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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평점 :
(밑줄긋기)
우리가 이 젊은 모험가의 내면에 일어난 변화들을 평지의 성실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현기증이 날 만큼의 동일성이라는 척도가 점점 커져 갔다. 좀 관대하게 말한다면 오늘의 지금을 어제, 그저께, 그끄저께의 지금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달걀처럼 다 똑같아 보였다. 그리하여 지금 현재는 한 달 전, 일년 전의 현재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뭉뚱그려 영원한 현재로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 과 '다시' 와 '장차' 라는 윤리와 관련되는 의식적인 구분이 행해지는 한에는, '오늘' 을 과거와 미래와 구분지어 생각하는 관계 개념인 '어제' 와 '내일' 의 의미를 확대하여 좀 더 커다란 상황에 적용시키고 싶은 유혹이 슬며시 생겨난다. 지극히 미세한 시간 단위를 토대로 하여 살아가는 '짧은' 일생에서 볼 때, 분망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초침을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침처럼 생각하는 생물체가 좀 더 작은 혹성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시간이 엄청나게 큰 폭으로 흐르고 있어서, '방금' , '조금 뒤에' , '어제' 와 '내일' 이라는 구분 개념이 그들의 체험에 엄청나게 확대된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는 생물체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그러한 상상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관대한 상대주의의 정신으로 판단해 볼 때, 그리고 '고장이 다르면 풍속도 다르다' 라는 명제에 따라 보건대, 이는 정당하고 건전하며 존중할 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구상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 게다가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학기라는 시간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인생에서 많은 변화와 진보를 가져다주는 연령의 사람이 어느 날 '일년 전'을 '어제' 로, '일년 후' 를 '내일' 로 말하는 악습에 빠진다든가, 또는 간혹 그러한 기분에 젖는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과오와 혼란' 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고, 따라서 지극히 우려스럽다고 말해야겠다.(388∼389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하권』, 《제7장》, <해변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