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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철학자열전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79
전양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밑줄긋기)
그의 책 권수는 약 300을 웃돌고 있었기 때문
또한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매우 다작이고 책의 수로는 모든 사람을 능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책 권수는 약 300을 웃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에는 남의 책으로부터의 인용은 하나도 없고 그 전부가 에피쿠로스 자신의 말인 것이다. 그런데 (스토아파인) 크리시포스는 에피쿠로스와 다작을 겨루려 하고 있었던 것인데 (새 아카데미파인) 카르네아데스는 이 크리시포스를 에피쿠로스의 책을 좀먹는 기생충으로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에피쿠로스가 어느 것을 쓰면 크리시포스는 이에 지지 않으려고 같은 분량만큼 쓰려고 했다.(669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재빠르게 활용할 수가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또 우리는 그 기본적인 원리로 끊임없이 되돌아가 그것만의 것은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해는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매우 개략적인 것이라도 나의 학설의 개요가 올바르게 파악되고 기억되고 있는 것이라면 개개의 특수한 사항에 대한 정확한 지식도 모두 발견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철학의 수업을 쌓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재빠르게 활용할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정확한 지식이 갖추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항이) 단순한 기본원리로 환원되어 말로 표현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개의 특수한 사항에 관한 것이 모두 정확하게 알려졌다고 해도 그것을 간결한 말로 자기자신 속에 받아들이지 (기억해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학설 전체를 끊임없이 열심히 연구해온 것의 성과로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675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아톰은 끊임없이 그리고 영원히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그러나 또 (우주) 만유는 한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정되어 있는 것은 끝을 지니고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끝은 (그 앞에 있는) 다른 무언가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그런데 만유는 다른 무언가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유는 끝이 없기 때문에 한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한이 없다면 만유는 한이 없는 것이고 한정된 것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유는 물체(아톰)의 수에 있어서나 공허의 크기에 있어서나 한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공허가 한없이 큰데 물체는 한정된 수의 것이라고 한다면 물체는 이를 지탱하거나 저항해서 되돌리거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디에도 머무는 곳은 없어 무한한 공허 속에 흩어져 운반되어 갈 것이고, 만일 공허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무한히 수많은 물체는 존재해야 할 곳을 갖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물체 가운데서도 불가분으로 충실한 것, 즉 합성물이 그것에서 낳고 또 그것으로 분해되는 요소(아톰)에는 우리에게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형태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합성물의) 이 정도로까지 수많은 차이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한정된 수의) 같은 형(의 아톰)에서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형태마다 비슷한 것(아톰)은 수에 있어서 완전히 무한하게 있지만 형태가 다른 것은 결코 무한으로 수없이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에게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이 있을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분할은 무한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는 그것에 이어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의 성질은 변화하는 것이므로 (아톰형의 무한한 다양성을 상정하려고 하는데)] 만일 사람이 크기의 점에서도 아톰 속에 있는 것을 완전히 한없이 큰 것으로 (해서 눈에 보일 정도의 것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앞서와 같이 상정할 필요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아톰은 끊임없이 그리고 영원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677∼678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세계가 무한히 수많은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또 세계는 수없이 무한히 있고 그 어느 것은 우리의 이 세계와 비슷한데 다른 것은 비슷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톰은 앞서 명확해진 것처럼 수없이 무한히 있고 그런 것들은 매우 멀리까지 운반되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가 그런 것에서 생길 수 있는, 또는 그런 것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는, 그와 같은 여러 가지 아톰은 하나의 세계를 위해, 또는 한정된 수의 세계를 위해 ㅡ 그런 것들의 세계가 우리들의 세계와 비슷한 것이든, 다른 것이든 ㅡ 모두 사용되고 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가 무한히 수많은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679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사물의 형태를 보는 것
그런데 외계의 사물에서 어떤 것(에이드론)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그런 사물의 형태를 보거나 그런 사물에 대해서 사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계의 사물이 그것들 자체가 지닌 색깔이나 형체의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은 우리와 그런 사물과의 중간에 개재하는 공기에 의해서도, 또는 (눈에서 나오는) 광선에 의해서도, 또는 우리에게서 그 사물에 이르고 있는 무언가의 흐름에 의해서도 다음에 말하는 것과 같은 방법에 따를 정도로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사물 그 자체에서 색깔도 형체도 사물과 비슷한 일종의 모방된 것 (티포스=에이드론)이 우리에게로 와 제각기 상응한 크기에 따라서 우리의 시각이나 정신에 잠입하는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모방된 것(영상)은 매우 신속하게 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와 같이 모방된 것(영상)은 하나의 연속된 것이란 표상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고, 또 대상으로부터의 적당한 출격에 의해서ㅡ이 충격은 (대상인) 고체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아톰이 진동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인데ㅡ이런 모방된 것(영상)은 그 대상에서 유래하는 곳의, 그것과 대응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신에 따라서이든, 다양한 감각기관에 따라서이든,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으로 어떤 표상을 갖는다고 해도ㅡ형태에 대한 표상이든, 속성에 대한 표상이든ㅡ이 표상되고 있는 것이 (그것의) 고체형태 (내지는 속성)이고 그것은 에이드론(영상)이 잇따라 응집함으로써, 또는 우리의 정신 속에 잔존하고 있음으로써 낳게 된 것이다.(681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어느 세계는 구상(球狀)이고 다른 세계는 계란형
