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ot가 빵인지, 신인지, 운명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가 오면 모든 소요가 진정되리라는 것이고, 그를 기다리며 우리가 맞는 삶이란 고통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베케트의 아포리즘이 의미심장하다.
Samuel Barclay Beckett(1906 –1989)
인생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처럼 그토록 지루한 것일까?
기수의 세찬 발길질에 하릴없이 달려야만 하는 경마장의 말들처럼 인간도 오늘 하루 그 무언가를 향해 달려야만 하는 존재일까?
이 소설이 슬픈 건 이젠 바라보며 앞으로 달려갈 그 무언가도 없다는 데에 있다.
문학에 뚜렷한 이데올로기가 내재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도 옳은 일이지만 그 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조잡하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선우휘 소설의 한계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결과에 이르기 위한 좀 더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모더니즘과의 끈도 놓지 않는 소설들이다.
지식인 소설의 관념성과 프로문학의 구체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데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자신의 계급을 넘어서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백낙청 교수는 로런스의 그러한 소설들만 이 책에 골랐겠지만 말이다.
저자들의 시각이 들쭉날쭉하지만 정책으로 현실화된 몇 가지 주장을 보니 책이 제 몫을 한 셈이다.
참여정부가 끝났대서 이 주장들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내년에 있는 지방선거부터 해서 힘을 모두어야 한다.
현 정부가 열심히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 바닥이 너무 깊어서 문제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