력의 상층부에 있어야 한다. 현실은 그 반대다. 진보를 자처하는 20대들은 경향과 한겨레를 거의 사보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고 그나마 신문사 사이트를 찾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난 경향과 한겨레를 지지하니까 지각있는 20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어 한다. 제 삶엔 터럭의 손해를 끼치긴 싫지만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써달란 공허한 말만 미만하다. 일종의 자위(Masterbation)라 생각한다.
굳이 이런 생각을 글로 옮기게 된건 김혜수와 유해진의 연인관계 때문이다. 댓글은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며 김혜수를 개념 있는 여인으로 칭송하기 바쁘다. 사랑 앞에서 솔직한 그녀를 다들 우러른다. 헌데 이러한 댓글을 쓰고 추천을 누르는 사람들은 진정 그러한 선택을 할진 의문이다. 그저 욕망의 대리 충족 정도가 아닐까.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기에 말은 그럴 듯 하게하지만 기실 제 삶에 대한 성찰은 부족한 집단 자위현상. 난 그래서 이 커플에 대한 환호가 불편하다.
이 글은 최근 있었던 ‘불매운동’에 관한 유비(類比)로도 해석이 가능할 테다. 사실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평소에 느꼈던 불편함을 문자화 한 것이다. 다만 말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나 어떤 집단에 환호하고 지지를 보낼 거면 좀 더 근사한 뒷받침이 있어야 빛나지 않겠는가. 글을 한 번 더 읽어보니 나를 옮아 맬 수 있는 양날의 칼이 종종 보인다. 생각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벼림은 이토록 쉽지 않다. 좀 덜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종래에 든 건 ‘고산자’의 결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뭐든 명쾌했던 10년 전이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