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2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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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하지만 실은 이론적인 계절 구분은 별도로 하더라도, 눈과 추위로 보아 사실 벌써 오래전부터 겨울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이곳은 늘 겨울이나 다름없었고 간간이 해가 내리쬐는 여름 날씨가 끼어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푸른 하늘이 더할 나위 없이 짙어져 거의 거무스름한 색을 띠었다. 그러므로 여름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을 제쳐 놓는다면 겨울에도 여름 같은 날이 끼어 있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계절을 뒤섞어 뒤범벅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러한 뒤죽박죽에 대해 죽은 요아힘과 얼마나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일대 혼란은 계절의 구분을 앗아가 버려, 그로 인해 일년을 지루할 정도로 짧게 하거나, 또는 짧다 할 정도로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언젠가 요아힘이 더는 참지 못하고 내뱉은 것처럼, 도무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실 이러한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혼합된 것은 '아직'과 '벌써 다시'라는 감정이나 의식 상태였는데, 이는 가장 혼란스럽고 복잡다단하며 어리둥절하게 하는 체험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 위에 도착한 첫 날에 이러한 것을 맛보는 체험을 하고 비도덕적인 애착을 느꼈다. 즉 밝은 줄무늬 벽지를 바른 식당에서, 하루에 다섯 번의 엄청난 식사를 할 때 처음으로 이러한 종류의 현기증 같은 것에 사로잡혔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비교적 순진무구했다고 할 수 있었다.(385∼386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하권』, 《제7장》, <해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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