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 사전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8
한소공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마차오 사전(馬橋詞典)>은 중국현대문학사에서 꽤 중요한 작품이다. 소설은 1996년에 발표되는데, 작가는 80년대 중반부터 '뿌리찾기(尋根) 문학'을 주장한다. 뿌리란 민간과 민중의 전통이란 의미겠다. '죽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던 중국이다. 10년간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휩쓸고 간 중국이다. 80년대 중반에서야 작가들은 어느 정도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문학적 실험을 해갈 수 있었다. 몰래, 몰래 읽어오던 세계 문학으로부터 받았던 자극들이 소설의 갱신을 부추기기도 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이 영향을 미치는데, 마르케스 등이 보여준 마술적 리얼리즘은 표현은 새롭되 소재는 민족의 것을 취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케 한다.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보여준 동양적 소재의 소설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 작가 위화는 자전적인 글에서 가와바타의 소설을 젊은 날 탐독했다는 얘기를 한다. 장이머우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인 <붉은 수수 가족(紅高梁家族)>(모옌)도 뿌리찾기 문학 계열로 분류한다.  

  소설의 배경인 마차오는 초나라의 굴원이 유배된 후 투신한 멱라강 주변에 위치한 곳이다. 벽촌이라 인근 마을과의 교류도 흔치 않다. 소설의 화자는 문혁 시기에 이 곳으로 와 지식청년으로 일한다. 화자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기이하기만 하다. 행색 뿐 아니라, 독특한 말들이 귀에 박힌다. 예컨대 이런 경우다. '깨어나다(醒)'는 이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어리석다는 뜻이다. 이 마을에서 투신한 굴원은 <어부사(漁父辭)>에 이런 글을 남긴다. "중인(衆人)이 모두 취해 있는 가운데 나 홀로 깨어있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굴원을 보면 깨어있음이 어리석은 게 되고, 취함이 오히려 지혜로운 게 된다.  

  삶(生)과 관련한 말들도 특이한데, 남자 서른 여섯살과 여자 서른 둘을 이들은 만생(滿生)이라 부른다. 살 만큼 살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 나이를 먹으면 천생(賤生)이 된다. 가장 고귀한 삶은 귀생(貴生)이라 하는데, 여자 열여섯, 남자 열여덟 이전을 말한다. 이후의 삶은 일과 결혼으로 고되니 이때까지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마차오 사람들의 현실주의나 이기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통스런 중국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그리 박대할 일도 아니다. 국가와 관은 언제나 그들을 괴롭히는 존재였고, 그들은 그 와중에도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죽어갔다. 변덕스런 관에 맞서는 변치 않는 그들의 지혜가 말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한샤오궁은 근대 중국의 첫 소설인 <광인일기(狂人日記)>로부터 시작되는 비판정신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기법을 혼합해 재미 속에 날카로운 비판을 숨긴 소설을 보여준다. 희로애락이 섞인 마차오 사람들의 말들을 새기며 나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가졌다.

  

                      韓少功(1953-)

着語 : 책의 이름을 <마교 사전>이라 했는데, 마교는 지명이니 '마차오'라고 표기하는 게 맞겠다. 작가 이름도 '한샤오궁'으로 쓰는 게 맞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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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2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닥나무님 덕분에 제 문학적 영토가 점점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6 22: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중국현대문학은 제 전공인데, 번역물이 너무 적습니다. 한국에선 중국의 인기 작가라 할 만한 사람도 없지만 루쉰과 위화 정도를 제외하곤 전작품이 번역된 경우도 없구요.
중국문학에 대한 인상은 저 역시 재미 없고, 촌스럽다는 생각이었어요. 체제도 다르구요. 그런데 문학은 어딜 가나 인간의 얘기잖아요? 위 리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도 마차오 사람들 같은 시대를 보냈고, 해서 공감할 부분이 있는거구요.
중국현대문학 읽어보실 계획이라 하셨는데, 저도 같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미지 2010-07-2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나무님 서평을 읽고 옛날에 신주처럼 모시던 굴원시집을 찾았더니 없습니다...^^ 저도 닥나무님처럼 잃어버린(아니, 저의 경우 내다버린) 기억을 찾아 헌책방순례를 시작해야 하려나 봅니다. 좋은 데 추천 좀 해주시지요..
중국어 표기 관련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꼭 원음대로 표기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자문화권에서 살았고, 마오쩌둥보다 모택동이 표기와 전달에서 더 쉽습니다. 그런 실용적 문제도 있겠지만, 애초에 한글이란 것이 중국말과 한국말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에 충실한 일종의 지역어로서 만들어진 것일텐데요, 우리가 한자를 한글식으로 전용해 온 역사에는 꽤 흥미로운 측면이 많이 있거든요... 통일보다 병용은 어떨까요? 하나에 대해 다른 하나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밝히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문화사적으로 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문 표기에서는요. 고유명사는 좀 달라지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6 23:10   좋아요 0 | URL
고유명사는 통상 1911년 신해혁명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한글한자음으로, 이후는 현대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합니다. 신해혁명을 중국 근대의 출발로 보기 때문이구요. 기점을 달리잡는 시각도 많구요. 그런데 이 기점이 좀 불편한 게 지명은 그렇다 쳐도, 인명 같은 경우는 사람의 삶이 장시간인데 어디를 기준으로 할 지 어려워지지요. 그리고 긴 기간을 다루는 문학사 같은 경우는 같은 지명을 달리 표기해야 할 경우도 생기니 하나로 통일해서 표기하기도 하구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원칙은 아니고 통상 이런 방식으로 표기합니다.
말씀하신 한글과 한문의 문제는 새겨들을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마오쩌둥을 예로 드셨는데, 리영희 선생은 루쉰이 아닌 노신으로 표기하는 게 맞다고 줄곧 주장하시구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문문화권에서 문화로만 중국을 대하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좀 다르다고 봐요. 이전보단 중국과 중국어, 중국 문화가 실용적 의미를 더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중국어 발음 표기도 유용하다는 생각이구요. 李白을 이백이라 하지 않고, 리빠이라 표기하는 건 문제구요. 여담인데 이백의 시대엔 이백이 자신의 시를 읊는 소리와 우리가 현재 그의 시를 한글한자음으로 읊는 소리가 거의 비슷할 거라고 합니다. 재밌는 게 우리는 한자의 원 발음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데 현대 중국인들은 상당히 다른 발음을 하고 있는거죠. 어학 수업에서 들은 얘기에요^^
쓸만한 답변이 되었는지요?

미지 2010-07-2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거 재밌는 얘긴걸요... 생각에 또다른 방향이 덧붙네요... 그, 저는 이백이나 두보 시를 한글한자음으로 읽으면서 이걸 그 리드미컬한 중국어로 읊으면 맛이 또 다르겠다는, 더 멋질 거라는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었던 듯한데요. 한글이 탁월한 발음 기호인 것은 분명한가 보군요.

이것도 여담이지만, 저는 의미와 소리 사이의 차이를 우리가 언어, 문화적으로 계속 유지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시대착오적이긴 합니다만..

파고세운닥나무 2010-07-27 13:27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의견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시대착오적이진 않구요^^

루쉰P 2010-11-0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뒤지다 보니 제가 읽고 싶은 서적들이 나오는군요. 하기사 루쉰 선생 보다는 노신 선생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강렬하고 확 와 닿거든요.^^ 저도 표기명을 바꿔야 할 듯 합니다. 괜히 루쉰이라고 했네요. 닥나무님의 말씀을 들으니 굳이 루쉰이라고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요. 더 와 닿는 표현으로 쓰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19:18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장단이 있을 듯 합니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닌듯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