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고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가라앉는 것을 본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일차적인 확신을 의미하므로 그는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과학적 사고가 일차적인 혹은 자생적인 사고의 결과를 언제나 억제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인도 교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진정한 자유로운 사고를 부정한다. 가톨릭 교인에 관한 얘기는 앞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명맥히 하기 위해 예로 제시한 것일 뿐이지, 그에게 우리 시대의 대중, 곧 '자만에 빠진 철부지'에게 퍼부은 과격한 비난을 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물론 단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한다. '자만에 빠진 철부지'가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했듯이, 가톨릭 교인도 어떤 점에서는 진정성이 없다. 그러나 이는 외관상의 부분적인 일치에 불과하다. 가톨릭 교인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근대인으로서의 자기 존재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실제적인 부분, 곧 종교적 신앙에 충실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 교인의 운명이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는 그런 진정성의 결여를 통해 자신의 의무를 완수한다. 그에 반해서 '자만에 빠진 철부지'는 경박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이탈하고 모든 것에 반역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비극을 회피한다.-142쪽