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2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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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런데 꽃눈이 진짜 눈으로 덮여 버려 크로커스 다음에 핀 푸른 앵초와 노랗고 붉은 앵초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다. 봄은 이곳의 겨울을 제압하고 뚫고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악전고투를 했던가! 봄은 이곳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수도 없이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그러다가 하얀 눈보라와 살을 에는 추위 그리고 난방 장치와 함께 다시 겨울이 찾아오는 것이다. 5월 초(우리가 눈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벌써 어느덧 5월이 되었다). 이때만 해도 발코니에서 평지의 고향에 보낼 엽서를 쓰는 일은 말도 못하게 고통스러웠고, 11월의 습한 강추위 때처럼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 지역의 얼마 안 되는 활엽수들은 평지에 자라는 1월의 나무들처럼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연일 비가 내렸고, 일주일이나 계속 쏟아졌다. 이곳과 같은 편안한 접이식 침대가 없었더라면 자옥한 구름 속에서 축축하고 굳은 얼굴로 여러 시간 동안 야외에서 안정 요양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밖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비는 봄비가 분명해서, 비가 오랫동안 계속해서 내릴수록 그러한 사실을 좀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봄비에 거의 모든 눈이 봄눈 녹듯 사라져, 흰눈은 이제 어디서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군데군데 회색으로 더럽혀져 얼음이 된 눈이 있을 뿐, 이제야말로 정말 풀밭이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만날 흰눈만 보다가 녹색의 풀밭을 보니 눈이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리고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녹색이었고, 섬세함과 사랑스러운 부드러움이라는 면에서 새로운 녹색이 풀밭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낙엽속의 어린 침엽수였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규정된 산책을 하는 도중에 그것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볼에 문지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의 부드러움과 신선함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식물학자가 되어도 좋겠어." 젊은이는 자신의 길동무에게 말했다. "이 산 위에서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다 보니 식물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이봐, 저기 산비탈에 보이는 저것은 용담이야. 그리고 여기 이것은 작고 노란 제비꽃의 일종인데 나도 처음 보는 거야. 이것은 미나리아재비인데 평지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이것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 피는 것이 주목할 만해. 이것은 특히 매력적인 식물로, 게다가 자웅동체야. 여기에 많은 화분 주머니와 몇 개의 씨방이 보이지. 내가 알기로는 그게 수술과 암술일 거야. 이런저런 식물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책을 사서 생명 분야와 이런 학문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어. 그래, 이제 온 세상이 그야말로 울긋불긋해졌어!"(44∼46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하권』, 《제6장》,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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