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내가 외우는 몇 안 되는 시(詩)중에 하나다. 윤동주에게도 이런 어린 마음이 있었다. 일제의 칼날보다 마음이 시릴 때면 옛 추억을 되돌아 봤을 테다. 추억 속엔 자랑스러운 애미도 고샅길도 누렁이도 있음직하다. 제 마음이 겨울보다 추울 땐 이런 시를 읊으며 마음을 눅였을 그네다.
이 시를 외우게 된 건 서예학원에서 ‘작품’을 해야 했던 추억 탓이다. 작품이란 4만원에 값하는 액자에 넣을 붓글씨를 남기는 거다. 많아봤자 10자 정도 되는 글만 끄적였던 나였다. 작품으로 선정된 윤동주의 ‘눈’과 같은 긴 글은 버거웠다. 무엇보다 작은 글씨로 써야 했기에 더더욱 힘겨웠다. 반듯이 접혀진 종이에 선 따라 오롯이 글을 내려 적는 건 쉽지 않았다. 붓이 만들어 낼 작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엔 내 신경은 잔약했고 그 좁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나를 밀어 넣고 바지런을 떨어도 끝내 그 글은 끝을 보지 못하였다. 난 어미에게 더 이상 배울게 없다는 선언적 외침을 하고선 학원을 그만 두었다.
이 이야기는 종종 내 질기지 못한 근성을 이야기할 때 회자되곤 한다. 그래도 중학교 땐 내 이름으로 된 붓글씨가 교실 뒷켠에 종종 걸리곤 했다. 글은 보통 8자나 10자 정도였다. 좁은 글로 여백을 채우기 보단 널따란 글씨로 여백에 어울리는 게 나다웠던 탓이다. 붓글씨는 잘 쓰는 편이지만 글씨체는 가지런하지 못한 지금에 이르러서야 내겐 선비의 마음보단 환쟁이의 재주가 더 있는 듯하다. 반듯한 모양새보다 흐트러진 형체를 좋아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길거리에 소오복히 쌓인 눈을 보고선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남쪽에서 보낸 어린 시절, 눈 오는 날은 소풍날보다 더 절박한 놀이의 장이었다. 몇 년에 한번 오는 눈을 보고선 그만큼 쟁여둔 온갖 놀이를 다 선보이곤 했다. 그런 포실한 추억도 지금은 빛이 바랬다. 서울 살이 속 눈은 못내 귀찮은 지분거림일 뿐이다. 유희의 수단이 아닌 그저 삶의 거추장스런 방해물이다. 그런 마음이 못내 밉고 또 서글픈 날이다. 나 또한 성냥팔의 소녀의 작은 불씨처럼 그 때의 시를 되새겨 본다. 내 눈에도 눈싸움하던 동네 친구들이, 귀마개를 한 어린 꼬마의 홍시 같은 시린 볼이 그날처럼 아른댄다. 가슴에 생채기가 날 정도로 꼬옥 안아주고픈 기억이다. 그럼 동주의 시처럼 내 마음에도 따스한 이불이 감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