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들의 비판이 적절하다 여겨진다.
아름다운 문장이 좋은 글의 전부일 수는 없다.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 문장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당연함이다.
그 당연함을 논하는 책일 뿐이다.
이 농사꾼 할아버지는 가진 것 없이, 정말 부요한 사람이다.
'혼자만 잘 살믄' 재미 없다는 것을 아는 분이기에 참재미 속에서 부요함을 누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서문에서 처음 만나뵈었다.
이구영, 권정생, 전우익 선생이 모두 안 계시다.
남겨진 글만 뒤적일 뿐이다.
전우익 선생(1925-2004)
한국 소설 문학에 그려진 여성들을 일별해 봤다.
소설이 스탕달이 말한 바대로 '대로변을 돌아다니는 큰 거울'이라면 그에 비친 여성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무엇이 저들을 저리도 주눅들게 했는지 그리고 앙칼지게 했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기에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떨구는 고개가 해결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말이다.
방민호의 첫 비평집.
진중권이 이미 이야기 했듯이 다분히 좌편으로 치우친 사람이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이리저리 줏대없이 흔들리거나 그저 작품만 파고드는 근래의 비평들에 비할 때 그의 비평은 한편 견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용어인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강성 리얼리즘 비평가가 이제는 모더니즘과의 회통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백년의 고독>을 읽다말고 냅다 팽개친 그가 말이다.
회통이란 살아있음의 증거일 것이다.
돌고 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