또 이들 여러 세계는 필연에 의해서 하나의 똑같은 형을 지니고 '생성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또 온갖 형태를 지니고 생성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이런 모든 세계에는 동물이나 식물, 그밖에 우리가 이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여러 세계는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도 그(에피쿠로스) 자신이 <자연에 대해서> 제12권 가운데서 쓰고 있다. 즉 어느 세계는 구상(球狀)이고 다른 세계는 계란형이며 또 다른 세계는 그것과는 다른 형상을 이루고 있는데, 그러나 온갖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생명이 있는 것은 무한한 것에서 (직접)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동물이나 식물이나 그 밖에 (우리의 세계에서) 관찰되는 모든 것이 그런 것에서 낳게 되는 씨앗이 여기저기의 세계 속에는 포함되어 있었겠지만ㅡ또 사정에 따라서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때도 있었겠지만ㅡ그러나 이런저런 세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아무도 논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동물 그 밖의 것이 (태어난 후에) 세계 속에서 키워진다는 점도 똑같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세계에 있어서나 대지 위에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692∼693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매우 단기간 안에 개관하게 되는 것
따라서 만일 나의 이 설명이 정확하게 파악될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설사 사람이 개개의 사항에 대한 정확한 것 모두를 알기까지에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학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그 사람은 나의 학설체계 전체에 의거해 개개의 사항에 관한 수많은 정확한 것을 자기 자신이 명확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원칙적인 사항이 기억 속에 담겨져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이 그 사람의 연구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그것은 이런 원칙적인 사항은 그와 같은 효과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개개 사항에 대해서 이미 충분할 정도로, 또는 완벽한 정도로까지 정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지식을 이와 같은 원칙적인 사항의 파악으로 환원함으로써 자연전체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의 것을 수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또 아직 완전하게 나의 학설을 습득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 속하는 자들 쪽은 구술에 따르지 않은 학습방법이라도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원칙에 의거해 혼의 평안에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을 매우 단기간 안에 개관하게 되는 것이다.(697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다중우주
또 이와 같은 여러 세계가 수없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와 같은 세계는 이미 생기고 있는 세계 가운데서도 또 중간계ㅡ세계와 세계와의 사이의 공간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인데ㅡ그 중간계에서도 생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드넓고 전혀 섞임이 없는 순수하게 공허한 곳 가운데서,라는 것은 아니고 공허가 많은 곳 가운데서,라는 것이다. 즉 세계를 만드는 데 적합한 일종의 씨앗(아톰)이 하나의 세계 또는 중간계에서, 또는 몇 개의 세계 또는 중간계에서 (이 공허가 많은 곳으로 흘러들어와 조금씩 결합하거나 분절화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곳으로 위치를 바꾸거나 함으로써) 세계는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씨앗은 세계가 완성해 안정이 될 때까지 적당한 곳으로부터 계속 유입하는 것인데 이와 같은 과정은 세계의 바탕이 되는 밑에 놓인 씨앗이 새로운 씨앗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수 있는 한 계속되는 것이다.(700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현자가 하지 않는 일
또 현자는 소송을 제기할 때도 있을 거싱고 저작을 남기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현자는 자기재산에 배려해 장래에 대비할 것이다. 또 전원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운명에는 감연히 맞서고 어느 벗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경멸당하지 않을 정도로 세상의 평판에는 두루 신경을 쓸 것이다. 또 국가의 제례 때에는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즐길 것이다.(712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사고를 신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자들이 오히려
한편, 내가 이제까지도 끊임없이 들려준 것, 그것이야말로 훌륭하게 살기 위한 기본원리로 생각해 그것을 생각함과 동시에 이를 실행하도록 하기 바란다. 즉 우선 첫째로 신에 대한 공통의 관념이 사람들 마음에 새겨 있는 대로 신은 불멸이고 지복한 삶으로 믿고 신의 불멸성과는 무관한 일도, 또 그 지복성에 걸맞지 않은 일도, 아무것도 신에게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신의 불멸성과 지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신에 대해서는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신들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고 신들의 인식은 명료한 (直覺的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신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계속 지키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들을 부인하는 자가 불경신(不敬神)인 사람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사고를 신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자들이 오히려 불경신의 사람인 것이다.(715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훌륭하게 판단한 것이 우연한 탓으로 잘 안 된다고 해도 그 쪽이 더 낫기 때문
또 우연(운)에 대해서 사려있는 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를 신으로 여기지는 않고(그것은 신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무질서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에) 또 우연을 온갖 사항의 불확실한 원인으로도 여기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일이나 나쁜 일이 지복한 삶을 보내기 위해 우연에 의해서 인간들에게 주어진다고는 사려있는 사람은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커다란 선이건, 악이건 그런 것의 계기가 되는 것은 우연에 의해서도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려있는 사람은 잘 생각함도 없이 행동하면서 행운이기보다는 잘 생각해서 행동하면서 불운인 쪽이 낫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행위에 있어서는 훌륭하게 판단한 것이 우연한 탓으로 잘 안 된다고 해도 그 쪽이 더 낫기 때문이다.(720∼721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
헛된 망상에 따른 것
자연적인 욕망이기는 한데 충족되지 않아도 괴로움으로 이끄는 일이 없는 욕망 가운데 대상에 대한 격한 욕망이 깃들고 있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욕망은 헛된 망상에 의해서 낳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망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욕망 자체의 본성 탓은 아니고 그 사람의 헛된 망상에 따른 것이다.(727쪽)
- 디오케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열전』, 「제10권」<1. 에피쿠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