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2번
DG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친머만의 쇼팽은 귀족적이고 감미롭다. 귀족적이란 말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우아하며 당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지휘와 연주를 병행한 이 앨범에서 그러한 친머만식 쇼팽이 극명히 드러난다. 우선 쇼팽의 피협 1번 1악장의 드센 시작 부분도 친머만의 손에선 우아하게 변주된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이 듣는이의 가슴에 차분히 내려 앉는다. 하지만 난 야한 쇼팽을 좋아한다. 친머만의 우아한 쇼팽은 불경스런 마음이 들 찰나를 주지 않기에 다소 아쉽다. 

 쇼팽의 곡은 현대의 뉴에이지 음악과 비교해도 별 차이없는 서정성과 낭만을 가진다. 물론 그의 전주곡은 바흐의 평균율곡집을 모티브로한 엄밀성을 갖고 있지만 선율의 서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어보면 뉴에이지와 클래식의 모호한 경계를 음표가 말해준다. 그러기에 쇼팽은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퇴폐적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마구 헤집어 놓는 날이 선 선율과 눈물이라도 쏟아야 온전한 감상을 한듯한 멜랑콜리한 감성이야 말로 쇼팽의 가장 큰 장기다. 이러한 연주의 대가로는 샹송 프랑소와를 들 수 있다. 프랑소와는 쇼팽의 곡을 비제의 카르멘 마냥 묘한 아름다움과 부도덕한 면을 극대화 시켜 들려준다. 옛 현인이 들었다면 흐르는 물에 귀를 씻을만큼 퇴폐적이다.   

 그렇기에 쇼팽은 매우 여성적이다. 아르헤르치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쇼팽 피협 1번을 들어보면 아르헤르치의 열정이 아바도에게도 전염된듯 상당히 날카로운 느낌을 받는다. 아르헤르치는 차이코프스키의 피협 1번과 같은 웅장한 곡 뿐만 아니라 쇼팽과 같은 여성성 강한 작곡가에도 강한 면모를 띈다. 물론 그 곡을 여성적 세밀함보다는 남성적 열정으로 연주하지만. 명확한 타건에 도취한 듯한 아르헤르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그 곡이 자뭇 내 손에서 연주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클라이버의 베토벤 운명 연주에서 느꼈던 그런 손놀림의 동화가 아르헤르치와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만큼 아르헤르치의 연주도 매력적이다.

 글렌 굴드가 쇼팽을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쇼팽은 마실나가는 기생의 옷자락처럼 야하다는 인상때문에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께 분명한 굴드다. 그래도 그가 연주했다면 카르미놀라의 사계처럼 극단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까. 포고렐리치 또한 전주곡 연주에서 서정성의 극단과 건조한 타건의 조화를 표현하였지만 굴드는 그 이상의 연주를 보이지 않았을까.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회고록에서 말했 듯 포고렐리치와 굴드는 격이 다른 연주자이기 때문에. 굴드가 쇼팽을 연주할 때 만큼은 특유의 콧노래를 자제하는게 좋을 듯하다. 이런 굴드의 흥얼거림이 쇼팽과는 왠지 맞지 않을 듯하다. 고요한 밤을 생각나게 하는 쇼팽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콧노래는 홀로 외로워 지고픈 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저어하게 하지 않을까. 

 친머만의 음반을 두고 다른 연주자에 대한 말이 많았다. 친머만이 몇달 뒤 한국에 온다 그런다. 친머만의 귀족적인 쇼팽은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중독성이 있다. 야한 쇼팽을 좋아하지만 친머만에게 끌리는 건 그러한 중독성 때문일 테다. 너무나 부드러운 쇼팽. 폴란드 출신의 이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만으로 쇼팽의 격을 한단계 높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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