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성찰 을유세계문학전집 90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신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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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비평이 할 일

 

비평이 작가에 대해, 심지어 작품의 세부 사항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가에게는 없으나 그를 완성시키는 모든 요소를 모으고 가능한 한 그에게 가장 호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비평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36쪽)

 

 

근대적 고뇌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고딕풍의 그리스도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마치 모든 신호를 잡아내는 안테나처럼 작품 중심에 우뚝 서서 독점적인 주목을 받는 바람에 작품의 다른 부분이 피해를 입었고 결국 돈키호테 자신도 피해를 입고 말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약간의 사랑과 또 다른 약간의 겸손만 있다면 ㅡ 두 개가 아예 모두 없다면 불가능하지만 ㅡ 『그리스도의 이름들에 대하여』를 솜씨 있게 패러디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신학적 열망에 가득 찬 루이스 데 레온 수사가 플레차 농장에서 써 내려 간 중세 로마네스크 상징주의의 걸작이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이름들에 대하여'라는 이름의 작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면에서 볼 때 돈키호테는 신성하고 고독한 그리스도의 슬픈 패러디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근대적 고뇌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고딕풍의 그리스도이다. 그는 순수성과 의지를 상실하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방황하는 고통 속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우리 동네의 희화화된 그리스도이다. 과거의 사상적 빈곤, 현재의 천박함 그리고 미래의 신랄한 적대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때마다 그들 사이로 돈키호테가 강림한다. 기이한 그의 용모에서 발산되는 열기는 그들의 갈라진 마음들을 조화시키고 영적인 끈으로 묶어 놓고 민족주의자로 바꾸어 버리며, 개인적인 비탄을 넘어 민족의 집단적 고통으로 승화시킨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의 복음서」18:20)

(36∼37쪽)

 

 

『돈키호테』정도의 걸작은 예리고의 성처럼 접근해야 한다.

 

자연의 비밀들이 가차 없이 드러나고 있다. 우주의 숲에서 조준을 마친 과학자는 사냥꾼처럼 문제를 향해 곧바로 달려든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에게도 학자라는 존재는 사냥을 떠나는 사람, 즉 엽사(獵師, venator이다. 만일 그가 무기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사냥은 분명 성공한다. 즉 새로운 진리가 마치 화살을 맞은 새처럼 그의 발치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천재적인 예술 작품은 지식의 공격을 받아도 이런 식으로 자기 비밀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것은 강압적으로 굴복하는 것에 저항하며, 자기가 원하는 상대에게만 자신을 허락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극한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선 학문적 진실과 비슷하지만, 사냥꾼처럼 목표물을 향해 곧바로 달려드는 것은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기에 굴복하지 않고, 굳이 한다면 성찰 의식에 굴복한다. 『돈키호테』정도의 걸작은 예리고의 성처럼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넓게 동심원을 그리면서 서서히 압박해 들어가야 하며 마치 천상의 나팔소리가 울리는 것처럼 해야 한다.(38∼39쪽)

 

 

관심의 넓은 동심원일 뿐

 

한 권의 책을 쓴 끈기 있는 양반 세르반테스는 3세기 전부터 이상향의 초원에 자리잡고 앉아서 우수에 젖은 시선을 주위에 뿌리며 자신을 이해할 자손이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글로 이어질 이 성찰의 글들이 『돈키호테』가 간직하고 있는 최후의 비밀을 범하려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것은 불멸의 작품에 운명적으로 매혹된 생각이, 멀리서 조급함 없이 그려내고 있는 관심의 넓은 동심원일 뿐이다.(39쪽)

 

 

덧없는 어느 봄날의 오후

 

이 웅대한 잿빛 건축물은 빽빽이 들어선 숲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어 계절이 변함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겨울에는 구릿빛, 가을에는 황금빛, 여름에는 짙은 녹색으로 변화하며, 봄은 마치 수도사의 완고한 영혼을 통과하는 에로틱한 영상처럼 강렬하고 재빠르게 획 지나가 버린다. 숲속 나무들은 순식간에 밝고 신선한 초록색으로 단장한 나뭇잎으로 뒤덮인다. 대지는 에메랄드빛 풀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데, 그 풀 역시 하루는 노란색으로, 다른 날은 라벤더의 자줏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지극한 고요함이 지배하는 장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침묵은 결코 아니다. 사물들이 돌아가면서 완벽하게 입을 다물지만 소리가 멈추어 버린 그 자리는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길 기다리고, 그때서야 우리는 심장의 박동 소리, 관자놀이의 피가 맥박 치는 소리, 우리의 허파 속으로 스며들자마자 부지런히 달아나는 공기의 부글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최후의 박동이 될 것처럼 느껴지고, 뒤를 잇는 새로운 구원의 박동은 항상 우연한 것일 뿐 다음을 보장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장식적이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침묵이 차라리 더 좋다. 바로 여기가 그런 곳이다. 맑은 물이 재잘거리며 정처 없이 흘러 가고 녹음 사이로는 검은 방울새, 분홍 방울새, 개똥지빠귀 그리고 때때로 아름다운 꾀꼬리에 이르기까지 작은 새들이 지저귄다.

 

덧없는 어느 봄날의 오후, 에레리아를 방문한 나의 머릿속에서 사색이 펼쳐진다.(45∼46쪽)

 

 

독일에도 나무들 때문에 숲이 보이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하나의 숲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있어야 할까? 하나의 도시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집들이 있어야 할까?

 

푸아티에의 농부는 이렇게 노래했다.

 

지붕들이 너무 높아

거리를 내다보는 데 방해가 되네.

 

독일에도 나무들 때문에 숲이 보이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숲과 도시는 본질적으로 깊이를 간직한 두 개의 사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때는 표면으로 나서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47쪽)

 

 

어쨌든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하지 않겠어?

 

이 세계에는 동등하게 존중받고, 똑같이 세상에 필요한 여러 운명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좋은 교훈이 있다.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상실하는 사물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모습을 감추거나 간과된 상태에서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들도 있다. 부차적인 지위에 있으면서도 완전한 자아 확장에 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고의 지위에 앉으려고 발버둥 치느라 자신의 모든 덕을 폐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 소설 한 권을 읽었는데, 거기엔 머리는 별로 안 좋지만 도덕적 감수성이 뛰어난 소년이 등장한다. 그는 학교에서 항상 꼴찌를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하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것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는 훌륭한 사례가 된다. 고귀한 정신은 첫째가는 자리뿐 아니라 마지막 자리에도 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첫째와 꼴찌 모두 세상에 똑같이 필요하고, 서로에게도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51쪽)

 

 

무정한 죄

 

어떤 사람들은 심층의 사물에게 표층의 사물처럼 나타나라고 요구하면서 그것의 진정한 깊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명료함(clacidad)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표층이 보여 주는 특수한 형태의 명료함에만 집착한다. 그들은 표층 아래 숨어 있는 것이 심층의 본질이고, 그것이 표층 밑에서 맥박 치다가 표층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생각에는, 각각의 사물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고유한 조건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죄악인데, 이것이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나는 이를 가리켜 '무정(無情)한 죄'라 부르겠다. 우리들의 나쁜 성향과 맹목성을 통해 세계를 축소하고 실재를 왜곡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부분들을 상상 속에서 없애 버리는 것만큼 의롭지 못한 것은 없다.

 

이는 심층적인 것에 대해 표층적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길 요구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사물의 이치는 그렇지 않다.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자신을 드러내는 사물들이 있는 것이다.(5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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