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2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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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죽음과 삶, 병과 건강, 정신과 자연, 이런 것이 서로 모순되는 것일까? 그런 게 과연 문제가 되는지 묻고 싶어. 아니야,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어느 것이 고귀한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 죽음의 모험은 삶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모험이 없으면 삶이 아닐지도 몰라. 그리고 인간의 상태가 신비스러운 공동체와 미덥지 못한 개별 존재 사이에 있듯이, 신의 아들인 인간의 본성은 그 한가운데, 모험과 이성의 한가운데에 있어. 이 돌기둥 아래서 바라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우아하고 정중하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자기 자신을 대해야 해. 인간만이 고귀한 존재며, 대립은 고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인간은 대립을 다스리는 주인이고, 대립이란 인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므로, 인간이 대립보다 더 고귀한 거야. 인간은 죽음에 종속시키기에는 참으로 고귀한 두뇌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죽음보다 고귀한 존재야. 마찬가지로 인간은 삶에 종속시키기에는 참으로 고귀한 정신의 경건함을 가졌기 때문에 삶보다도 고귀하다. 이렇게 나는 하나의 시를, 인간에 관한 꿈결 같은 시를 지었다. 나는 이를 잊지 않을 것이며, 선하게 살고자 한다. 나의 생각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넘겨주지 않으련다! 착한 마음씨와 인간애의 본질은 이런 것에 있지, 다른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하나의 위대한 힘이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는 모자를 벗고, 발끝으로 걸으며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간다. 죽음은 과거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 깃을 달고 있으며, 인간 자신은 죽음에 경의를 표하며 엄숙하게 검은 옷을 입는다. 이성은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이성이란 덕에 지나지 않지만, 죽음은 자유이자 방종한 모험이고, 무형식이자 색욕이기 때문이다. 나의 꿈에 의하면 죽음은 색욕이지 사랑은 아니다. 죽음과 사랑 ㅡ 이것은 배합이 맞지 않으며, 얼토당토않은 잘못된 운이다! 사랑은 죽음에 대립하고 있으며,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사랑만이 선한 생각을 갖게 한다. 형식도 오로지 사랑과 착한 마음씨에서 생기는 것이고, 분별력 있고 우호적인 공동체와 인간의 아름다운 나라의 형식과 예의바름은 피의 향연을 조용히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 이렇게 나는 선명하게 꿈을 꾸고, 멋지게 '술래잡기'를 했다! 나는 이를 잊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죽음을 성실하게 대하겠지만, 죽음과 과거의 것에 대한 성실성이 우리의 생각과 술래잡기를 지배한다면, 그 성실성은 악의와 음산한 육욕과 인간에 대한 적대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해 두기로 하자. 인간은 착한 마음씨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 자, 이제 눈을 뜨기로 하자. 이것으로 나는 꿈을 끝까지 다 꾸고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나는 이 말을 찾고 있었다. 히페가 내 마음속에 나타난 장소와 발코니에서, 그 어디에서도 말이다. 눈 덮인 산 속에 들어온 것도 그 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여 나는 결국 찾아내고 말았다. 내가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내 꿈이 더없이 선명하게 제시해 주었다. 그렇다, 그 말을 찾은 나는 환희에 사로잡혀 몸이 완전히 따뜻해졌다. 내 심장은 세차게 고동치고 있으며, 왜 그런지 알고 있다. 가슴이 뛰는 것은 신체의 손톱이 자란다고 하는 단순히 생리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이유, 행복한 기분 때문이다. 내 꿈의 말은 포도주나 흑백주보다 더 달콤한 음로수다. 그 음료수는 사랑이나 생명처럼 나의 혈관을 타고 흘러 나를 잠과 꿈에서 깨어나게 한다. 잠과 꿈에 빠지면 내 젊은 목숨이 치명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아, 일어나라! 눈을 뜨라! 너의 다리와 팔이 여기 눈 속에 빠져 있다! 다리를 끌어당기고 일어나라! 자, 보렴, 날씨가 얼마나 좋은가를!(293∼295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하권』, 《제6장》, <눈>

 

(나의 생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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