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문장 하나하나가 힘있고 올곧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다가도 올곧은 문장에 '외로이 황홀해'지는 심사는 가슴을 뛰게한다. 김훈이 죽음과 삶에 관한 생각을 책으로 냈다. 죽음을 두려워 하고 삶의 비천함을 긍정하는 문사의 자기 확신은 문장처럼 명쾌하다. 명쾌한 문장 뒤에 숨은 고민은 이순신의 글처럼 행간에서만 알아야 할 터. 예스런 낱말과 고유어의 조합은 문장의 격을 높인다. 짧게 끊어치는 문장의 향연엔 문장을 꾸미는 수사마저 사치로 보이게 한다. 

 딸의 월급 봉투에서 풋것의 그 무언가를 느꼈다는 묘한 감상은 정직한 문체에 사람의 살냄새를 느끼게 해준다. 많은 생각이 중첩되어 나온 짧은 문구의 리듬감은 낭독해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생각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하나의 책이 되는 경지.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는 이 문사의 형이하학적 글쓰기는 이젠 그 어떤 고귀한 이유로 글쓰는 자들의 문장보다 더 격이 높아진 듯하다.  

 워낙 많은 리뷰가 달린 책이라 내 글이 별 의미 없는 글뭉텅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문사의 글에 리뷰를 달고 싶은 건, 글이 준 경탄에 대한 나름의 마음 씀씀이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 김훈, 부디 더 많은 글로 자신을 변명하고 강변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높였으면 한다. 사족을 달자면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의 서간 묶음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한 출판사의 고육계지만 삶과 함께 변해 온 문사의 문장을 손쉽게 접하는 것도 그리 흔한 기회는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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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0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그의 글은 거짓이나 타협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은 그의 짧은 글.. 그 때가 생각 나네요.

바밤바 2009-03-02 09:20   좋아요 0 | URL
써클님 오랜만이네요. 헤헤~ 김훈씨 글을 보고 나면 말 그대로 안구가 정화되는 듯. 저도 모르게 그분의 문체를 따라하며 흐뭇해하지요. ㅎ

개츠비 2009-03-0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문장의 힘이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 옵니다. 김훈을 진가를 겨우 깨닫게 된 책이었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바밤바 2009-03-09 09:30   좋아요 0 | URL
아직 더 읽어 봐야 할듯. 김훈이 지은 책이 생각보다 많네요. ㅎ

무해한모리군 2009-03-2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훈 책에 빠져 계시군요 ㅎㅎ

바밤바 2009-03-25 15:47   좋아요 0 | URL
김 훈. 이름도 외자잖아요. 외로이 따로 간결한 느낌. ㅎ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싸이에 올라 온 여행사진을 보면 흐뭇해질 때가 있다. 사진 하나로 당시 느꼈던 바람의 시원함이나 사람 냄새가 다시금 몸을 훑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의 싸이에선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심드렁하게 '뭐 이런 사진을..' 이라며 사진 밑에 쓰여진 글귀를 읽기도 귀찮아한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진과 관련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사진이 범람한 시기엔 타인의 사진에서 공감감적 느낌을 얻기는커녕 또 다른 시각매체가 주는 피곤함마저 느낄 때가 많다.  

 김영하가 책을 냈다. 이전 '여행자' 시리즈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한 이 책을 보며 타인의 싸이를 봤을 때 가졌던 그런 심심함을 느꼈다. 자신이 공들여 찍은 사진을 보며 독자에게도 공감을 강요하는 선량한 오만함도 느껴졌다. 기실 이러한 사진을 볼냥이면 전문 작가의 사진 내지는 언제라도 수다를 떨 수 있는 지인의 홈피 사진을 보는게 나을 테다. 작가로서 보일 수 있는 통찰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지식의 나열로 종이를 메운 느낌.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라는 책이 줬던 묘한 정신적 쾌감이 없었다. 김영하는 자신이 잃어버린걸 찾아 떠난다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명성과 부를 더 증대시킬 신간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풍족케 할 뿐이다. 역설이다.  

