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을 읽다 마음에 와 닿는 구문을 발견하여 옮겨 놓는다.
‘약한 사람이 능멸을 받고 그것을 강한 상대에게 풀지 못하게 되면 자신에게로 그 원한을 돌리게 되고, 자신에게 돌린 원한이 깊으면 깊을수록 복수하겠다는 심정이 세상 전반에 향하게 되는 것이 인생살이의 이치가 아닌가. 따라서 일찍이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림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첩경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자신과 집안을 모두 그르치기가 쉬운 게 심약한 사람의 특징이었다.’
그 헤아림이 옳은 듯하다. 나또한 저런 모진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한 적이 있었기에 그 미욱함이 언젠가부터 심히 부끄러웠더랬다. 황석영의 마음도 아마 심약할 터이다. 그 심약함을 이겨내고 제 자신을 벼리며 살아왔기에 지금의 그가 있을 것이다. 심약하다 보니 사람을 잘 헤아리고 강해지려다 보니 세상사가 절로 이해됐을 테다.
많은 자잘한 이야기로 세상을 훑어내는 그 재주가 기이하다. ‘그럴법한 일’을 잘 전달하는 게 소설가의 큰 복이라 할 때 그는 정녕 제 재주를 고마워해야한다. 고마워하니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소설보다 더 구라 같은 세상사라하나 기실 오롯이 남의 삶을 살피는 데는 신문보다 소설이 낫다. 덕분에 또 하나를 배운다.
그나저나 온실효과다 뭐다 하더니 날은 더 추워진 듯하다. 증명할 수 없는 설(說) 보다 피부가 느끼는 차가움이 더 명징한데 이산화탄소 배출을 무리해서 줄여야 하나. 너무 추우니까 좋자고 하는 일도 시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옷자락을 여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