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덤터기 인간

 

나는 흐린 겨울 날씨에도 혼자 좁은 진흙길을 따라 산책했다. 그런데 그때에도 머드스톤 남매가 있는 응접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짓누르며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딜 가든 지고 다녀야 할 커다란 짐이었으며, 깨어날 수 없는 한낮의 악몽이었고, 나의 슬기를 덮어버려서 둔하게 하는 무거운 굴레였다.

 

내가 얼마나 난처한 분위기에서 묵묵히 식사만 했던지! 나는, 식탁에 덤터기로 놓인 나이프와 포크가 있는데 그것이 내 것이고, 덤터기 의자와 접시가 내 것이고, 덤터기 음식이 내 것이고, 덤터기 인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계속 시달렸다.(147쪽)

 

 

 

시계와 초조

 

시계를 제외하고는 그만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이 집 안에서 유일하게 초조한 존재로 보였다.(157쪽)

 

 

 

돌을 짠다고

 

"만약 채권자들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면, 멋대로 하라지. 뒷일은 나도 몰라. 소송을 걸 셈이라면,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돌을 짠다고 피가 나오진 않거든.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남편에게는 재판 비용은 물론 한 푼도 나올 것이 없으니까."(189쪽)

 

 

 

미코버 씨의 경제 철학

 

미코버 씨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거울삼아서, 절대로 자기 같은 신세가 되지 말라고 근엄한 얼굴로 충고해 주었다. 만약 1년 수입이 20파운드인 사람이 19파운드 19실링 6펜스를 쓴다면 행복할 테지만, 21파운드를 쓴다면 비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뒤에 그는 나에게서 흑맥주 값으로 1실링을 빌렸다.(197쪽)

 

 * *

 

"코퍼필드, 하나 더 충고할 것이 있어." 미코버 씨가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한 해 수입이 20파운드인데, 지출이 19파운드 19실링 6펜스면 결과는 행복이고, 한 해 수입이 20파운드인데, 지출이 20파운드 6실링이면 결과는 비참하지. 꽃은 시들고, 잎은 마르고, 태양은 서산 너머로 사라지고 ㅡ 넌 꼼짝 못하게 된단 말이야. 지금의 나처럼!"(207쪽)

 

 

빚 중독증

[강원포럼]경제 위기와 가계부채

 

 

 

 

 

 

연약한 젖니가 치과의사 앞에서

 

그러나 나는 우라이아와 힙 부인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치 코르크 뚜껑이 코르크 마개뽑이에 대해, 연약한 젖니가 치과의사 앞에서, 또 베드민턴공이 배드민턴 채에는 아주 무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297쪽)

 

 

 

숫돌에 대고 뾰족하게 갈아야

 

"대단히 영리한 여자 같은데?" 나는 오히려 되물으며 말했다.

 

"영리하다고? 그 여자는 무엇이든 숫돌에 대고 뾰족하게 갈아야 직성이 풀리거든. 요 몇 년 동안 자기의 얼굴을 뾰족하게 갈아온 것처럼 자기 자신을 날카롭게 갈아버렸지. 온몸이 칼날 같은 여자야."(339쪽)

 

 

 

삶은 조개

 

"만약 이 밤이, 내 평생의 가장 즐거운 밤이 아니라면, 나는 조개나 마찬가지예요. 그것도 삶은 조개. 더 말하지 않겠어요." 페거티 씨는 우리와 함께 난롯가에 앉으면서 스티어포스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튼 저 꼬마 에밀리는 보시다시피 부끄럼쟁이라서요."(359쪽)

 

 

 

가족적인 나약함과 다감함

 

아침에 눈을 뜨자 나는 꼬마 에밀리가 어제 저녁 마사가 떠난 뒤 슬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자 어떤 성스럽고,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에 나타나는 이른바 가족적인 나약함과 다감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그것을 남에게 얘기하면 상대가 스티어포스라고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는 에밀리에게 쏟았던 다정한 마음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품은 적이 없었다. 한때는 소꿉친구요, 또 그때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으며, 죽는 날까지도 그러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392쪽)

 

 

 

아늑하고, 나른하고, 구식이고,

 

이곳의 고요한 적막을 깨는 것은, 난롯불 타는 소리와 증거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사이를 박사들이 느릿느릿 누비다가, 여행길에 오른 바쁠 것 없는 나그네가 길가 술집에서 쉬어가듯이, 걸음을 멈추고 서로 뭐라곤가 말하는 소리뿐이었다. 요컨대 내 평생에,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어느 조그마한 가족 파티에서도 이처럼 아늑하고, 나른하고, 구식이고, 시간관념을 저버린 졸음 쏟아지는 분위기에 젖어 본 적은 없었다. 당사자인 원고만 아니라면, 어떤 역할로든 이런 사람들의 동료가 된다면 참 좋을 것이며, 마치 아편에 취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404쪽)

 

 

 

은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툭하면 매우 자랑스럽게 "그럼, 그럼" 하고 말하면서 만족스러워하는 워터브룩 씨의 태도가 나한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말 의미 있는 '그럼, 그럼'이었다. 곧 은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성공 사다리는 가지고 태어나서,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가 마침내 성벽 꼭대기에 서서 까마득한 아래, 여전히 참호 속에서 밀치락달치락하는 사람들을 마치 철학자나 보호자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런 사람의 사고를 유감없이 드러낸 '그럼, 그럼'이었던 것이다.(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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