 독자들에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아포리즘을 던져주며 본인은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다시 우려 먹는 듯한 묘한 이중성. 사족이지만 김영하는 김훈의 글과 비교하면 문장 자체의 맛은 덜한 듯하다. 그의 소설은 잘 짜여진 서사 덕분에 쉬이 책장이 넘어갔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설명조 내지는 회상조의 문체는 덜 정제된 듯하여 몇몇이 눈에 거슬린다. 김영하가 초기작에서 보였던 재기발랄함이 그립다. 김영하가 낸 책을 거의 다 읽어 볼 만큼 애정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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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영하의 도쿄여행집을 읽고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가 김영하를 사랑하던 사람으로 그가 어서 소모된 자신을 추스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려봅니다.

바밤바 2009-02-25 06:45   좋아요 0 | URL
충전한다고 떠났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벼리고 별러서 돌아왔으면 하네요.. 이번 책은 확실히 에러인듯 ㅎ
 
[수입]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2번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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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머만의 쇼팽은 귀족적이고 감미롭다. 귀족적이란 말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우아하며 당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지휘와 연주를 병행한 이 앨범에서 그러한 친머만식 쇼팽이 극명히 드러난다. 우선 쇼팽의 피협 1번 1악장의 드센 시작 부분도 친머만의 손에선 우아하게 변주된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이 듣는이의 가슴에 차분히 내려 앉는다. 하지만 난 야한 쇼팽을 좋아한다. 친머만의 우아한 쇼팽은 불경스런 마음이 들 찰나를 주지 않기에 다소 아쉽다. 

 쇼팽의 곡은 현대의 뉴에이지 음악과 비교해도 별 차이없는 서정성과 낭만을 가진다. 물론 그의 전주곡은 바흐의 평균율곡집을 모티브로한 엄밀성을 갖고 있지만 선율의 서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어보면 뉴에이지와 클래식의 모호한 경계를 음표가 말해준다. 그러기에 쇼팽은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퇴폐적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마구 헤집어 놓는 날이 선 선율과 눈물이라도 쏟아야 온전한 감상을 한듯한 멜랑콜리한 감성이야 말로 쇼팽의 가장 큰 장기다. 이러한 연주의 대가로는 샹송 프랑소와를 들 수 있다. 프랑소와는 쇼팽의 곡을 비제의 카르멘 마냥 묘한 아름다움과 부도덕한 면을 극대화 시켜 들려준다. 옛 현인이 들었다면 흐르는 물에 귀를 씻을만큼 퇴폐적이다.   

 그렇기에 쇼팽은 매우 여성적이다. 아르헤르치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쇼팽 피협 1번을 들어보면 아르헤르치의 열정이 아바도에게도 전염된듯 상당히 날카로운 느낌을 받는다. 아르헤르치는 차이코프스키의 피협 1번과 같은 웅장한 곡 뿐만 아니라 쇼팽과 같은 여성성 강한 작곡가에도 강한 면모를 띈다. 물론 그 곡을 여성적 세밀함보다는 남성적 열정으로 연주하지만. 명확한 타건에 도취한 듯한 아르헤르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그 곡이 자뭇 내 손에서 연주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클라이버의 베토벤 운명 연주에서 느꼈던 그런 손놀림의 동화가 아르헤르치와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만큼 아르헤르치의 연주도 매력적이다.

 글렌 굴드가 쇼팽을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쇼팽은 마실나가는 기생의 옷자락처럼 야하다는 인상때문에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께 분명한 굴드다. 그래도 그가 연주했다면 카르미놀라의 사계처럼 극단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까. 포고렐리치 또한 전주곡 연주에서 서정성의 극단과 건조한 타건의 조화를 표현하였지만 굴드는 그 이상의 연주를 보이지 않았을까.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회고록에서 말했 듯 포고렐리치와 굴드는 격이 다른 연주자이기 때문에. 굴드가 쇼팽을 연주할 때 만큼은 특유의 콧노래를 자제하는게 좋을 듯하다. 이런 굴드의 흥얼거림이 쇼팽과는 왠지 맞지 않을 듯하다. 고요한 밤을 생각나게 하는 쇼팽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콧노래는 홀로 외로워 지고픈 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저어하게 하지 않을까. 

 친머만의 음반을 두고 다른 연주자에 대한 말이 많았다. 친머만이 몇달 뒤 한국에 온다 그런다. 친머만의 귀족적인 쇼팽은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중독성이 있다. 야한 쇼팽을 좋아하지만 친머만에게 끌리는 건 그러한 중독성 때문일 테다. 너무나 부드러운 쇼팽. 폴란드 출신의 이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만으로 쇼팽의 격을 한단계 높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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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역사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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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넘길 때마다 흥분과 기대가 뒤섞인다. 침이 고인다. 역사의 심층에 깔려 있는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보듬어 주고 싶은 책이다. 

 역사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는 걸 즐겼다. 하지만 공부가 점점 깊어질수록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중앙일보에서 이책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이 책이면 되겠다 싶어 학교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한달이 지나서야 입고가 되었다. 우리학교는 도서관에 투자를 참 안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2주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남경태가 지은 개념어 사전과 스토리 철학을 읽어 보았기에 저자에 대한 신뢰는 충만했다. 쌔끈한 표지부터 이러한 신뢰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준 듯하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조금 다르다. 용어를 설명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짚어준다.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형태소로만 치부했던 죽은 언어들이 남경태의 손에서 살아있는 언어로 부활한다. 콘텍스트들을 해석하는게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줌인과 줌아웃을 잘 활용하여 쉽게 읽히게끔 한다. 다만 역사를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독특한 부분이 많았다. 평소 역사 관련 서적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위험할 수도 있을 만큼 급진적이거나 다름으로 '특별함'을 만들어 낸다. 일반론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한 주장이지만 참신함 만큼은 높이 사주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 여행의 향연. 책을 읽는데만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역사 여행은 미래와 과거를 더 깊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12시간의 여행은 그렇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이제 남경태의 또 다른 저작인 철학을 읽을 시간이다. 이 책은 아마 9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지식을 탐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따스한 사람이 조금 더 유쾌한 사람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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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글을 맛나게 쓰는 저자라고 생각해요.

바밤바 2009-02-11 03:27   좋아요 0 | URL
그쵸?ㅎ 쉬엄쉬엄 읽히면서도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하는 힘이 남경태씨의 책에는 있는거 같아요 ㅎ 가끔 중앙일보에 글도 쓰시던데 다른 필진들과는 다른 글을 보여주죠 ㅎ
 
아웃사이더 콤플렉스 - 노무현 현상의 축복과 저주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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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얻었을 때 유학자인 육가는 유방에게 유학을 권한다. 유방은 자신은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며 유학은 필요없다며 육가에게 면박을 준다. 이 때 육가 답한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 한들,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유방은 유학을 존중하게 되고 후에 유교가 한나라의 기본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은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로 천하를 얻었다. 다만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로 천하를 다스리려 하다보니 민심의 이반을 낳았고 결국 실패한 지도자로 불리우게 된다. 뭐.. 이명박 대통령이 워낙 삽질을 하는 바람에 반사광을 얻고 있긴 하지만 노무현은 참 문제가 많았던 대통령이다. 오죽하면 우파에서 보낸 '트로이 목마'라는 소릴 들었을까. 덕분에 좌파진영만 멸망의 위기에 빠진게 아니라 한국 사회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생겼지만. 

 강준만의 글쓰기는 집요하다. 문사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강한 이 시대의 저술가는 치밀하게 노무현을 비판한다. 반론에 대한 반론이 끝없이 이어지는 강준만식 끈기는 그의 엄청난 저술량의 밑바탕엔 노무현과는 다른 일종의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지방에서 글 잘 쓰고 계신 훌륭한 학자에게 하는 말 치곤 참 몹쓸 말인 듯하다.) 

 인터뷰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지승호는 존경하는 지식인으로 강준만 교수를 꼽은 적이 있다. 나 또한 강준만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고 그의 생각에 많은 지지를 보낸다. 다만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변명 내지는 자기주장복제가 좀 과한 듯하다. 왠지 장정일씨의 글씨기도 조금 연상케 한 듯. 그러나 강준만 교수가 지적한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는 명쾌하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한권의 책을 써낸 강준만 교수의 필력은 진짜 놀랍다.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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